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0.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로마6,12-18 루카12,39-48

 

 

 

삶의 궁극 목표

-충실하고 슬기로운 참 사람이 되는 것-

 

 

 

"주님은 내 등불을 밝혀 주시고,

 당신은 내 어둠을 비추시나이다."(시편18,29)

 

삶의 궁극 목표는 무엇일까요? 충실하고 슬기로운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평생공부가, 참 중요한 공부가 참 사람이 되는 공부입니다. 신망애信望愛의 사람이, 진선미眞善美의 ‘하느님 중심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수도자를 일컬어 하느님의 사람이라 합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to do)’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아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to be)’ 수도원에 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공부는 평생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평생학인에 평생공부를 통해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참으로 사람 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제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강조하는 바는 성인이, 성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참 사람이 되라는 말씀도 결국은 성인이, 성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인이 되는 평생 삶의 평범한 원리는 넷으로 요약됩니다. “기도하라, 공부하라, 일하라.” 여기에 필히 하나, “운동하라(걸어라)”를 더하여 넷입니다. 

 

바로 성인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궁극 목표요 참 행복의 비결이겠습니다. 사실 믿는 이들은 누구나 내면 깊이에는 이런 성인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이런 성인이 되고 싶은 청정욕淸淨慾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이 또한 주님의 은총과 더불어 끝까지 평생 분투의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 불러 주신 고유의 참 나가 되는 평범한 성인이요, 이는 우리 모두의 성소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고백성사중 가장 많이 써드리는 다음 보속 처방전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희일비함이 없이 한결같이 이대로 살면 구원이요 성인입니다. 절대로 무지와 허무의 늪에 빠지지 않습니다. 저절로 하느님 중심의 삶이 형성되고, 삶의 중심인 주님과의 우정도 날로 깊어지면서 사랑의 주님을 닮아 성인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가 오늘 로마서에서 세례받아 이미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또 격려합니다.

 

“여러분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난 사람으로서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죽음으로 이끄는 죄의 종이 되거나 의로움으로 이끄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 의로움으로 이끄는 순종의 종, 의로움의 종, 주님의 종인 우리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이렇게 순종의 종, 의로움의 종으로 살 수 있겠는 지요. 바로 오늘 복음이 고맙게도 그 답을 줍니다.

 

첫째, 깨어 있는 삶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온갖 환상이 걷힌 참으로 본질적 투명한 진짜 삶을 사는 것이 깨어 있는 삶입니다. 참으로 늘 새롭고 아름다운 매력적인 삶입니다. 깨어있음의 빛이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늘 이렇게 깨어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깨’자 돌림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깨어 있을 때, 깨끗한 마음이요,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어제에 이어 주님은 우리 모두 깨어 살 것을 촉구합니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바로 주님은 유비무환의 자세를 주문합니다. 비단 주님의 도래만이 아니라 언제 뜻하지 않은 죽음이나 사고나 병등 불행이 닥칠지 모릅니다. 이때에 대비하여 늘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을 인생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준비해야 할 것이 죽음입니다. 선종의 죽음에 대한 최상, 최고의 준비는 한결같이 오늘 지금 여기 집중하여 깨어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둘째, 분수에 맞는 삶,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삶입니다.

참으로 제 분수에 맞는 삶을 사는 이가,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사는 이가 충실하고 슬기로운 순종의 종, 의로움의 종, 주님의 종입니다. 오늘 충실한 종과 불충실한 종의 비유는 일차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각자 책임적 존재로 살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주님은 물론 형제들을 감동케 하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그대로 진인사대천명의 자세입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자세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끝까지, 한결같이 자기 책임을 다할 때 구원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이들의 특징이 바로 책임감입니다. 착해서, 사랑이 많아서 구원이 아니라 묵묵히 자기 책임을, 소임을 다할 때 구원입니다. 저도 수도 형제들이 농장에서, 주방에서, 문간에서 말없이 책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시로 감동하고 회개하고 보고 배웁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도 의미심장합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은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몰라서, 보이지 않아서 못하거나 하지 안했을 때의 무지로 인한 경우는 책임이 많이 경감되겠지만, 알면서 고의적이고 태만함으로 책임을 다 못했을 때 결코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그 책임이 더욱 엄중함을 일깨웁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청구하신다.”

 

그릇의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르듯 사람의 모양과 크기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는 성 베네딕도의 말씀대로 한없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하느님께 맡기고 끝까지 기다리며 건들이지 말고 그냥 놔두는 것입니다. 사실 깊이 들여다 보면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평등한 종들입니다. 

 

형제들과 비교할 것 없이, 형제들에게 요구함이 없이, 자기 그릇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묵묵히 다하는 것이 구원과 행복의 지름길임을 깨닫습니다. 말그대로 순종의 종, 의로움의 종, 주님의 종다운 처신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최선을 다해 힘껏 충실하고 슬기로운 주님의 종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생명의 샘이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의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시편36,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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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1.10.20 08:34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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