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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2. 사순 제5주일                                                                          에제37,12ㄹ-14 로마8,8-11 요한11,1-45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허무虛無가 아닌 충만充滿한 삶-



사순시기도 점차 깊어져 오늘은 사순 제5주일, 얼마 지나면 고대하던 주님 부활대축일입니다. 이미 부활의 전조와도 같은 봄꽃들도 때되니 어김없이 피어나 부활의 기쁨을 앞당겨 노래합니다. 하여 우리는 사순시기 우울하고 무겁게 지내지 않고 기쁘게 감사하면서 지냅니다. 방금 흥겹게 부른 화답송 후렴이 그대로 우리 마음을 대변합니다.


“주님께는 자비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나이다.”(시편130.7ㄴㄷ)


오늘 하루, 아니 사순 제5주간 내내 짧은기도로 바치시면 참 은혜로울 것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바친 저녁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후렴이자 아침성무일도 즈카르야의 노래 후렴 역시 얼마나 정겹고 흥겨웠는지요.


“우리 친구 라자로가 잠들어 있으니 이제 가서 그를 깨우자.”(요한11,11).


라자로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님의 친구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친구 예수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해 주시니 이보다 큰 행복도, 큰 기쁨도 없습니다. 


그동안 사순시기 주일들의 복음 배치도 은혜로웠습니다. 그대로 우리의 영적여정을 상징합니다. 사순 제1주일은 에수님의 유혹사화, 사순 제2주일은 예수님의 변모사화, 사순 제3주일은 ‘생명수이신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만남, 사순 제4주일은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 눈 뜬 맹인, 그리고 마침내 사순 제5주일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의 일곱 표징사화 가운데 최고봉이라 일컫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 살아난 라자로'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 긴 복음의 구성도 풍부한 묵상감입니다. 어느 대목도 생략하기가 아까운 내용들입니다. 참 흥미진진한 구원의 드라마같습니다. 라자로의 죽음-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눈물을 흘리신 예수님-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으로 끝나지만, 이어 최고의회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는 충격적 장면이 펼쳐집니다. 라자로를 살리신 결과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베타니아 마을의 삼남매 마리아와 마르타, 그리고 병을 앓고 있는 그들의 오빠 라자로를 대상으로 전개되는 복음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전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이 의미심장합니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병고의 의미도 환히 드러납니다.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신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 마리아와 그 오빠 라자로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사랑하십니다. 이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요한11,11).


‘잠들다’는 우리말도 마찬가지지만, 그리스 말이나 히브리 말에서도 죽음을 완곡하게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사경문중 ‘부활의 희망속에 고이 잠든’이란 대목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주님만이 깨울 수 있는 죽음의 잠입니다. 주님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시어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불러일으킵니다. 


마침내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벌써 사흘이 지나 예수님은 베타니아에 도착하셨고 마중나온 마르타가 주님과의 감동적이 대화가 전개됩니다. 마르타와 대화의 결론같은 다음 주님 말씀이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11,25ㄴ-26).


주님과 일치되어 살 때 늘 생명 충만한 부활의 삶입니다. 바로 오늘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이자 질문입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믿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믿음을 청해야 합니다. 참으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이에게는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한 부활의 삶을 누립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11,27ㄴ).


마르타 덕분에 우리는 참 좋은 믿음의 고백을 배웁니다. 이의 결정적 구원의 표지가 바로 세례성사이고 성체성사입니다. 이미 세례성사 은총으로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과 하나됨으로 영생을 살게 되었고 매일의 성체성사 미사가 이를 확인해 줍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제2독서 로마서에서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로마8,9ㄴ-10).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죽음의 현장에 도착했을 때 마르타와는 달리 마리아를 비롯해 모두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었고 마리아가 대표로 예수님께 아쉬움을 토로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11,32ㄴ).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루살렘 도성을 보시고 울으셨던 예수님께서 이들의 슬픔에 공감하여 함께 눈물을 흘리십니다. 이런 슬픔의 깊이를 통과했을 때 비로소 부활의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사람이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이어 라자로를 살리시는 극적인 장면이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예수님; “돌을 치워라.”

마르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납니다.”

