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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1. 목요일 성녀 클라라(1194-1253) 동정 기념일 

                                                                                                                     에제12,1-12 마태18,21-19,1


                                                                           회개의 표징들

                                                                         -너 자신을 알라-


결국은 어느 누구도 아닌 내 문제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대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먼저 네 자신을 알라는 것입니다. 어제 한 기사가 눈 길을 끌었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가디언(The Guardian)>에 기고한 글에 나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브렉시트) 결정은 영국인의 '시기심과 고립주의'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따라서 브렉시트를 가능케 한 요인이 지속하면 장래에 인간 종(Species)의 멸종이 올 수도 있다.

우리는 현재 심각한 범세계적인 도전, 예를 들어 지구의 온난화 문제, 식량 생산 문제, 전염병, 불평등 문제 등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브렉시트의 출현을 가능케 한 부(富)에 대한 잘못되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고, 나라 안에서 그리고 국가 간에 이 부(富)를 공유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지 못하면, 즉 어린아이처럼 서로 나누어 갖지 않으면, 인류의 멸종이 다가올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은 훨씬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 인간 본능의 변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정권 투쟁의 차원을 훌쩍 뒤여 넘는다. 만약 브렉시트를 가능케 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지 않고 이 같은 본능을 '덕(Virtue)'이라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의 근원적인 '개혁'과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 자칫 인간 종(Species)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브렉시트에 관한 스티븐 호킹의 경고 역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탐욕과 이기심의 본능의 변화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이래서 근원적인 회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회개의 주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나 자신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무자비한 종의 비유 역시 적나라한 인간 실상을 보여 주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이 비유에 대한 주석 중 한 대목입니다. ‘특히 이 특례 비유에서는 하느님의 가없는 자비와 용서, 인간의 숨막히는 비정과 협량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오늘 날 자본주의 사회를 하느님을 잃어 버린 길잃은 문명이라 진단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길만이 살길입니다. 오늘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통해서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과 인간의 실상입니다. 하느님의 거울에, 이웃의 거울에 내 자신을 부단히 비춰보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하느님다운 마음이 대인大人의 ‘도량度量’, ‘아량雅量’이라면 밴댕이 속같은 소인小人의 좁은 마음은 바로 협량狹量입니다. 사드 문제로 첨예하게 대치된 한중 관계에 대한 어느 정치 평론가의 시사진단에서 협량이란 말이 새롭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중국 사람이 싫어하는 '협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쫀쫀하다', '치사하다'라는 거죠. 중국이 하는 게 조금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에게 매우 점잖고, 격조 있게 '너희들 그렇게 치사하게 하지 말고, 스스로 책임 대국이라 했으니까 책임 대국다운 행보를 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런 식의 메시지가 전달됐어야죠. 그것도 외교부 과장급이 말해서 전달됐어야 합니다. 


청와대가 지금 중국 언론과의 전쟁에 나선 거예요. 그러니 패착이라 하는 거예요. 어찌 보면 박근혜 정부 외교에서 마술입니다. 동아시아는 대북 제재 국면이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마술을 부려서 대북 제재 국면을 대남 제재 국면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도량度量과 식견識見은 지도자들의 필수 요소임을 깨닫습니다. 도량이 좁은 협량의 사람들, 바로 이게 인간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무자비한 종이 바로 협량한 인간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자기의 무한한 빚을 탕감해준 하느님의 자비를 까맣게 잊었고, 하여 아주 작은 빚을 진 동료에게 그렇게도 무자비했습니다. 


무지無知와 망각忘却, 탐욕貪慾과 이기심利己心이 바로 이런 괴물怪物같은 협량狹量한 인물人物로 만듬을 깨닫습니다. 스티븐 호킹의 통찰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는 오늘 화답송 후렴은 “하느님의 자비를 잊지 마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너그러움은 끝이 없습니다. 일흔일곱번 용서하라는 말씀은 끝없는 용서를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밥멋듯이, 숨쉬듯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선 내가 '살기위해서' 용서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은총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마태6,12)라는 ‘주님의 기도’의 다섯 번째 청원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라는 말씀을 상기시키는 오늘의 비유입니다.


자기를 몰라서 협량한 사람입니다. 하느님께 무한한 사랑의 빚을 지고 온통 은총으로 살고 있는 자신임을 생각하면 너그럽고 자비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회개만이 하느님의 자비를 닮는 첩경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물론 우리에게도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반항의 집안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이어 반항의 집안 이스라엘 집안을 위한 예표로, 회개의 표징으로 ‘주님의 배우’ 역할을 하는 에제키엘 예언자입니다. 우리의 눈만 열리면, 귀만 열리면 모두가 하느님 자비의 표징, 회개의 표징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참으로 가난을 사랑했던 겸손한 성녀 글라라도 자비의 표징, 회개의 표징입니다. 


이런 자비의 표징, 회개의 표징중의 표징이 이 거룩한 미사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자비하신 주님을 닮아 협량의 사람에서 도량과 아량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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