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0.6.23.연중 제12주간 화요일 

2열왕19,9ㄴ-11.14-21.31-35ㄱ.36 마태7,6.12-14

 

 

 

좁은 문들의 통과 여정

-생명의 곡선길-

 

 

 

10일전, “신부님, 저 오늘 휴가 떠납니다!” 인사를 마치고 꽃처럼 환한 모습으로 휴가를 떠났던 수사님이 어김없이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어제 귀원했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 역시 모두가 인생 휴가가 끝나면 아버지의 집으로 귀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 휴가가 끝나고 죽음이 임박했어도, 돌아갈 집이, 귀가할 집이 마땅치 않다면 얼마나 난감하겠는지요.

 

어제 참 좋은 분이 4월 강론집을 교정하여 제본해다 줬습니다. 무려 수십년동안 매월 작업해다주는 한결같이 성실한 분이십니다. 강론집 ‘구원의 여정’이란 제목도, 밝고 환한 표지의 그림도 참 좋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은 무의미한 여정이 아니라 ‘구원의 여정’입니다. 인생 휴가 후회없이 잘 끝내고 아버지의 집으로 귀가하는 구원의 여정, 귀가 여정입니다.

 

또 어제 참 좋은 시를 발견하고 여러분과 나눴습니다. 좋은 시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그대로 구원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이 시 덕분에 복음을 중심으로 한 강론의 뼈대가 떠올랐습니다. 주저없이 ‘좁은 문들의 통과 여정-분별의 지혜와 사랑, 기도와 시와 유머-’로 정했습니다. ‘구부러진 길(이준관)’이란 시입니다.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볕도 많이 드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사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따뜻한 애정이 가득 담긴 고향집 같은 시입니다. 말그대로 힘들고 험한 좁은 문들의 여정을 잘 통과한 분들의 모습이 바로 구부러진 길 같은 모습입니다. 제 어렸을 때만 해도 온통 구부러진 곡선의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았습니다. 

 

산도 곡선이고 초가 지붕도 곡선이고 길도 곡선이고 논뚝도 밭뚝도 곡선이고 내천도 곡선이었습니다. 나무의 나이테도 곡선입니다. 특히 수령따라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 오묘한 나이테의 무니는 우리의 내적여정을 상징하는 영혼의 나이테 무늬처럼 생각됩니다. 또사람들의 얼굴도 말도 대부분 부드럽고 인정 많은 곡선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이런 곡선은 사라지고 직선들 가득한 참 단조롭고 삭막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자연은 곡선을 만들었지만 사람은 직선을 만들었습니다. 좀 불편하고 느리더라도 참으로 깊고 아름다운 생명의 길이 곡선길입니다. 똑바로 난 직선길보다 굽이굽이 오솔길은 얼마나 깊고 아늑한 지요. 크고 작은, 이런저런 좁은 문들을 잘 통과했을 때 바로 아버지의 집에 닿는 구부러진 곡선길, 구원의 인생길입니다. 

 

좁은 문들의 구부러진 곡선길말고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과연 좁은 문들 잘 통과해온 굽이굽이 구부러진 구원의 곡선길인지 때로 멈춰 숨을 고르며 내 삶의 뒤안길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 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굳이 좁은 문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내 몸담고 있는 삶의 자리가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좁은 문은 없습니다. 사람 숫자 만큼의 좁은 문입니다. 각자 통과해 나가야 할 고유의 좁은 문들의 연속입니다. 그렇지만 함께 하는 도반들의 위로와 격려, 도움은 필수입니다. 

 

좁은 문 하나를 통과하면 또 하나의 좁은 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좁은 문들의 통과 여정이 흡사 인생 장애물경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흡사 날마다 첩첩산중의 산을 넘는 느낌입니다. 며칠전 써놓은 글도 생각납니다.

 

“하루하루가 넘어야 할 첩첩산중疊疊山中의 삶이다

하루하루가 통과해 나가야할 좁은 문이다

하루하루가 영적전투 치열한 최전방最前方의 삶이다

어찌하랴 주님은 내 사랑이자 운명이니”

 

누구나에게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좁은 문들의 여정입니다. 피하면 더 작은 좁은 문이 기다립니다. 우리 나라의 처지를 봐도 얼마나 좁은 문들의 연속인지요.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작금의 상황은 말그대로 인내와 지혜를 다해 통과해가야할 좁은 문입니다. 

 

어떻게 좁은 문들을 지혜롭게 잘 통과할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바로 분별의 지혜와 사랑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밝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 지도 모른다.”

 

다 이해심 많은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배은망덕의 사람도 있고, 적반하장의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선의를 곡해하여 듣는 편견과 선입견의 무지의 사람도 있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며 고도의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좋은 것이라 하여 아무에게나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려 다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조심성스럽게 분별의 지혜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 차별이 아니라 분별입니다. 차별은 죄이지만 분별은 지혜입니다. 이런 분별의 지혜는 겸손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이래야 좁은 문들의 통과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황금률입니다. 황금률만 잘 지켜도 좁은 문들이 통과에 역시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황금률은 긍정적인 것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너무나 평범자명한 진리이지만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기에 너무 잘 잊고 지내는 진리입니다. 참으로 이대로만 하면 좁은 문들의 통과는 훨씬 수월해 질 것입니다. 말그대로 분별의 지혜이자 사랑입니다. 예수님보다 10살 더 많았던 랍비 힐렐의 일화도 재미있습니다.

