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4.사순 제3주간 월요일                                                        2열왕5,1-15ㄷ 루카4,24ㄴ-30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의 

무지가 문제다

-답은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인 회개뿐이다-

 

 

 

“주님, 당신의 빛과 진리를 보내시어, 

 저를 인도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산, 당신의 거처로 데려가게 하소서.”(시편43,3)

 

감로수(甘露水)같은 ‘시대의 현자’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으로 오늘 강론을 시작합니다. 새벽 교황님 홈페이를 여니 새롭게 마음에 와닿은 말마디들입니다.

 

“교황은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우리의 집을 짓도록’ 격려했다.”

“무장해제는 도덕적 의무이다.”

“우리 모두 말하도록 하자: “충분합니다!”, “좋습니다!”

(Let us all say: “Enough!”, “please!”)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라는 철학책 제목이 생각납니다. 

이 책중 나오는 내용을 인용합니다. ‘동양의 지혜는 역사 없이 존재한다. 이는 곧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는 뜻이며, 특정한 관념에 의해 역사를 고정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역사는 역사를 가질 수 없다. 공자를 비롯해 동양의 현자들이 세상에 대해 그 어떤 편견적인 시각을 투사하지 않으면서도 그 세상 자체에 접근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의 무지로부터 자유로울 자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동양의 현자들과는 달리 성서의 현자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의 무지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하느님과 깊어지는 우정과 더불어 무지로부터 해방되어 날로 자유로워지는 삶입니다. 바로 그 대표적 인물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제1독서 열왕기하권의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 예언자입니다. 우선 제1독서의 나아만의 치유과정을 통해 우리의 무지의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에 대해 살펴봅니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환자였다.’

 

오늘 제1독서는 나아만의 나병치유와 더불어 선입견과 편견의 무지의 병의 치유과정을 보여줍니다. 무지의 치유에 깨어있는 마음, 열려있는 마음의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어쨌든 나아만에게는 나병이 무지의 병의 치유에 전화위복이 되었음을 봅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사로잡아온 소녀가 구원의 도구 역할을 할 것을 누가 알았겠는지요! 이 또한 우리의 선입견을 깹니다.

 

사소한 작은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됨을 배웁니다. 나아만의 방문에 두려움에 떠는 아람 임금 또한 무지의 두려움을 반영합니다. 자기만의 편견과 오해로 상황을 재단하고 절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의 등장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를 저에게 보내십시오. 그러면 그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알게 할 것입니다.”

 

나아만의 방문에도 전혀 두려움이 없이 의연한 엘리사는 참으로 무지로부터 자유로웠음을 봅니다.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합니다. 이또한 나병의 치유와 더불어 나아만의 근본적 무지의 병인 허영과 교만의 치유를 목표로하고 있음을 봅니다.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 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말그대로 겸손과 순종의 시험입니다. 나아만이 화를 내고 발길을 돌리면서 하는 말들이 그의 굳어진 선입견, 편견, 교만을 보여줍니다. 나병에 앞서 나아만의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교만의 무지의 병이 심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돌려 부하들의 간청대로 엘리사의 조언대로 겸손히 순종하여 따랐을 때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집니다. 어린아이같은 새살은 어린이같은 순수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무지의 치유에 순종보다 더 좋은 약은 없습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만남으로 나병의 치유와 더불어 편견과 선입견의 무지의 병도 치유된 나아만의 하느님 고백입니다. 참으로 모든 인류가 하느님의 치유 대상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회개를 통해 깨어 있는 마음, 열린 마음으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때 육신의 치유와 더불어 무지의 치유임을 깨닫습니다. 

 

나병의 치유와 더불어 주님을 만남으로 참으로 겸손해졌을 나아만은 온전한 건강의 참사람이 되었음을 봅니다. 나아만은 나병과 더불어 무지의 병까지 치유되게 만들었으니 전화위복입니다. 흡사 화답송 후렴 시편이 무지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영혼의 부르짖음처럼 들립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 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이까?”(시편42,3)

 

무지에 대한 답은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뿐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육신의 병보다 더 심각한 것은 무지의 병입니다. 탐욕, 질투, 절망, 원망, 미움, 분노, 두려움,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어리석음, 전쟁 등 끝없이 이어지는 부정적 마음의 현상들 무지로 인해 파생된 징후의 병들입니다. 참으로 이런 무지로부터 자유로워진 이들이, 마음속 괴물들을 잘 길들인 이들이 현자요 예언자요 성인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삶의 여정은 무지로부터의 해방의 여정, 치유의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육신의 병도 대부분 이런 무지의 병으로부터 기인됩니다.

 

오늘 복음도 예수님은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의 무지의 병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나자렛 고향 회당에 모여있던 고향사람들에게도 예수님께 대한 선입견의 무지의 병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바로 이것이 편견과 선입견, 질투에 사로잡힌 무지한 인간의 한계요 인간의 보편적 부정적 현상입니다. 무지에서 벗어나 참으로 자비롭고 지혜로워 겸손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세상 연옥에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무지로 인한 아비규환, 각자도생, 승자독식의 참 생존경쟁 치열한 참으로 혼란한 세상 전쟁터입니다. 

 

주님은 엘리야 시대 시돈 지방 사렙타 과부의 예를 들면서, 또 엘리사 시대 시리아 사람 나아만의 예를 들면서 고향 사람들은 물론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하느님께는 차별이 없고 일체의 기득권도 무용지물입니다. 엘리야 시대의 사렙타 과부처럼, 엘리사 시대의 나아만처럼 겸손히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순종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점입가경입니다. 무지의 병이 얼마나 깊은지 화가 잔뜩난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 합니다. 흡사 바위에 계란치기처럼 무지의 바위처럼 생각되는 나자렛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십니다. 참으로 외롭고 고독했을 예수님은 이런 과정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무지의 늪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떠나시는 대자유인 예수님이십니다.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의 무지가 문제입니다. 유일한 답은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인 회개뿐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제목이기도 합니다. 회개의 여정과 함께 가는 무지의 병의 치유 여정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보다 무지의 병에 좋은 치유제는 없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오리다.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당신을 찬송하오리다.”(시편4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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