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9.8.3.연중 제17주간 토요일                                                                              레위25,,1.8-17 마태14,1-12

 

 

 

영원한 비전(Vison)

-희년禧年의 영성-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이 있어야 삽니다. 비전이 없으면 곧 무너지거나 부패할 수 있습니다. 비전이 없을 때, 비전을 잃을 때 자유도 여유도 없습니다. 초월적 거점의 비전을 잃을 때 시야는 좁아지고 마음은 삭막해집니다. 영적 인간은 사라지고 육적 인간만 남습니다. 항구하려면, 한결같으려면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은 영어로 국립국어원에서는 이상, 전망의 우리 말로 쓰기를 권고하지만 ‘비전’이란 영어 그대로의 발음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27년전, 1992년 왜관수도원에서 종신서원식때 강론 일부가 생각납니다. 참고로 왜관에서는 일제 강점기 지명인 왜관倭館을 칠곡으로 바꾸자는 청원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썩 유쾌한 지명은 아닙니다. 강론 내용의 일부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수도원에 비전(vision)이 없다’고 당연합니다. 비전vision이 있다면 그리스도뿐이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느님을 찾는 단순한 삶’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밖의 모두는 환상이요, 우상일 뿐입니다. 결과는 환멸입니다. 그 무엇도 자기 ego를 충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진짜 참 영원한 비전은 그리스도뿐입니다. 하느님, 또는 하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 하느님, 하늘 나라 모두 한 실재에 대한 세 표현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예수님은 물론 요한 세례자 역시 비전은 동일했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3,2)

요한 세례자 설교의 요지입니다. 하늘 나라가 요한 세례자의 영원한 비전이었음을 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1,15).

예수님 설교의 핵심입니다. 하느님의 나라 역시 예수님의 영원한 비전이었음을 봅니다.-

 

여기서 주목할 바 하느님의 나라와 회개의 관계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 조건이 회개입니다. 참으로 영원한 비전인 그리스도를, 하느님을, 하느님의 나라를 맞아들이려 하는 자에게 회개는 필수입니다. 진정 회개가 없으면 악행은 반복됩니다. 회개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겸손입니다.

 

바로 이 회개라는 측면에서 일본에 대한 실망이 큽니다. 회개할 줄, 사죄할 줄 모르는 점에서 독일과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일본 정부는 2일 오전 각료회의를 열어 일본산 부품·소재 등 전략물자 수출 관련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흡사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전개된 양상입니다. 어제 도반과 주고 받은 대화도 생각납니다.

 

-“일본은 희망이 없어 발악한다!”

“공감합니다. 지도자든 국민이든 원대하고 숭고한 비전이, 희망이, 꿈이 없는 일본입니다. 그러니 강한자에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갑질입니다. 이점 우리도 반성해야 합니다. 고압적, 호전적, 단선적, 획일적, 맹목적, 폐쇄적 사고입니다. 일본은 군국주의의 향수와 사고의 잔재가 여전하고 민주화의 역사가 전무합니다. 이웃이라 하지만 참으로 경계해야할, 방심할수 없는 나라입니다. 천여년의 역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반면 한국은 찬란한 민주혁명의 역사가 있고 지극히 역동적이자 비전이, 희망이, 꿈이 넘치는 사회입니다.--- 좌우간 양측이 ‘상생(win-win)’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영원한 참 비전은 하느님이요 하느님 나라요 그리스도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 레위기의 마지막 소개는 ‘희년’입니다. 어제는 이스라엘의 축일에 대해 소개했고 오늘은 희년입니다. 희년의 영성, 희년의 비전이 참 매력적입니다. 예언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예수님 역시 공생애가 시작되자 출사표를 던지듯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바로 이게 희년의 영성이자 비전입니다. 하늘 나라의 회개를 사는 이들에게는 매일매일이 희년의 시작입니다. 구체적으로 희년은 전체적인 해방과 자유를 뜻합니다. 모두가 하느님 창조때의 제자리에로의 귀환을 목표로 합니다. 

 

첫째, ‘인간의 자유(human liberation)’로서의 희년이요, 둘째는 ‘경제적 자유(economic liberation)’로서의 희년이요, 셋째는 ‘생태적 자유ecologicl liberation)’로서의 희년입니다. 인간뿐 아니라 경제적, 생태적 측면 모두가 망라된 참 아름답고도 영원한 비전의 실현입니다. 

