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26.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창세12,1-12.17-18 마태7,1-5

 

 

 

떠남의 여정

-자기인식의 복(福)된,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

 

 

 

"주님을 찬미하라 좋으신 하느님을,

 그 이름 노래하라 꽃다우신 이름을."(시편135.3)

 

오늘 제1독서 창세기가 참 아름답습니다. 아브라함의 멋지고 아름다운 삶이 압축되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떠남의 여정으로 압축된 아브람의 복된 삶입니다. 첫 대목 다음 부분은 늘 읽을 때마다 신선한 감동이자 충격입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집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 일흔다섯이었다.‘-

 

나이 일흔다섯 놀랍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복덩어리 아브람입니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 편안히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미지의 곳을 향해 떠나라니 어처구니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군말없이 떠납니다. 하란을 떠날 때 일흔다섯이니 제 나이가 일흔다섯입니다. 영원한 현역의 아브람은 내적순례여정중의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의 모범입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떠남의 열정에 있습니다.

 

안주하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부단한 떠남의 여정에 충실한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물도 고이면 썩듯이 삶도 고이면 썩습니다. 끊임없이 흘러야 맑은 물이듯 끊임없이 떠남의 내적 여정에 충실할 때 맑은 삶입니다. 정말 우리의 삶은 떠남의 여정으로 요약됩니다. 잘 떠날 때, 떠나야 할 때, 지체없이 떠나는 삶이, 뒷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사람은 떠나도 향기로 남습니다. 

 

마지막 떠남이 죽음입니다. 최고로 복된 떠남이 향기로운 선종의 죽음입니다.  언젠가 갑자기의 선종이 아니라 아브람처럼 영원한 현역으로 하루하루 떠남의 여정에 충실할 때 아름답고 향기로운 죽음의 은총이요, 이보다 남은 이들에게 좋은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정말 잘 떠나는 죽음이 될 수 있도록 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아브람의 떠남의 여정은 홀로가 아닌 “더불어together” 떠남의 여정이었음을 봅니다. 그대로 우리 수도공동체를 닮았습니다. 주목되는 사실은 아브람이 일단 거주하게 될 때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도 두 번 나오며 후반부 대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 차츰차츰 네겝쪽으로 갔다.’

 

끊임없는 도상중에 있는 떠남의 사람, 아브람입니다. 도착할 때마다 우선 주님의 제단을 쌓으니 그의 하느님 중심의 삶이 얼마나 확고한지 깨닫습니다. 외적으로 떠남의 여정이지만 내적으로는 하느님 중심에 닻을 내려 정주한, ‘정주의 사람’ 아브람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아브람은 떠남의 사람이자 주님 말씀을 경청하여 순종한 사람입니다. 이런 떠남의 여정을 통해 참으로 자기를 아는 자기인식의 겸손과 지혜의 사람, 복된 존재인 아브람이 됐음을 봅니다. 아브람의 삶은 우리 정주수도자들의 롤모델이 됩니다. 우리 역시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음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분명히 합니다.

 

아브람처럼 미지의 곳을 향해 떠나는 막막한 여정과는 달리 우리의 내적순례여정의 궁극 목표는 분명하니 바로 우리의 본향 천상 아버지의 집입니다. 그러니 떠남의 여정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이기도 합니다. 이점이 우리에게는 아브람보다 유리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가 177장 2절도 이런 희망과 기쁨을 노래합니다.

 

“참 기쁨이 넘치는 그곳, 내 주님 계신곳, 

 내 모든 근심 슬픔을 다 위로하여 주시네.

 약속한 땅이여, 오 아름다운 대지여,

 영원히 머무를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

 이빵을 먹는 자는 그 복지 얻으리,

 아 영원한 생명의 빵은 내 주의 몸이라.”

 

우리 베네딕도회 정주수도자들의 영원한 몰모델인 아브람입니다. 우리의 삶은 안주가 아닌 끊임없는 내적 순례 여정중에 있는 정주의 삶입니다. 바로 이를 요약한 영성이 제가 즐겨 쓰는 산과 강의 영성입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정주의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임향해 흐르는 맑은 강”

 

전번 봄소풍때 삼척, ‘덕항산’속 환선굴에서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 흡사 강처럼 느껴져 위 시에다 한 대목을 추가했습니다.

 

“밖으로는 산, 안으로는 강, 산속의 강”

 

그대로 우리 정주의 삶에 대한 기막힌 상징입니다. 산같이 정주해도 우리는 내적으로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으로 삽니다. 우리 안에는 누구나 하느님 향해 흐르는 강을 하나씩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매일 일과표의 궤도 따라 사는 정주의 삶이 끊임없이 흐르는 강같은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로 이런 삶이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이 됩니다.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의 사람들은 결코 절대로 남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무지로 인해 자기를 몰라서 심판이지 자기의 한계와 부족함을 아는 겸손과 지혜의 사람은 일체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랜 정주의 삶중 정화과정의 성숙한 열매입니다. 

 

자기 눈에 있는 티는 물론 들보를 잘 알기에 자기수련에 전념할 뿐 절대로 겁 없이 무모하게 남의 눈에서 티를 뽑아내는 만용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습니다. 오랜 정주의 기도와 회개, 정화과정을 통해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에 도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베네딕도 수도공동체의 정주의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그대로 베네딕도의 정주의 평화가 됩니다. 

 

보십시오. 오랜 정주생활을 통해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에 도달한 우리 수도형제들 절대 누구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너그럽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끝없는 인내와 기다림의 사랑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사실 심판할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정말 주님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이 남을 심판하지,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부족과 한계를 잘 알기에 절대로 결코 남을 심판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눈에 티나 들보를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자체가 아브람처럼 이웃에게는 복이 됩니다. 바로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의 복된 사람들, 바로 참된 정주의 열매입니다. 주님은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 눈의 티와 들보를 뽑아주시고 내적 떠남의 순례 여정에 충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느님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주님, 나는 좋으니

 하신 일들 낱낱이 이야기하오리다."(시편73,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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