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2.연중 제13주일                                        2열왕4,8-11.14-16ㄴ 로마6,3-4.8-11 마태10,37-42

 

 

참 삶의 길

-주님 사랑,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 형제 사랑-

 

 

어제의 세 가지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마지막 수련자 수업시간에 수련수사는 마침 저에게 한가지 말씀을 드리겠다며 많이 눈치를 보며 주저하길래 걱정하지 말고 이야기해달라 했고 내심 긴장했습니다. 무슨 스캔들이나 악습같은 것은 아닌지, 그러나 내가 모르는 것은 알아 개선해야하기에 꼭 듣고 싶었습니다.

 

 

“수사님에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가끔 어쩌다가 체취, 땀냄새, 노인냄새가 난다합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이야기 해줬고 저도 올해 들어와 가끔 느낍니다. 집무실에 방향제를 비치해야겠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약간 충격이었습니다. 매일 속옷을 갈아입고 기상하면 샤워에 하루를 끝내면서 샤워를 하는데 무슨 냄새가 날까, 사실 속옷도 삶지 않고 오래 입다보면 아무리 빨아도 냄새가 나긴하는데 알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안도했습니다. 악습이나 악행의 죄가 아녔기 때문입니다.

 

이건 생리적 문제라 죄가 되는 것은 아니기에 각별히 삼가면 될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맙다고 격려하는 말을 했고 사람의 향기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평생 하느님을 사랑하며 매일 미사에 강론, 끊임없는 기도로 내 마음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 것이라 자부하며 새삼 인품의 향기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어제 15년만에 갑작스럽게 찾은 수녀님의 면담고백성사시 수녀님의 수도원 방문소감입니다. “수도원 입구에 들어와 수도원길을 걷는 동안 예전과는 달리 답답한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활짝 펼쳐진 불암산과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이젠 나무에 가려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15년전이면 그때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없을 때입니다. 가로수길이 하늘길이라 하며 걸을 때 마다 감동했지 산과 하늘을 가리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듣고 나서 후에 걸어보니 하늘도 산도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한 느낌이었습니다. 새삼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주님을 가리는 삶은 아닌지 참으로 작고 투명하고 겸손하여 배경인 주님을 잘 드러내는 삶인지 반성했습니다.

 

하나는 ‘탈성장’에 관한 논의입니다. 이번 1년만에 복간되어 도착한 녹색평론을 읽고 많이 불편하고 부끄러웠고 지구와 인류에 대해 비관적 생각도 들었습니다. 더 이상 지속성장은 환상이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추세라면절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탈성장이 유일한 해법이며 자본주의를 끝내야 한다는데 이를 어쩐단 말인가! 문제는 나왔습니다만 어떻게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답은 참 힘듭니다만 더 늦지 않게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참 삶의 길을 찾아 사는 것입니다. 이젠 혁명적 사고의 전환, 생활방식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고 과감한 정책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근원적 문제에 대한 해결없이 모든 일들이, 심지어는 강론을 쓰는 일도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대만 생각하고 미래에 대한 생각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무수한 쓰레기를 양산하며 먹고 사는 자체가 죄송스럽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참된 삶의 길이 절실합니다. 정말 치열한 가열찬 분투의 노력과 훈련이 절박한 시점입니다.

 

진정한 향기는 인품의 향기, 그리스도의 향기이고, 진정한 삶은 무지의 교만으로 배경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겸손한 삶이요, 진정한 성장은 탈성장에서 부단한 회개를 통한 내적, 영적성장임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닮은 참된 삶의 길이겠습니다. 

 

첫째,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남는 것은, 살아서 할일은 주님 사랑하는 일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닮아가면서 끊임없는 자아초월로 이기적 탐욕의 무지한 나로부터 부단한 탈출입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이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참으로 우선적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눈밝은 이타적 가족 사랑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이웃에 대한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무사한 아가페 사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세례은총이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한 삶이니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이 우리의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분명한 말씀입니다. 더불어 기억해야할 말이 “아모로 파티(Amor Fati)” 운명애입니다. 참으로 내 운명의 십자가, 책임의 십자가를 뜨겁게 사랑하며 항구히 지고 주님을 따르는 순교의 삶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책임을 다하는 믿음이요 사랑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릅니다. 주님 사랑의 결정적 표지가 내 십자가입니다. 비교불가한 내 고유의 십자가요, 이 운명의 십자가, 책임의 십자가를 뜨겁게 사랑하면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도 주십사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짐도 사랑의 선물로 바뀔수 있을 것입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역설의 진리입니다. 날마다 부단히 주님 때문에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 자기를 잃을 때, 비울 때, 버릴 때 비로소 목숨을 얻어 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가난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요, 지금 여기서 구체적 이웃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 형제 사랑없이 하느님께 이르는 길은 없습니다. 이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도 받고, 의인을 의인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도 받습니다. 

 

제1독서에서 엘리사 예언자를 정성껏 한결같이 환대한 수넴의 부유한 여자는 득남할 것일라는 축복을 받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형제를 환대하는 이들의 환대의 사랑은 그 자체가 축복이 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제자는 사도들일 수 있고, 하느님 나라의 증인이 되는 모든 제자들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또 공동체 안에서 박해 때문에 기장 불우하게 된 이들, 그리고 가장 빈곤하게 된 이들이 될 것입니다. 넓고 깊이 보면 가난한 모든 이들이 주님의 제자이자 형제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제자답게 형제답게 살며 작고 가난한 형제들을 보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며, 주님의 가난하고 작은 제자나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두의 중심임을 봅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예수님은 답입니다. 혼자의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제 십자가를 지고 가난한 형제들과 더불어 주님을 따르는 여정에 오르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더불어의 십자가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희의 전부입니다.

저희 사랑, 저희 생명, 저희 희망, 저희 기쁨, 저희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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