 

그러나 희년이 실천됐다는 증거는 없지만 영원한 비전으로, 후대는 물론 오늘의 예언자들에게 영원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대로 하느님 나라의 비전과 일치되는 희년의 영성입니다. 모두가 제자리에서 제모습으로 제대로 서로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 때 비로소 희년의, 하느님 나라의 비전이 실현입니다. 

 

오늘 복음은 헤로데와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람이 하느님 나라의 비전이 없을 때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구체적 장면입니다. 하느님 중심이, 하느님 비전이 없기에 우유부단한, 영혼이, 생각이 없는 ‘무지無知의 사람’, 헤로데요 헤로디아요 헤로디아의 딸입니다. 

 

영원한 비전인 하느님 나라를 살지 못할 때 바로 여기 기생하는 악인 것입니다. 마침내 이들에 의해 하늘 나라의 비전을 살았던 세례자 요한은 순교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지내고, 예수님께 알립니다. 

 

아마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순교적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도 분명 예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기소침, 위축되거나 좌절함이 없이 요한의 몫까지 더하여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실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바로 이의 생생한 증거가 곧장 이어지는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의 복음입니다.

 

비전이 삶의 꼴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비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비전에 따른 현실적 조건이 구비되어야 합니다. 부단히 기본에, 기초에 충실하며 ‘실력’을 키워야 할 것이요, ‘겸손’과 ‘신뢰’의 인품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하느님 나라 비전의 실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비전인 희년의 영성을 살게 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레위25,17). 아멘.

 

 

 

 

  • ?
    고안젤로 2019.08.03 08:53
    주님, 저희가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삶의 비전인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게 하소서.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99 구원의 날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2017.12.25.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프란치스코 2017.12.25 315
3098 열정과 환대-2015.11.17. 화요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1207-1231)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5.11.17 315
3097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삶 -믿음의 답이다-2023.8.12.연중 제18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3.08.12 314
3096 모두가 “신(神)의 한 수(手)”이다 -성소, 주님과의 관계, 훈련-2023.6.24.토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프란치스코 2023.06.24 314
3095 영적승리 -하느님 중심의 삶-2022.10.7.금요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10.07 314
3094 하느님의 눈-2016.1.18. 연중 제2주간 월요일(일치 주간) 프란치스코 2016.01.18 314
3093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을 따라 “해맞이꽃 사랑”으로-2023.8.11.금요일 성녀 클라라 동정(1194-1253)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3.08.11 313
3092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아버지 농부農夫처럼 희망, 사랑, 믿음으로-2023.7.16.연중 제15주일(농민주일) 프란치스코 2023.07.16 313
3091 “성화(聖化)되십시오!” -성화의 여정-2023.6.17.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3.06.17 313
3090 하늘 나라의 삶 -회개, 겸손, 환대-2016.10.1. 토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1873-1897) 축일 프란치스코 2016.10.01 313
3089 빛속에서 살아가십시오-2015.12.28. 월요일 죄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프란치스코 2015.12.28 313
3088 귀향(歸鄕)의 여정 -늘 새로운 시작2023.8.3.연중 제17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23.08.03 312
3087 참된 신자의 행복한 삶 -성소, 친교, 선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2023.6.18.연중 제11주일 프란치스코 2023.06.18 312
3086 자비의 선물, 자비의 환대, 자비의 체험-2016.3.13. 사순 제5주일 프란치스코 2016.03.13 312
3085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 -치유와 위로, 구원-2023.6.30.연중 제12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23.06.30 311
3084 신망애(信望愛)의 힘과 빛 -두려워하지 마라-신망애(信望愛)의 힘과 빛 -두려워하지 마라- 1 프란치스코 2017.07.15 311
3083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 -순교적 삶-2016.9.20. 화요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프란치스코 2016.09.20 311
3082 질투에 대한 치유(the cure for jealousy) 2016.1.21. 목요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6.01.21 311
3081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개, 기쁨, 겸손, 감사-2015.12.13. 대림 제3주일 프란치스코 2015.12.13 311
3080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참되고 단순하고 절박한 삶”-2022.6.9.연중 제10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22.06.09 310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71 Next
/ 171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