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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5.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에페5,21-33 루카13,18-21

 

 

우리 모두 하느님의 나라를 삽시다

-꿈과 실현-

 

 

가장 아름다운 분은 누구일까요?

밤마다 하느님의 나라를 꿈꾸고, 잠깨면 하느님의 나라를 사셨던 예수님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처럼 밤마다 하느님의 나라를 꿈꾸고, 잠깨면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하느님의 나라를 꿈꾸고, 하느님의 나라를 산다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삶일까요?

저도 밤마다 참 많이 꾼 꿈이 하나 있습니다. 그날의 매일 강론입니다. 꿈속에 다 썼던 강론인데 꿈 깨고 나면 다시 써야 하는 강론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꿈의 실현이요, 꿈의 현실화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꿈꾸고 살았던 예수님이야 말로 그대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과 함께 하나 되어 살 때 그대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에 아름답고 품위 있는 매력적 삶입니다. 바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그 좋은 증거입니다.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남북의 화해와 평화에 큰 기여를 한 피스 메이커의 상징적 인물인 임동원 자서전을 감동 깊게 읽던 중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대한 일화가 있어 소개합니다.

 

-‘나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교황청 대사가 마련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접견식에 참석했던 일을 잊을 수 없다. 우리 내외는 그분을 3년 전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처음 만난 후 두 번째 만남이어서 더욱 반가웠다. 그는 인자한 모습으로 악수를 청하며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 한국민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빕니다.”라며 축원해 주셨다. 교황님은 사진 촬영에도 응해 주셨다.’- 

 

시의적절 하게 잊지 않고 한국말을 구사하는, 얼마나 다정하고 멋진 성 요한 바오로 2세인지요! 이래서 성인이요 하느님 나라의 꿈이 실현된 모습입니다.

 

꿈이, 희망이, 비전이 있어야 삽니다. 

교육의 우선 순위가 꿈을 심어주는 것이요, 꿈꾸는 꿈나무가 되어 살게 하는 것입니다. 꿈이, 희망이, 비전이 없으면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만이, 살아있는 사람만이 꿈꿉니다. 꿈이, 희망이, 비전이 있어야 존엄한 인간 품위를 지닐 수 있습니다. 뿌리 없이 표류하거나 방황하지 않습니다. 쉽사리 유혹에 빠지지 않고, 타락하지도, 부패하지도 않습니다. 꿈 중의 꿈이 하느님 나라의 꿈입니다. 예수님의 꿈이자 참으로 믿는 우리 모두의 참 꿈이 하느님 나라의 꿈입니다. 

 

죽어서 가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요, 언젠가 살아야 할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에서 살아야 할 하느님 나라의 꿈입니다. 살아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지 못하면 죽어서도 못 삽니다. 제 행복기도 중 일부가 생각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

하느님의 나라이옵니다.”

 

파스카 예수님과 함께 할 때 바로 거기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의 평생 꿈이자 희망이었던 하느님의 나라의 정체가 환히 드러납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할 하느님 나라의 꿈이요,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입니다. 예수님께는 겨자씨가, 누룩이 하느님 나라의 표징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이게 되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두 비유가 재미있습니다. 루가 복음 사가를 통해 예수님의 남녀평등의 시각이 잘 드러납니다. 겨자씨에서는 남자가, 누룩은 여자가 주인공이 되니 참 공평합니다. 제1독서 에페소서는 바오로의 당대의 가치관에 따라 남녀에 대한 가부장적 차등적 사고를 감지합니다만 예수님께는 전무합니다.

 

이렇게 남녀평등의 사회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1독서 에페소서 서두와 마지막 구절은 남녀평등의 하느님 나라의 실상에 대한 묘사로 손색이 없습니다. 두 말마디대로 실천한다면 참 이상적 하느님 나라의 부부공동체가 될 수 있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여러분은 저마다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사랑의 순종, 사랑의 존경, 그대로 하느님 나라의 다정한 부부 사이의 모습입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내적성장을 상징하고, 누룩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내적변화의 성숙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섣불리 경솔히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말고 성령에 따라 가만히 바라보고 지켜보며 적절한 때 잘 협조해 드리는 일뿐입니다. 육신은 노쇠해도 영혼은 겨자씨처럼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고, 누룩처럼 끊임없이 변화하여 성숙할 수 있음을 봅니다.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말씀의 겨자씨요 말씀의 누룩입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의 은총이 내적성장과 내적성숙의 삶을 살게 합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살아 있는 성령이요, 살아있는 믿음, 살아 있는 희망, 살아 있는 사랑입니다. 성령의 겨자씨 성령의 누룩이, 믿음의 겨자씨 믿음의 누룩이, 희망의 겨자씨 희망의 누룩이, 사랑의 겨자씨 사랑의 누룩이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의 내적성장과 성숙의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게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기쁨도 행복도 감사도 평화도 살아있는 하느님 나라의 겨자씨가, 누룩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하나는 물론 우리 공동체 역시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로 성장 중인 겨자씨와 같고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누룩의 효소와 같습니다. 성령의 누룩이, 말씀의 누룩이 부패인생이나 부패공동체가 아닌 향기로운 발효인생, 발효공동체로 만들어 줍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겨자씨가 되고 누룩이 되어,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의 꿈을 현실화 해줍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이야 말로 예수님처럼 하느님 나라의 꿈이 실현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살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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