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23.사순 제1주간 금요일                                                           에제18,21-28 마태5,20ㄴ-26

 

 

참으로 정의롭고 지혜로운 의인(義人)의 삶

“회개하라, 그러면 살리라”

-구원은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주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여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시편130,3)

 

오늘 화답송 후렴이 반갑고 은혜롭습니다. 이런 깨달음에 투철한 이들이 진정 겸손하고 지혜로운 이들입니다. 자기를 모르는 이들이 남을 판단하지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들은 결코 남을 판단하지도 단죄하지도 않습니다.

 

일찍이 공자께서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온전히 앎으로’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과거의 것을 새로운 깨달음의 계기로 삼는 일이 참으로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이겠습니다. 면담고백성사를 통해서, 또 지난 옛 스승을 책에서 다시 만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새삼 반복되는 역사임을 깨닫습니다. 

 

20년전에 수도원을 찾은 어느 자매가 참 반가워했습니다. 당시는 결혼한지 얼마 안된 30대 초반이였는데 아르헨티나에 이민중 잠시 20년만에 귀국했고, 그 사이에 세 자녀를 둔 50대 초반의 나이라 했습니다. 

 

“20년후에 귀국할 때 그때 다시 뵈어요.”

“20년후에라, 하루하루 살다보면 되겠지요.”

대답을 하고 나이를 헤아려 보니 96세! 자신할 수 없었고, 하루하루 살아야겠다는 자각을 새로이 했습니다. 지난 20년이 순간이듯 앞으로의 20년도 순간일 것입니다.

 

70대말의 노부부와의 만남도 잊지 못합니다. 비슷한 연배의 형제자매들을 만나면 세월의 무게와 더불어 저절로 동질감과 더불어 친밀감을 느낍니다. 어느 자매의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몇년전 시어머니는 9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6.25 사변시 남편을 잃고 26세 홀로 되어 유복자 아들 하나만 키웠고 제가 며느리로 들어왔을 때 시어머니는 46세 참 젊었습니다. 독실한 신자분으로 믿음으로 사셨지만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결혼후 평생을 모시고 살았고 임종전 몇 년 동안은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켜드리며 온갖 시중을 다 들었습니다. 임종전 마지막 말씀이 모든 앙금을 말끔히 씻어냈습니다. 

‘무서워하지 마라. 나도 네 에미다. 네 아픈 것들은 내 모두 가지고 가서 요단강에 버리고 가마. 아프지 마라.’

마지막 유언후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일주동안 누워 계시다가 임종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 온 시어머니의 한평생 삶이 얼마나 기구했는지 마음이 아렸습니다. 6.25사변 전후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참혹한 불행과 시련을 견뎌냈는지, 정말 무죄한 이들의 피를 흘리는 전쟁이 한반도에서 다시 있어선 안될 것입니다.

 

1970년대 제 20대 시절은 군부독재의 엄혹한 시대였지만 사회 곳곳에는 어른도 많았고 의인도 스승도 큰 스님도 많았고, 찾아 읽고 또 들으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현실이 잡목(雜木) 우거진 야산(野山)같다면, 그때는 곳곳에 큰 산에 푸르른 정신의 우람한 아름드리 거목의 스승들도 많았습니다. 그 한 예가 김수환 추기경입니다. 다른 생존 인물을 꼽으라면 함세웅 신부와 저보다 몇살 적지만 여전히 한결같이 꼿꼿한 선비같은 삶을 살고 있는 영원한 현역의 원로 정치가 충남 청양 출신의 이해찬일 것입니다. 이분의 평전도 동시대 사람으로서 참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어른도 스승도 예언자도 찾아보기 힘든 천박한 자본주의 세상이요, 지식인은 많아도 지성인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삶의 희망을, 길을, 중심을, 의미를, 목표를, 방향을, 가치관을 잃어 정신들도 많이 사악(邪惡)하고 쇠약(衰弱)하고 왜소(矮小)하고 변질(變質)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서사가 사라진, 스토리와 컨텐츠가 너무 빈약한 세상이요 개인들입니다. 뜻밖에 찾아 읽게 된 “리영희(1929-2010) 평전”을 어제는 뜨거운 마음으로 틈틈이 많이 읽었습니다. 시인 고은은 화갑 기념문집에서 그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상의 은사 

 시대의 선구자

 60년대 70년대 80년대 대표적 지성

 아 이 한반도의 살아 있는 정신

 

 얼음

 우리들의 전위와 후방”

 

그가 항상 웃어른으로 모신 '시대의 스승', 무위당 일속자 장일순(세례자 요한1928-1994)에 대한 그의 고백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사회에 매몰되지도 않고, 인간속에 있으면서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시키면서도 본인은 항상 그밖에 있는 것 같고,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고, 밖에 있으면서 인간의 무리들 속에 있고, 구슬이 진흙탕에 버무려 있으면서도 나오면 빛을 발하고 하는 그런 사람은 이제 없겠죠.”

 

이런 분들이 저에게는 지금도 빛을 발하는 스승들이요 평전도 늘 가까이 두고 읽습니다. 답은, 진리는, 구원은, 빛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 가까이에 있습니다. 하늘길도 하늘문도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투명한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빛나는 깨우침을 주는 분이 복음의 예수님이요 제1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입니다. 이분들의 존재가 그대로 살아 있는 하느님 증명입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정말 신자들이라면 늘 깨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할 수 있는 정신(精神)으로, 결의(決意)로, 기개(氣槪)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주님은 직설적으로 문제의 핵심을 지적합니다. 무시와 멸시로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것, 형제를 바보라고 멍청이라고 하는 것, 말하는 자체가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부터의 근본적 변화를, 마음의 순수를 촉구하는 주님입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샘솟는 자비와 지혜요 용기요 바로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주저함 없이 예물을 바치기전 원망을 품고 있는 형제가 있다면 이들을 찾아 용서를 청해 화해할 것이며,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더라도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는 참으로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들이겠습니다. 은총의 사순시기 우리 모두 근본적인 마음의 혁명인 회개를 명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다시 생각하는 참행복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회개한 이들의 과거를 묻지 않는 주님이십니다. 과거에 아무리 잘 살았어도 지금 못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보시는 바 어제가 아닌 오늘이요 과거가 아닌 현재입니다. 용두사미가 아닌 유종의 미가 되도록, 끝이 좋도록 살아 있는 그날까지 한결같은,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이 중요합니다. 변절, 배신의 부패한 삶이라면 정말 희망이 없습니다. 역시 하느님 마음에 정통한 제1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를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목숨을 살릴 것이다.”

 

새삼 삶은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용기와 지혜로 의인의 삶을 선택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정의롭고 지혜로운 의인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에제18,30-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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