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29.월요일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2마카6,18.21.24-31 요한12,24-26

 

 

귀가(歸家)의 여정

-늘 새로운 시작-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저는 우리 삶을 귀가의 여정으로 정의합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여정같지만 죽음은 바로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라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예수님의 고별기도에 나왔던 말마디도 기억할 것입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시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 대성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 설레며 빨라졌던 발걸음의 기억도 선명합니다. 

 

예수님은 물론 순교적 삶을 살았던 대부분 성인들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이자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여겼습니다. 우리의 궁극의 희망이 하느님 아버지이기에 저는 희망의 여정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도원 피정오는 분들에게 맨처음 공통적으로 하는 피정강의 내용이며, 어제도 단체피정자들에게 이 강의를 했습니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이 순교자들 역시 아버지의 집으로 귀가하여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음을 믿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 미사에서 시복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저는 장충동 수도원에서 안식년중이었지만 이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윤지충(1759-1791)은 유교식 제사를 거부하다 처음으로 순교한 조선후기 신자입니다. 124위 순교 시기를 보면 첫 대규모 박해로 기록된 신유박해(1801년) 순교자가 53명으로 가장 많고, 기해박해(1839년)를 전후로 37명, 병인박해(1866) 순교자 20명, 신유박해 이전 순교자가 14명입니다. 

 

성인별 지역별 순교자 수는 서울이 38위, 경상도 29위, 전라도 24위, 충청도 18위, 강원도 3위입니다. 이들 순교자중 5위(이일언, 신태보, 이태권, 정태봉, 김대권)가 전라도 전주 숲정이에서 1839년 5월29일 순교했기에 이날을 기념일로 정해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대로 다음 복음 말씀처럼 예수님 뒤를 따른 순교성인들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바로 내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순교적 삶을, 부단히 자기를 비우고 낮아지고 작아지는 겸손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라는 말씀은 그리스도보다 더 자기를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베네딕도 성인도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 순교적 삶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 했습니다. ‘순교는 성체와의 결합이다’라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예수님을 따라 순교했던 무수한 성인들의 순교의 죽음으로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가 열매 풍성한 교회로 성장, 성숙했음을 믿습니다. 이런 순교영성의 유전자(DNA)는 오늘도 우리 안에 면면히 계승되고 있으며, 비상한 순교만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삶에서 자발적 기쁨으로 순교적 삶을 살게 합니다. 예수님의 다음 복음 말씀이 참 엄중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도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누구든지’, 바로 믿는 이들 모두가 예외없이 순교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결코 값싼 은혜, 값싼 믿음, 값싼 사랑, 값싼 희망은 없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발적 분투의 노력과 훈련이 필수입니다. 바로 하루하루 한결같이 주님 사랑에 자기를 비우고 버리고 주님을 추종함이 주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이렇게 살면서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도 순조로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기 하권의 주인공, 90세의 노순교자 엘아자르입니다. 평소 한결같이 하느님 중심의 고결한 순교적 삶이 훈련되고 습관화되어 제2천성이 됐기에 이런 의연한 순교의 죽음입니다. 하루하루 귀가의 여정에 충실한 평소 일상의 삶 모두가 죽음의 준비임을 깨닫습니다. 엘아자르의 감동적 고백을 일부 나눕니다.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는 나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당신께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이렇게 엘아자르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으니, 그대로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입니다. 사실 이런 죽음보다 후대 믿음의 사람들에게 귀한 선물은 없습니다. 이런 믿음도 삶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독일의 나치스 치하에서 순교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입니다. 이분의 “옥중서간”은 제가 20대 시절 열광하며 수차례 애독했던 책입니다. 1945년 4월9일 처형된 본회퍼의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였고, 그의 묘비명은 “디트리히 본회퍼-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비상한 순교의 죽음도 은총이지만 평범한 일상의 순교적 삶도 은총입니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자발적 기쁨으로 제 십자가를 지고 책임을 다하며 묵묵히 자기를 비우고 버리며 주님을 따르는 사랑의 순교적 삶을 통해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여정도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루하루의 순교적 삶에, 귀가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제 사랑하는 좌우명 기도와 시편성구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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