 

-한 냉소자가 그에게 한발로 서있는 동안 온율법을 가르쳐 줄 것을 청했습니다. 힐렐의 즉각적인 대답입니다. “네가 싫어하는 것을 네 이웃에게 하지 마라. 이거이 율법 전부이다. 가서 그것을 공부하라.”-

 

얼마나 단순명쾌한 답변인지요. 예수님과는 똑같은 황금률의 진리를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또한 분별의 지혜이자 사랑입니다. 이대로만 산다면 좁은 문들의 통과는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다음에 기도 특히 성서의 시편과 시, 그리고 유머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하권을 보세요. 아시리아의 산헤립의 침공으로 풍전등화의 위기는 말그대로 절망적 좁은 문의 상황입니다. 바로 여기서 히즈키야는 간절한 기도로 좁은 문을 통과합니다.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을 뜨고 보아 주십시오. 이제 주 저희 하느님, 부디 저희를 저자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마침내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알려주는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일과표에 따라 평생, 끊임없이, 매일, 한결같이 규칙적으로 바치는 시편성무일도는 물론 매일미사가 좁은 문들의 통과에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 아니 믿는 이들 역시 이런 규칙적 항구한 수행은 좁은 문들의 통과를 위해 꼭 권하고 싶습니다. 하여 제가 자주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분따라, 감정따라. 마음따라 살지 말고, 일과표의 궤도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시와 유머도 큰 도움이 됩니다. 시중의 시는 성서의 시편이지만 좋은 시나 노래도 좁은 문들의 통과에 큰 도움이 됩니다. 다음 유머러스한 제 자작시를 들어 보십시오. 무와 배추가 한창 왕성하게 자라나는 채소밭을 보며 쓴 시입니다. 좁은 문들 통과의 고달픈 삶중에도 미소 짓게 하는 유머같은 시입니다.

 

“웬 아침부터 육체미 대회가

잘 가꿔진 무밭 나란히 도열한 무들

옆으로 늘어진 무잎들 다 벗어버리고

저마다 육체미를 자랑하는 무 사나이들

근육질 알통의 팔뚝같기도 하고 쭉벋은 종아리같기도 하다

옆에서 넋놓고 바라보는 배추 처자들

얼마동안은 계속될 육체미대회 아침 산책때 마다 봐야겠다”-2007년

 

예수님 계시기에 살만한 세상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은 생명의 문, 생명의 길입니다. 바로 거기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산상설교 말씀을 실천해갈 때 예수님을 닮아 좁은 문들의 통과도 수월해질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은 물론 도반들과 함께 하는 굽이굽이 좁은 문들의 통과여정의 구원의 곡선길입니다. 밖으로야 좁은 문들의 연속같지만 내적으로는 날로 깊어지고 넓어지는, 감미 롭고 향기로운 생명의 곡선길이 될 것입니다. 좁은 문들의 통과 여정을 통해 날로 둥글게 익어 원숙해지는 '둥근 삶, 둥근 마음'(제 졸저명)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각자 주어진 좁은 문들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20.06.23 08:07
    "좁은 문들의 구부러진 곡선길말고 다른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과연 좁은 문들 잘 통과해온 굽이굽이 구부러진 구원의 곡선길인지 때로 멈춰 숨을 고르며 내 삶의 뒤안길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54 하느님 중심의 삶 -참 아름답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2018.11.10.토요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400-461)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8.11.10 80
2253 참 사람 -회개, 진실, 겸손, 신의, 예지-2019.3.30. 사순 제3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3.30 80
2252 구원의 여정 -회개, 순종, 축복, 분별-2019.8.1. 목요일 성 알폰소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1696-1787)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9.08.01 80
2251 회개의 표징 -표징들의 표징인 파스카의 예수님-2019.10.14.월요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19.10.14 80
2250 영원한 생명 -영적 어린이가 됩시다-2020.5.5.부활 제4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5.05 80
2249 자아초월自我超越의 여정旅程 -진리의 영-2020.5.20.부활 제6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5.20 80
2248 성모 성심聖心의 삶 -사랑과 순수, 찬미와 감사, 겸손과 순종-2020.6.20.토요일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6.20 80
2247 치유의 은총 -천형天刑이 천복天福으로-2020.6.26.연중 제12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6.26 80
2246 광야의 축복 -생명이자 빛이신 주님과의 만남-2020.7.6.연중 제14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7.06 80
2245 회개의 여정 -희망, 회개, 겸손, 구원-2020.7.28.연중 제17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7.28 80
2244 가장 큰 계명 -경천애인敬天愛人-2020.8.21.금요일 성 비오 10세 교황(1835-1914)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8.21 80
2243 참으로 삽시다 -사랑하라, 새로워져라, 겸손하라-2020.8.30.연중 제22주일 1 프란치스코 2020.08.30 80
2242 더불어 여정중의 공동체 생활 -사랑, 기도, 교정-2020.9.6.연중 제23주일 1 프란치스코 2020.09.06 80
2241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랑하라, 화내지 마라, 자비로워라-2020.9.13.연중 제24주일 1 프란치스코 2020.09.13 80
2240 더불어 여정 중의 공동체 -중심(믿음), 비전(희망), 역할(사랑)-2020.9.18.연중 제24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18 80
2239 멋지고, 맛있고, 아름다운 삶 -말씀 예찬-2020.9.22.연중 제25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2 80
2238 회개와 구원의 더불어 여정 -‘천국입장은 단체입장만 허용된다!’-2020.10.24.연중 제29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20.10.24 80
2237 오늘 지금 여기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삽시다 -기쁨, 기도, 감사-2021.1.18.연중 제2주간 월요일(일치주간) 1 프란치스코 2021.01.18 80
2236 하느님의 나라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기, 바라보고 지켜보기-2021.1.29.연중 제3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21.01.29 80
2235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느님의 자녀답게!-2021.2.12.금요일 설 1 프란치스코 2021.02.12 80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25 Next
/ 125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