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4. 연중 제8주간 월요일                                                                                   2베드1,2-7 마르12,1-12



무지로부터의 해방

‘믿음-덕-앎-절제-인내-경건-형제애-사랑’



가장 쉬운 것이 남을 판단하는 것이요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를 아는 것이라 합니다. 자기를 몰라 교만할 때 남을 판단하지 자기를 알아 겸손할 때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여 자기를 아는 것이 지혜요 겸손이라 합니다. 진정 겸손한 이들은 귀기울여 경청傾聽할 뿐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제가 누누이 강조하는 바 ‘무지의 병’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자기를 모르고 남을 모르는 무지의 병입니다. 무지에는 약도 없습니다. 모르면 알려줘도 모릅니다. 무지함에서 파생되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 교만입니다. 모든 죄악의 뿌리가 무지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깨달음뿐입니다. 깨달아 알아감으로 서서히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깨달음에 직결되는 회개입니다. 회개의 깨달음입니다. 회개의 깨달음 이 또한 은총입니다. 우리 삶은 끊임없이 하느님과 나와 이웃을 깨달아 알아가는 여정입니다. 


오늘 마르꼬 복음 포도밭 소작인의 우화에서 와닿은 주제는 ‘무지’입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 하느님은 포도밭 주인, 포도밭 주인이 보낸 종들은 예언자들, 사랑하는 아들은 예수님, 악한 소작인들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바 소작인들의 무지입니다.


지식과 겸손은, 지식과 지혜는 함께 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무지로 인해 똑똑한 바보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배움이 많아도 무지에서 기인한 탐욕에 눈멀면 쓸모없는 지식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소작인들로 지칭되는 이들이 그러합니다. 당대의 기준으로보면 엘리트층에 속하지만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몰랐고, 하느님이 보내신 예언자들을 몰랐고, 하느님이 보내신 아드님 예수님을 몰랐고, 궁극에는 자기를 몰랐습니다. 소작인들로서의 자기의 분수와 역할을 몰랐습니다. 소작인들로써 주어진 임무와 의무, 분수와 역할에 충실한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들이었다면 탐욕에 눈멀어 포도밭 주인으로 상징되는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침내 주님은 시편을 인용하여 이들이 무지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합니다. 당대 예수님과 제자들을 박해하는 이들은 물론 우리 모두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에 눈 뜨라는 회개의 촉구이기도 합니다.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놀랍기만 하네.”


바로 초대교회 신자들이 시편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렉시오 디비나 한 것입니다. 인간의 무지가 결코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좌절시킬 수 없음을 깨달으라는,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하여 하느님의 일에 협조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가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을 줍니다. 무지에서 벗어나는 구체적 처방을 보여줍니다. 다음 내용에서 주목되는 단어가 ‘앎’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앎으로써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부르신 분을 알게 해 주심으로써, 당신이 지니신 하느님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경건함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앎의 은총이 필수입니다.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라는 말마디는 미사중 예물준비기도 때 포도주에 물을 부을 때 사제의 기도에 인용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앎이란 단어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앎은 이성적 인식뿐 아니라 거기에 상응하는 실천도 내포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필자가 즐겨쓰는 말입니다. 이 앎은 사도들로부터 전해온 교회의 가르침을 알고 실천함을 의미합니다. 머리로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요 실천을 통해 참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니 모르면서 마치 아는 것처럼 하는 말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앎은 언제나 ‘진리의 깨달음’이란 정형적 어구로 쓰이며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을 뜻합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 우리를 참으로 겸손하게 합니다. 아마 대가의 겸손과 순수도 이런 무지의 깨달음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하여 신자들의 삶의 여정은 앎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의 여정, 회개의 여정과 함께 가는 겸손과 지혜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함은 은총이지만 우리의 수행의 노력도 필수입니다. 바로 베드로는 무지에서 벗어나는 구체적 처방을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은 열성을 다하여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앎을 더하며, 앎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애를, 형제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여기서 ‘앎’은 그리스도께 대한 앎이며, ‘인내’는 일반적인 참을성 보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믿는 이들에겐 무조건 인내가 아니라 주님을 희망하며 기다릴 때 비로소 참된 인내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경건’(저는 ‘신심’대신에 개신교 신도들이 즐겨쓰는 ‘경건’으로 바꿉니다)은 하느님 앞에서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생활 전체를, ‘형제애’는 신도간의 친교를, ‘사랑’은 교회를 초월한 모든 사람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믿음-덕-앎-절제-인내-경건-형제애-사랑’ 일련의 과정이 깊은 묵상감입니다.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납니다. 공동생활에 참으로 필요한 덕목들이요 무지로부터 벗어나는 구체적 처방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말씀의 빛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깨달음의 여정, 회개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랑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참 좋은 최고의 처방이 바로 매일미사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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