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30.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창세21,5.8-20 마태8,28-34

 

 

 

우리 삶의 중심(中心)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을 경외하여라. 주님의 성도들아.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 뿐이리라.”(시편34,10-11)

 

화답송 시편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오늘 6월30일 6월 성심성월의 끝은 내일 7월1일 희망의 시작입니다. 어제 로마의 수호성인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은 전임 교황님인 베네딕도 16세의 사제서품 7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전임 베네딕도 교황님의 우정이 참 아름답고 멋집니다. 어제 대축일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순례자들을 향한 삼종기도후 서두로 하신 말씀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친애하는 아버지이며 형제인 베네딕도, 당신께 우리의 애정과 감사, 친밀감을 드립니다. 당신은 교회와 로마교구를 위한 기도로 한평생 ‘바티칸의 관상가’로 사셨습니다. 당신 삶의 증거에 감사드립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의 지평선’을 향한 당신의 응시凝視에 감사드립니다.”

 

바티칸의 관상가로 명명하시며 거듭된 감사를 드린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통해 두분의 성인을 뵙는 느낌입니다. 마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좋은 보완관계를 이루듯 베네딕도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 관계 역시 좋은 보완관계를 이루는 느낌입니다. 흡사 ‘산과 강’이 연상되며 오래전 써놓은 짧은 시도 생각났습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끊임없이 님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끊임없이 님향해 흐르는 강”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베네딕도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계가 흡사 ‘정주의 산’과 ‘끊임없이 흐르는 강’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서 일치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님이 결정적 중요성을 지닙니다. 참으로 영육의 건강에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切感합니다.

 

얼마나 허약한 사람들인지요! 참으로 영적으로 육적으로 대부분 병자들 같습니다. 육신의 병보다도 더 두렵고 힘든 것이 영혼의 병, 정신의 병, 마음의 병입니다. 새삼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일이 영육의 병의 예방과 치유, 건강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치유보다는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예수님과의 관계를 날로 깊이하는 예방적 차원이 백배 낫고 효과적입니다.

 

오늘 복음의 배치도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 추종의 자세’ 다음에 ‘풍랑을 가라 앉히신 예수님’ 일화가 나오고 오늘 ‘마귀들을 내 쫓으신 예수님’ 일화가 나옵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 때 안정과 평화, 치유와 구원의 삶임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의 서두 묘사가 강렬하며 깊은 상징성을 띠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 마귀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왔다. 그들은 너무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마귀들린 사람들이 참 많은 시절같습니다. 마귀들렸다는 것은 바로 미쳤음을 뜻합니다. ‘빛 광光’자가 아닌 ‘미칠 광狂’자가 되기 쉬운 세상입니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현대판 마귀는 참 많습니다. 이념, 돈, 명예, 탐욕, 질투, 분노, 혐오, 증오, 차별, 중독등 끝이 없습니다. 이념에 중독되고 미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까! 특히 종교에 미친 광신에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이 모두가 무지의 결과입니다. 참 극단의 시대 같습니다. 말들도 행동도 너무 극단적이고 험악하고 부정적입니다. 참 미치기 쉬운 허약한 사람들입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못하면 미치지 못한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과 더불어 ‘제대로 미치면 성인聖人이고 잘못 미치면 폐인廢人’이란 말도 생각납니다.

 

오늘 마귀들린 사람 둘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마귀들로부터 벗어납니다. 바로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셨을 때 영육의 온전한 치유요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지 않을 때 그 중심에는 온갖 무수한 마귀들이, 칠죄종이라는 교만, 질투, 탐욕, 분노, 식탐, 음란 나태의 마귀들이 자리잡게 되고 내적분열로 이런저런 병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정신이, 영혼이 건강해야 육신의 치유와 건강도 뒤따릅니다. 무엇보다 기존의 병들도 잘 관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답은 단 하나 예수님 중심의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서 끊임없이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기도를 권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예수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제1독서 창세기의 이해도 확연해집니다. 참으로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의 모범이 오늘 창세기의 주인공, 아브라함입니다. 사라와 하갈, 사라가 낳은 아들 이사악과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 사이의 아브라함의 처지가 참 진퇴양난입니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세요. 저 여종의 아들이 내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상속을 받을 수 없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하느님 중심의 삶이 해결의 첩경임을 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이 기도입니다. 하느님 친히 그 길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십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했던 아브라함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같은 다음 말씀입니다.

 

“그 아이와 네 여종 때문에 언짢아하지 마라. 사라가 너에게 말하는 대로 다 들어주어라.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종의 아들도 네 자식이니, 내가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역시 구원은 하느님께 있음을 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과 응답으로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구원받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물론 사라도 하갈도 이사악도 이스마엘도 모두 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모셨기에 이런 모두가 사는 구원의 은총입니다.

 

정녕 재앙은 삶의 중심을 잃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인 예수님의 부재不在 중 어김없이 그 빈자리에는 무수한 마귀들이, 우상들이 자리 잡게 되니 광인狂人이 되고 괴물怪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빛이 사라지면 저절로 어둠이 들어오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지 않으면 도저히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어제 교황님의 강론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베드로와 바오로처럼 자유로워라. 그러나 겸손하라."(Be like Peter and Paul, free but humble)"

참으로 예수님을, 하느님을 늘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일이 자유와 겸손, 영육의 치유와 구원에 결정적 단 하나의 처방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안에 내재한 어둠의 세력을 일소一掃해 주시고 영육의 치유와 더불어 당신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주십니다. 오늘 본기도가 오늘 강론을 요약합니다.

 

“하느님, 천상은총으로 저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다시는 오류의 어둠속을 헤매지 않고, 언제나 진리의 빛 속에 살게 하소서.” 아멘.

 

 

 

  • ?
    고안젤로 2021.06.30 08:29
    오늘 하느님 중심의 삶을 시작합니다
    “하느님, 천상은총으로 저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다시는 오류의 어둠속을 헤매지 않고, 언제나 진리의 빛 속에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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