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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9.21. 월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에페4,1-7.11-13 마태9,9-13


                                                                                      빈틈과 제자리


어제의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1985년 졸업후, 만 30년만에 혼인미사 주례차 모교인 서강대 성당을 찾았습니다. 30년전과는 너무나 변한 상전벽해의 외적모습이었습니다. 얼마나 외적발전을 이루었는지 말 그대로 빈틈의 외적공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발전하면 할수록 외적공간의 빈틈도, 자유도, 낭만도 사라집니다. 예전 모습을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언덕도, 솔밭의 넉넉한 공간도 사라졌습니다. 비숫한 시기 개원했던 우리 요셉수도원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빈틈이 없네요.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수도원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수도원은 외적변화나 발전이 거의 없었습니다.”

“외적발전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수도원만은 외적발전이 없는 것이 좋습니다.”


성당에서 혼인미사에 참석했던 어느 형제와의 짧은 대화입니다. 수도원에 귀원도중 차 안에서도 동행했던 수사님과 ‘빈틈’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사실 수도원은 30년전 쯤이나 지금이나 외형은 큰 변화가 없어 큰틀의 윤곽은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넉넉한 외적공간이요 빈틈이 많습니다. 하여 많은 이들이 쉬기 위해 하느님의 빈틈을 찾아 수도원에 옵니다. 오늘은 ‘빈틈과 제자리’에 대한 묵상나눔입니다.


‘빈틈이 없다’는 것은 쉴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빈틈없는 공간에 사람이기에 삶이 너무나 팍팍하고 인정도 메말라 갑니다. 여유도 넉넉함도 없습니다. 외적공간의 빈틈은 부족해도 내적공간의 빈틈은 넉넉하게 마련해야 좋습니다. 빈틈이 많은, 인간미와 인정이 넘치는 어벙한 사람들이 때로 그리운 시절입니다.


하느님은 빈틈 자체입니다. 누구나 머물 수 있는 빈틈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여전히 빈틈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주님안에 머물러 주님을 따를 때 비로소 제자리의 확보입니다. 주님의 빈틈 안에 우리의 제자리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 머물기 전까지는 제자리의 신원도 분명치 않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똑같은 제자리도 없습니다. 주님의 빈틈 안에 각자 고유의 제자리가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세관에 앉아있는 세리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라.”

부르심에 즉시 응답해 주님을 따라 나선 마태오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비로소 주님안 빈틈에서 제자리를 찾은 마태오입니다. 세상에서 제자리가 없던 세리와 죄인들이 주님 안 빈틈에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다음 장면이 저에겐 그렇게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자리를 함께 하였다.’


마치 주님 안 빈틈에 각자 고유의 제자리를 잡고 있는 세리와 죄인들,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흡사 우리말 ‘제자리’와 ‘제자’가 연결되는 느낌입니다. 주님 안 빈틈에 제자리를 잡을 때 비로소 제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차별받아 제자리가 없던 이들을 부르시어 제자리를 찾게 해주심이 바로 복음입니다. 선입견이나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의 현재 그 사람을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과거나 밖의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면의 마음을, 각자의 가능성을 보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깊이 들여다 보면 모두가 병자요 죄인입니다. 잘나서 우리를 부르신게 아니라 병자요 죄인이기에 불러주셨습니다. 바로 주님은 병든이들, 죄인들을 불러 치유, 구원해 주시고자 당신 빈틈 안에서 제자리를 마련해 주십니다. 


주님 없이는 제자리도 없고, 제자리에 있어도 모릅니다. 성소는 바로 주님 안 빈틈에서 제자리를 찾았다는 것이며, 제자리의 중심에 머물 때 비로소 안정과 평화입니다. 삶이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주님 안 제자리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주님 안 빈틈 안에 제자리를 잡을 때 비로소 내외적 일치입니다. 주님 안 제자리에 머무는 이들은 과거로부터, 현재의 온갖 외적인 것들로부터 해방입니다. 참으로 자유롭기에 가면을 쓸 필요도 없고 위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치(unity)는 획일화(uniformity)가 아닙니다. 일치는 다양한 요소들이 주님의 ‘하나’안에서 함께 완전한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합니다. 주님은 바오로를 통해 당신의 빈틈 안에서 제자리를 찾은 이들에게 당부하십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하십시오.”


바로 주님 안 빈틈에서 제자리를 찾았을 때 이런 덕목의 아름다운 일치의 공동체입니다. 희망도 하나,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 세례도 하나, 만물의 아버지인 하느님도 하나,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안에 편재하신 하나이신 하느님입니다. 주님의 ‘하나’ 안에 제자리요 일치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떠날 때 제자리를 잃고 분열이 뒤따릅니다.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끊임없이 성장하고 성숙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몸인 살아있는 유기체의 공동체입니다. 생명없는 무기체의 집단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생명체인 공동체입니다. 각자 주님 안 제자리에서 직무를 충실히 수행함으로 그리스도의 몸도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공동체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은 함께 갑니다. 우리가 모두 각자의 제자리에 충실함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 마침내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일치-성숙-충만함’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분열-미성숙-결핍’의 부정적 현실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바오로의 통찰이 참으로 깊고 신선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각자 제자리를 확인시켜 주시고 일치와 조화의 아름다운 공동체로 성장시켜 주십니다. 주님의 파스카의 신비와 사랑을 먹고 자라나는 당신 몸인 생명의 교회 공동체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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