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4. 토요일(뉴튼수도원 75일째)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1567-1622) 기념일

                                                                                                                                    히브9,2-3.11-14 마르3,20-21


                                                                             미쳐야(狂) 미친다(及)

                                                                          -제대로 미치야 성인(聖人)-


오늘 복음을 보면 마음이 밝아지고 기분이 좋습니다. 딱 두절로 짧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 복음중 오늘 복음보다 짧은 복음은 없을 것입니다. 

오래 전의 일화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역시 12년 전 여기 뉴튼수도원에 머물 때 일입니다.

"원장신부님, 강론이 아주 좋습니다.“

당시 원장신부님의 영어미사중 영어강론에 대한 어느 수도형제의 찬사였습니다.

"예, 어느 면이 좋았어요?“

반색하며 묻자, 

"아주 짧아서 좋았습니다.“

란 대답에, 언뜻 스치던 신부님의 실망스런 안색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좌우간 말이든 글이든 기도든 성령의 이끄심이 아니라면 짧고 순수한 것이 좋습니다. 사실 마음이 간절하고 절실하면 저절로 짧아지기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 중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라는 대목이 강렬합니다. '미쳤다'는 말마디가 좋은 묵상감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습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누구나 무엇엔가 미치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허무한 세상, 재미없는 세상, 사막같은 세상,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 이게 인간입니다. 제대로 미치면 성인(聖人), 달인(達人), 장인(匠人), 도인(道人)이지만 잘 못 미치면 폐인(廢人)이란 옛 강론 내용도 생각납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프란치스코 주교 학자나 복음의 예수님 및 모든 성인(聖人)들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분명 미친 사람들입니다. 제 정신이 아닌 거지요. 매일 새벽 3시마다 일어나 묵상하여 강론을 쓰는 저 역시 미쳤을 지도 모릅니다. 직장 생활 8년만에 교직을 접고 제 나이 34세에 수도원에 들어올 때 찬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반대했습니다. 무모(無謀)하기는 맨땅에 헤이딩하는 모습이었고 모두가 걱정했습니다. 이 또한 세상 눈에는 미쳤음이 분명합니다.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합니다. 예수님 역시 당대 세인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음이 분명합니다. 미친 예수님께는 가는 곳 어디나 고향이자 집이었습니다. 머리 둘 곳 조차 없는 정처없는 삶이셨지만 역설적으로 가는 곳 어디나 고향이요 집이었음을 뜻합니다. 오늘 '제자들과 함께 집으로 가셨다'라는 대목의 집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활동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당시 엘리트 종교인들인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과의 빈번한 충돌, 상종 못 할 죄인들, 세리들, 창녀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림 등 예수님이 가족 들 눈에는 미쳤다고 볼 수 뿐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교사들도 마귀 두목에 사로잡혀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몰아 붙였을까요. 다만 예수님의 충실한 추종자들만이 예수님을 사랑했고 존경했고 무한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하느님 사랑에 제대로 미친 성자(聖子), 하느님의 아드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미쳐야 미칩니다.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합니다. 곳곳에서 제대로 미친 성인같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는 기쁨에 살 맛나는 인생입니다. 제대로 미쳤기에 마침내 하늘의 하느님에 까지 닿아 하느님을 감동시겨 부활하신 후 우리의 영원한 대사제가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히브리서가 고백하는 그대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니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얼마나 더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로 대사제 예수님께서 집전하시는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제대로 미쳐(狂) 하늘까지 이르신(及) 예수님 덕분에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좋은 미사 선물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제대로 미친 성인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사도16,14참조).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61 믿음의 순례자 -경청과 겸손, 인내의 사람-2021.3.8.사순 제3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1.03.08 110
860 믿음의 삶은 이제부터다 -선택, 훈련, 습관-2022.8.7.연중 제19주일 프란치스코 2022.08.07 224
859 믿음의 사람들-믿음 예찬-2015.1.31. 토요일(뉴튼수도원 82일째) 프란치스코 2015.01.31 478
858 믿음의 눈-2017.2.13. 연중 제6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7.02.13 125
857 믿음의 눈 -회개가 답이다-2018.1.31. 수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1815-1888)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8.01.31 231
856 믿음은 주님과의 관계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2016.4.22. 부활 제4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6.04.22 483
855 믿음은 무엇인가?--믿음의 전사戰士-2015.10.17. 토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순교자(35-110)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5.10.17 281
854 믿음과 실천 -자기 버림, 제 십자가, 주님 따름-2020.2.21.연중 제6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2.21 156
853 믿음과 만남, 구원의 여정 -찬양과 감사-2018.11.14.연중 제32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1.14 120
852 믿음 예찬 -믿음의 내적 여정-2019.8.11.연중 제19주일 1 프란치스코 2019.08.11 168
851 믿는 이들의 영적 족보 -전통의 뿌리, 정체성-2020.9.8.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9.08 102
850 믿는 이들의 영원한 모범이신 마리아 성모님 -우리 하나하나가 “임마누엘”이다-2022.3.25.금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프란치스코 2022.03.25 200
849 믿는 이들의 신원 -주님의 제자, 주님의 선교사-2022.6.11.토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 프란치스코 2022.06.11 172
848 믿는 이들의 삶 -하느님 배경背景과 중심中心의 삶-2017.7.18.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7.07.18 113
847 믿는 이들은 ‘주님의 전사’다 -믿음, 희망, 사랑-2022.1.30.연중 제4주일(해외원조주일) 1 프란치스코 2022.01.30 132
846 믿는 이들 삶의 등정登頂; 겸손과 사랑, 인내, 한결같음-2020.11.10.성 대 레오 교황 학자(400-461)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11.10 97
845 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길 -기도, 회개, 용서-2021.6.25.금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1 프란치스코 2021.06.25 154
844 민족의 화해와 일치-돌아오라, 기도하라, 용서하라-2016.6.25. 토요일 남북통일 기원미사 프란치스코 2016.06.25 245
843 민족의 화해와 일치 -평화공존-2023.6.25.주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프란치스코 2023.06.25 321
842 민족 공동체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기도, 회개, 용서-2022.6.25.토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남북통일 기원미사) 프란치스코 2022.06.25 161
Board Pagination Prev 1 ... 124 125 126 127 128 129 130 131 132 133 ... 172 Next
/ 172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