2024.1.29.연중 제4주간 월요일                                     2사무15,13-14.30;16,5-13ㄱ 마르5,1-20

 

 

 

지상 천국의 온전한 삶

-하느님 중심의 정주(定住)와 믿음과 사랑-

 

 

 

"새벽부터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게 하소서."(시편90,14)

 

“성공의 길은 다양하지만, 

 실패의 길은 포기, 하나뿐이다. 

 하나의 길이 막혔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 어록에 나오는 오늘 1월29일자 말씀입니다. 이래서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 대죄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바로 파스카의 믿음입니다. 한쪽문이 닫혔다고 절망할 것은 아니니 한쪽문이 닫혔으면 옆문은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절망은 없다는 것이니 하느님 사전에 없는 단어가 절망입니다.

 

어제 1.28일 주일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축일이자 동방교회에서는 사막의 은수자, 성 이삭의 축일을 지냅니다. 7세기 시리아 출신의 성인으로 서방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동방에서는 아주 유명한 성인입니다. 어제 “지옥은 텅 비어 있기를 희망한다”라는 교황님의 말씀도 이 성인의 사상에서 영감을 받았을 거란 인터뷰 기사를 일부 인용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근 ‘지옥이 텅 비워져 있기를 희망한다’라는 말씀이 회자된 적이 있고 나는 이것이 성 이삭이 다뤘던 주제라 생각하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렇다. 성 이삭은 지옥이 텅 비워져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텅 비워져 있기를 희망했다. 초기교회에는 이런 생각을 갖은 많은 교부들이 있었고 이것은 성 바오로 사도의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되는(All will be all in God)’ 종말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지옥이 영원하지 않음을 전제로 한다. 

 

성 이삭은 영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특별히 흥미를 지닌 것이 아니라 ‘신적 사랑의 무한함(The immensity of divine love)’이 그의 관심사였다. 성인은 신적 사랑은 하나의 목적을 지녔으며, 창조의 목적은 분명히 인간 악에 의해 좌초되지 않는 다는 것과 신적 사랑은 마침내 어떻든 지옥을 극복할 것을 믿었다. 성 이삭의 개인적 생각이지만 이것은 니싸의 그레고리오, 서방의 노르비치의 줄리안, 많은 신비가들의 생각이라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삼 “하느님은 사랑임”을 깨닫게 하는 인터뷰 기사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정주의 믿음과 사랑이 얼마나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어찌보면 지옥도 하느님의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로 인해 인간이 자초하는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천국도 연옥도 지옥도 이미 지상에서 시작된다는 것이고 하느님 중심의 정주의 믿음과 사랑을 잃을 때 바로 거기서 시작되는 연옥이자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 치유받은 게라사의 미친 사람과 제1독서 사무엘 하권의 다윗의 대조에서 우리는 귀한 가르침을 얻습니다. 게라사의 미친 사람은 그대로 지옥의 사람같습니다. 흡사 주님이 지옥에서 그를 구출해내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아. 게라사의 미친 사람은 바로 하느님 중심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을 상징하는 바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잃고 공동체 에서 격리 소외되어 고립단절의 삶을 살 때 누구나의 가능성이 지옥에서의 미친 사람입니다. 고립단절의 무관(無關)한 삶이 바로 지옥입니다. 복음 서두의 장면은 그대로 지옥도(地獄圖)를 연상케 합니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 잡을 수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흡사 지옥에서 구원의 하느님을 찾아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미친이를 지옥에서 끌어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참 고맙고 감동적입니다. 더러운 영을 제압할 수 있는 분은, 더러운 영에 들린 이를 지옥에서 끌어낼 수 있는 분은 구원자 예수님뿐입니다. 어제 주일 삼종기도후 강론시 교황님 한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누누이 강조하는 말씀이 “악마와 대화하지 말라(Don’t dialogue with the devil)”는 것입니다. 악마와 대화하다보면 십중팔구 말려들기 마련이니 창세기의 하와가 그 좋은 증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악마의 아부성 발언을 일언직하에 물리치시며 부마자로부터 떠날 것을 명령하는 예수님입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일련의 과정을 겪은후,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겠다는 마귀들렸던 자의 청을 거절하시고 자기 공동체 삶의 자리로 복귀하여 복음 선포자의 삶을 살 것을 명령하십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부마자(付魔者)에서 복음 선포자(宣布者)로 획기적 구원의 전환에 모두가 놀랐다 합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마귀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평소 하느님 중심의 정주의 믿음과 사랑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새삼 지옥도 천국도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정주의 믿음과 사랑을 살아갈 때 바로 거기서 시작되는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오늘 사무엘하권의 다윗의 대죄의 보속으로 겪는 고난과 시련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대로 지상에서 겪는 지옥체험입니다. 정말 미치거나 자살까지 이를 극한 상황에서 의연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다윗의 모습이 복음의 미친자와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다윗의 하느님 중심의 정주의 믿음과 사랑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으며 올리브 고개를 울며 올라가는’ 피난길에 오른 장면은 그대로 비극의 절정을 상징합니다.

 

참으로 이 지옥과도 같은 극한 상황의 수모와 곤욕과 시련 모두를 남김없이 비움과 겸손의 계기로 삼은 다윗의 하느님 중심의 믿음과 사랑이 정말 놀라운 감동입니다. 하느님은 시종일관 이런 다윗을 눈여겨 보시며 함께 해 주셨음을 깨닫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시편 139장 말씀입니다.

 

“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 갈 곳 어디리이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시편139,7-8)

 

천국도 지옥도 지금 여기서 시작됩니다. 천국도 지옥도 스스로 자초하는 선택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관계가 좋으면 천국이지만 관계가 나쁘면 지옥입니다. 하느님을 향해 살 때 천국이요 하느님을 등지고 살 때 지옥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정주의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 때 비로소 지상천국의 온전한 삶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그렇게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느님 중심의 정주와 믿음과 사랑을 노래한 제 좌우명 고백시를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작은 나무가 

이제는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나는 좋으니,

 하신 일들 낱낱아 이야기하오리다."(시편73,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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