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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30. 부활 제3주일                                                                사도2,14.22ㄴ-33 1베드1,17-21 루카24,13-35




인생순례여정

-주님과 만남의 여정-



신록의 향기, 생명의 향기 그윽한 ‘알렐루야’ 부활축제시기입니다. 내일부터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마음 설레게 하는 5월 성모성월의 시작입니다. 아침성무일도 독서후 응송은 제자들은 물론 오늘 부활 제3주일 미사에 참석한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 같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크게 기뻐하였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오늘 복음의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를 묵상하던 중 퍼뜩 떠오른 강론 주제는 ‘인생순례여정’이었고, 3년전 안식년 때 산티아고 순례여정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여정은 산티아고 대성전에 도착함으로 끝나지만, 오늘 복음의 엠마오 도상의 두 순례도반은 예루살렘에 도착함으로 그 순례여정이 끝납니다. 


모두가 인생순례여정을 상징하는 귀한 경우들입니다. 여기서의 순례여정이야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의 순례여정은 죽어 아버지의 집에 귀가해야 끝나는 기나긴 여정입니다. 몇차례 인용한 예화가 있습니다. 언젠가 잠깬 순간 ‘아, 산티아고 순례는 끝나지 않았구나. 하루하루 매일 계속되는 순례여정이구나!’ 하는 자각입니다. 


긴듯하지만 짧은 인생여정입니다. 하여 저는 피정지도시 자주 기억할 두 가지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과 죽음입니다. 하느님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하라며 수도원 로고를 휴대폰에 붙여드리고, ‘죽음을 날마다 환히 두고 살라’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을 인용하며, 죽음을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을 상기시킵니다. 하느님과 죽음을 기억할 때 환상은 걷혀 하루하루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제가 자주 피정형제자매들에게 묻는 두 질문이 있습니다. ‘일일일생一日一生, 내 삶을 하루로 압축한다면 나의 현재의 시간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겠느냐?’의 구체적 물음입니다. 오전 또는 오후 몇시쯤에 자리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고 죽음의 귀가시간은 얼마쯤 남겨 놓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내 삶을 인생사계人生四季로 압축할 때, 내 나이는 지금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 자리잡고 있으며, 죽음의 귀가시간은 얼마를 남겨 놓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죽음은 허무에로의 환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를 의미합니다. 이런 묵상을 통해 하루하루의 삶이, 남은 삶이 얼마나 귀한 하느님의 선물이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인생순례여정의 몇가지 핵심적 요소에 대해 나눕니다.


첫째, 우리 순례여정의 유일한 목적지는 ‘하느님’입니다.

산티아고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이자 도반의 예루살렘 목적지가 상징하는 바 우리 인생순례여정의 목적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야 말로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고, 중심이자 의미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다음 오순절 설교문을 보면 온통 문장의 주어主語는 하느님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를 향한 설교문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체험적 고백의 살아있는 설교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사도2,22-24ㄱ).


사도들에게 하느님은 살아계신 너무나 생생한 현실이자 실재였습니다. 과연 우리의 하느님 의식, 하느님 체험은 어떤 상태인지 성찰하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체험하고 만나는 살아계신 하느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베드로가 이를 분명히 고백합니다.


“여러분은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시어,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1베드1,21).


평생순례여정의 ‘하느님’ 목표가, 방향이 분명해야 방황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하느님 방향입니다.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다시 나그네 순례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늘 하느님 아버지를 생각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라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각자의 행실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니, 나그네살이를 하는 동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내십시오.”(사도1,17).


둘째, 도반道伴과 대화중 만나는 ‘영원한 도반’ 주님이십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참 공감이 가는 인디언 속담도 생각납니다. 멀리 가려는 인생순례여정에 도반은 필수입니다. 최소한 둘의 도반에다 영원한 도반 주님이십니다. 바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가 도반의 모범입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는 법입니다. 슬픔도 도반과 나누면 힘이 됩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제자가 침통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고 토론할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둘만의 대화에 끼어 든 것입니다. 참 신비하게도 그들은 눈이 가리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합니다. 아, 우리는 눈이 가리어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얼마나 많이 알아보지 못하고 지냈겠는지요. 대화의 세 종류에 대해 크게 공감하며 읽은 적이 생각납니다. 


