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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7.연중 제4주간 목요일                                                                      히브12,18-19.21-24 마르6,7-13

 

 

 

하느님 나라의 행복한 삶

-관상과 선교-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까이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이런 주님을 만날 때 비로소 행복한 삶, 아름답고 품위있는 삶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관상이요 관상에 이은 선교사로서의 파견입니다. 바로 관상과 선교가 조화된 균형잡힌 삶일 때 하느님 나라의 행복한 삶입니다.

 

예전 독일 오틸리아 연합회 총회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합니다. 독일 수도형제들이 저에게 요셉수도원의 정체성을 물었던 것입니다. 선교보다는 관상쪽에 치우쳐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지닌 듯 했습니다. 다음 투박하고 단순한 말마디가 우뢰같은 박수속에 논란을 잠재웠습니다.

 

“관상과 선교는 하나다Contemplation and mission are one without two.”

 

관상없는 선교는 맹목이고 선교없는 관상은 공허합니다. 관상의 꽃은 선교의 열매로 드러나야 하고 관상의 생명수는 선교의 강으로 흘러야 합니다. 선교없는 관상은 죽은 관상입니다. 관상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선교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오늘 주님은 당신과 함께 하던 제자들을 세상에 선교사로 파견하십니다. 바로 주님을 중심으로한 제자들의 공동체는,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는 히브리서가 꿈꾸는 종말론적 구원의 장소입니다. 이런 천상공동체를 앞당겨 맛보는 이 거룩한 관상 미사시간입니다.

 

“우리가 나아간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새 계약의 중재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가 있는 곳입니다.”

 

이런 천상공동체에 뿌리둔 우리의 지상 교회공동체입니다. 바로 여기로부터 세상에 선교사로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파견되는 열두 제자는 선교사의 모범입니다. 주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의 은총이 선행되고 있음을 봅니다.

 

여기서 주목할 바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도반공동체가 둘입니다. 혼자서의 선교가 아니라 공동체의 선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의 삶보다 위험하고 허약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참사람眞人’되기 보다는 자기만 아는 이기적 ‘괴물怪物’이 될 수 있습니다. 1인 가구가 30%에 육박한다는 현실이 참 우려스럽습니다. 이들을 공동체로 연결시켜 주는 교회의 역할이 절실합니다.

 

주님의 영으로 충만한 존재가 진정 부요한 자입니다. 주님께 대한 전적 신뢰가 무소유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주님은 최소한의 소유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자발적 가난에서 오는 내외적 자유입니다. 참으로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자유로운 부자임을 깨닫습니다. 문득 예전 김수환 추기경님의 ‘무소유의 삶을 원하나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책만은 소유하고 싶다’는 유머도 생각납니다. 

 

주님은 소유냐 존재냐의 갈림길에서 제자들이 최소한의 소유로 존재를 택하도록 명하십니다. 자유로운 선교활동을 위해서입니다. 이어 주님은 제자들이 어디에 가든 신자들의 환대에 맡기고 그 집에 머물라 하십니다. 본질적인 목표를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주님을 떠나 선교사로 활동하지만 관상의 뿌리인 주님과 더불어 활동목표를 늘 잊지 말아야 할 제자들입니다.

 

본질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하느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다음 복음의 후반부 말씀이 본질적 목표를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고쳐 주셨다.”

 

철저한 회개를 통해 주님을 만남으로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의 자유요 영혼과 정신과 육신의 전인적 치유입니다. 이런 주님과 일치된 제자들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이런 주님의 제자이자 선교사를 만날 때 만나는 이들 또한 회개와 더불어 온전한 치유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 됩니다. 하여 점차 확장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행복합 삶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살고 우리 하나하나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 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앞에 놔두고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 물질에, 이념에, 무수한 더러운 영들에 사로잡혀 자기를 잃고 노예적 삶을 살고 있는 지요. 

 

사람들 안에 머물곳을 찾는 무수한 온갖 더러운 영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더러운 영들이 목표하는 바 우리를 세상의 노예로 만들어 세속화世俗化, 속물화俗物化시키는 것입니다. 요즘 자주 보게 되는 “미세먼지;상당히 나쁨, 탁한 공기, 마스크 챙기세요.” 휴대폰 메시지입니다. 흡사 우리 영혼을 오염시키는 더러운 영들 가득한 세상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예전 “무공해 신부”라 불렸던 제 별명도 생각납니다. 

 

구원은 은총이자 선택입니다. 회개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선택입니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함으로 자유를 누리는 삶입니다. 소유가 아닌 존재를, 주님과 참 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본말전도, 주객전도의 삶을 바로 잡고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본질적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저멀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바로 관상과 선교의 일치된 삶을 사는 내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3)

 

하느님을 찾는 본질적 목표에 충실할 때 부수적인 것들도 곁들여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안에 내재한 더러운 영들을 일소시켜 주시고 당신의 영으로 충만케 하시어 하느님 나라를 나누는 선교사가 되어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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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2.07 10:30
    주님, 저희가 하느님을 찾는 본질적 목표에 충실할 때 부수적인 것들도 곁들여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항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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