예수님;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요한11,39-40).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웁니다. 라자로를 살리기 직전입니다. 라자로를 잠깨우기 직전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무덤을 가로막고 있는 온갖 근심과 걱정, 불안과 두려움, 탐욕과 질투 등을 상징하는 돌들을 치우십시오. 살다보면 자기무덤에 갇혀 죽어 지내기 십중팔구입니다. 바로 라자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똑같은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살려내시는 이 은혜로운 미사시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라자로를 살리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께 신뢰가득 담아 기도바치는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 즉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드는 것은 이제 그리스도교 전례 전통에서 전형적인 자세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막막하고 답답할 때 침묵으로 또는 말로써 예수님처럼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드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미사중 성찬전례나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눈을 들어 제대의 하늘을 보는 것을 습과화하기 바랍니다. 참 좋고 바람직한 기도 습관입니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11,41ㄷ-42).


그대로 우리이 중재자이신 파스카의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중 우리의 믿음을 위해 바치는 기도같습니다. 두 번째부터 ‘아버지’라는 호칭은 직역하면 ‘당신’입니다. 얼마나 아버지와 친밀한 일치의 관계의 예수님인지 깨닫습니다. 성부와 성자의 일치는 항구하기에 성부께서는 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그분의 청을 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라자로의 부활에 앞서 예수님만이 참으로 유일무이한 아버지와의 부자관계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바치는 우리의 기도라면 모두가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신후 우렁차게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11,43ㄴ).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심을 입증하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의 영광을 앞당겨 보여 주십니다. 라자로의 부활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아버지의 영광, 아드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라자로만 아니라 이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무덤으로부터 불러내십니다. 


절망과 좌절, 불안과 두려움, 걱정과 근심, 탐욕과 교만의 무덤에 묻혀 있다 생각할 때 ‘라자로’ 이름 대신 내이름을 넣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며 무덤문을 박차고 즉시 탈출함으로 부활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똑같은 파스카의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중 우리를 각자의 무덤으로부터 불러 내십니다. 마침내 영적 유배인들인 우리에게 에제키엘 예언이 실현됩니다. 


“나 이제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에제37,12ㄴㄷ).


바빌론 유배중인 백성들이 상징하는 바 세속의 무덤에서 살고 있는 영적 유배인들과 같은 우리들입니다. 눈만 열리면, 각자의 무덤에서 나오면 지금 여기가 영적 이스라엘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이어지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도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에 해당됩니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에제37,14).


라자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신 똑같은 주님께서 우리 각자의 죽음의 무덤에서 우리를 살려내시고 우리를 당신의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어 우리 모두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이를 확인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8,11).


마침 어제 어느 저명인사의 컬럼중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권력이란 신비롭고 매력적인 것이고 그 본질이 무엇인가 호기심이 컸다. 하여 권력의 심층부를 파고 또 파고 들며 생각했다. 결론은 권력의 심층부는 양파 속 같다는 것이다. 파고들다 보면 그 과정에서 자칫 타락만이 수반할뿐 결국 도달하게 되는 것은 허무일뿐이다.”


어찌 권력뿐이겠습니까? 하느님 없는 인생 역시 양파속 같아 도달하는 결론은 허무입니다. 어찌보면 인생의 본질은 코헬렛의 고백처럼 허무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코헬렛 서두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1,2).


그러나 다시 살아난 라자로처럼 부활의 삶을 사는 우리의 결론은 성령충만입니다. 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충만이다, 충만! 우리는 말한다. 충만이다. 충만! 모든 것이 충만이다!” 또는, “사랑이다, 사랑! 우리는 말한다. 사랑이다. 사랑! 모든 것이 사랑이다!” 또는, "은총이다, 은총! 우리는 말한다. 은총이다. 은총! 모든 것이 은총이다!"


저절로 찬미와 감사, 평화와 기쁨의 충만한 부활의 삶을 사는 우리들이 될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라자로의 부활에 이은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의 전조입니다. 죽음의 허무와 절망이 아닌 주님 부활의 영광과 충만을, 희망을 앞당겨 사는 우리들입니다. 결국 믿는 우리를 통해 드러나는 모두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성규57,9).


바로 분도수도회의 모토이자, 수도원 정문 바위판에 새겨져 있는 성구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당신 영광과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어 우리 모두 영원한 부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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