혼자만의 ‘모노로그(mono-logue)’, 둘만의 ‘다이어로그(dia-logue)’, 셋만의 ‘트라이로그(tri-logue)’라 합니다. 대화한다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제말한 하는 혼자의 독백의 모노로그의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진정한 대화는 오늘 복음에서 보다 시피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 하는 셋의 삼자 대화 트라이로그라 합니다. 하여 둘이 이야기 할 때는 상징적 의미로 주님을 위한 빈의자 하나를 마련해 두는 것입니다.


특히 말씀을 공부하며 토론할 때는 물론이고 둘만의 대화에도 주님께서 함께 현존하신다 믿고 할 때는 훨씬 깨어 듣게 되고 서로의 품위도 지키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엠마오 도상의 두 도반이자 제자들의 주님과의 삼자대화, 트라이로그는 얼마나 진지하고 풍부한지요. 두 제자를 향한 주님의 질책이 참 고맙습니다. 꼭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 같습니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루카24,25ㄴ-26)


정말 성령을 통해 주님께서 함께 현존하실 때 성경을 깊이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후에야 그들은 성경말씀을 나누는 도중에 주님을 만났음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함께 대화를 나눌 때 주님도 함께 하심으로 진리도 계시되고 주님도 만납니다. 이래야 풍요로운 인생순례여정이요, 하여 최소한 둘의 도반은 필수입니다. 둘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때 소리 없이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며 깨우쳐 주시는 주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베드로는 다윗 시편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깨달았으니 바로 복음의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처럼 주님께로부터 영감받았음이 분명합니다. 하여 다음 시편은 그대로 부활하신 주님의 고백이 됩니다.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사도2,27-28).


바로 오늘 화답송 시편 16장의 인용입니다. 방금 흥겹게 부른, “주여,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소서.” 화답송 후렴도 위 시편에 근거합니다. 아, 바로 우리 인생순례여정이 생명의 하느님께 이르는 ‘생명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화답송 후렴을 내포한 다음 시편 마지막 구절은 얼마나 은혜로운지요.


“주님,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시편16,11).


언젠가 그날의 하느님과의 복된 만남이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앞당겨 가득한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는 우리들입니다.


셋째, 환대를 통해 만나는 주님이십니다.

인생순례여정의 참 중요한 요소가 환대입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이자 도반이 환대의 모범입니다. 만약 이들이 예수님을 환대하지 않았다면 길에서 대화를 나눴을지라도 끝내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더 멀리 가려는 듯 보이자 두 제자는 만류하며 환대에 몰입합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루카24,29).


이어 식탁에서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그들에게 나눠주셨을 때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 봅니다. 환대를 통해 만난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새삼 환대영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정주영성과 더불어 환대영성을 살아가는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환대의 집’ 수도원에서 ‘환대의 수도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환대영성의 근거가 되는 성 베네딕도의 말씀입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 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성규53,1).


아마 눈이 열리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진정 이것이 건강한, 건전한 신비주의입니다.


넷째, 이 거룩한 미사전례를 통해 주님을 만납니다.

오늘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의 일화는 인생순례여정의 상징이자 미사전례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전반부는 말씀의 전례를 통해 만나는 주님을, 후반부는 성찬전례를 통해 만나는 주님을 보여줍니다. 다음은 그대로 성찬전례시 성체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알아본 사실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 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사라지졌다.’(루카24,30-31).


우리 모두 미사전례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미사은총은 하루로 확산擴散되고 하루는 미사로 수렴收斂됩니다. 하여 삶과 성체성사는 하나가 되니 점차 삶의 성체성사화가 실현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부단히 우리 삶을 정화淨化하고 성화聖化하여 인생순례여정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을 모시고 하늘나라의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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