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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6.4.부활 제7주간 토요일                                                  사도28,16-20.30-31 요한21,20-25

 

 

참행복

-주님과 우정의 사랑-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우심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거나이다.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고 싶어서,

 이 내눈은 밤새도록 떠 있나이다.”(시편119;145,148)

 

이렇게 시작되는 하루입니다. 참행복은, 영원한 행복은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우정의 사랑에 있습니다. 다음 끝기도시 찬미가 2절과 토요일 3시경후 바치는 기도문은 언제나 주님 사랑을 새롭게 환기시킵니다.

 

“우리는 잠을 자도 주님과 함께

 꿈에도 당신만을 뵙게 하소서

 언제나 한결같이 당신 영광을

 새는날 밝아올제 찬미하리이다”

 

“영원한 사랑에 불타는 빛이신 주님, 저희도 당신 사랑으로 불타게 하시어, 모든 것 위에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위하여 같은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어제 6월 첫주 금요일은 수도원 은인들을 위한 미사가 있었고, 수사들의 고백성사가, 저녁기도시에는 성체강복의 성시간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매달 첫주 금요일의 행사입니다. 새달을 맞이하여 은인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주님 사랑을 새로이 하기 위한 고백성사에 성체강복 성시간입니다. 살아갈수록 주님과 우정의 사랑이 얼마나 본질적인 중요성을 지니는지 깨닫습니다. 

 

요즘 참 가뭄이 심합니다. 이처럼 꽃이 피다가 말라버리기는, 수도원 잔디가 말라 죽어가기는 수도원 개원후 처음입니다. 뿌리가 얕은 초목草木은 시들어 죽어갑니다. 불암산 계곡溪谷의 물도 바짝 말랐습니다. 그대로 주님과 우정의 사랑이 메말라 시들어 죽어가는 영혼 상태에 대한 상징적 모습 같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바짝 마른 시냇물

 

꼭 하늘비 내려야

흐르는 맑은 시냇물인가

 

비오든 말든

늘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고 싶다

 

깊은 산 배경으로

늘 노래하며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고 싶다

 

비오든 말든

늘 맑게 샘솟는 우물이고 싶다

 

비오든 말든

땅 깊이 뿌리 내린 늘 푸른 나무이고 싶다”

 

어제 써놓은 영혼의 고백같은 시입니다. 참으로 날로 주님과 깊어가는 우정의 사랑과 더불어 이런 영혼이 될 것입니다. 이래야 영혼이 육신에 끌려가지 않고 육신을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에서 이런 영혼들을 만납니다. 새삼 교회 공동체의 풍요로움을 느낍니다. 똑같은 주님 사랑이지만 그 양상은 다 다릅니다. 온갖 다양한 꽃 사랑처럼, 주님 향한 사랑의 색깔도 향기도 크기도 모양도 다 다릅니다. 모든 꽃들의 사랑이 함께 조화를 이루듯 주님 사랑의 공동체 형제들도 그러합니다. 결코 우열優劣이나 호오好惡의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수제자 베드로, 사도 요한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애제자가, 사도행전의 바오로가 바로 그러합니다. 오늘 부활시기는 내일의 성령강림대축일로 끝납니다. 오늘 미사로써 요한복음도 끝나고 제1독서 사도행전도 끝납니다. 교회공동체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의 공존의 조화가 놀랍고 신비롭습니다.

 

요한복음 중반이후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는 꼭 나란히 나옵니다. 흡사 주님 사랑을 서로 보완하는 듯한 관계입니다. 수제자 베드로가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활동적 사랑을 보여준다면 애제자 요한은 주님과 깊은 관상적 내적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수제자 없는 교회나 애제자 없는 교회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수제자 없는 교회는 맹목일 수 있고 애제자 없는 교회는 너무 공허하고 쓸쓸할 것입니다.

 

수제자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가 참 수수께끼처럼 들립니다. 애제자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배후에 사랑의 침묵중에 있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라라.”

 

애제자에 대한 관심은 접어두고 수제자인 베드로 너는 네 자신을 추스르고 나를 따라 순교의 죽음을 각오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순교의 죽음으로 주님 사랑을 보여줬습니다. 

 

애제자는 비록 내가 재림할 때 세상에 있지 않더라도 그의 사랑을 닮은, 애제자의 분신같은 제자들은 계속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런 주님 향한 관상적 깊이의 애제자 없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도 세상 곳곳 교회의 중심부에서 주님과 우정의 사랑을 날로 깊이하는 애제자의 분신같은 후예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셉수도원의 원장직에서 물러난 저의 역할은 숨겨져 있는 애제자 요한같은 관상적 깊이의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은 주님께는 참 좋은 보완 관계에 있는 사랑의 제자들이요 모두 일치의 중심이신 주님 사랑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이유요 교회의 숨통입니다. 선교하지 않는 닫힌 교회는 곧 고사하고 말 것이며 어떤 형태든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선교는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만의 구원이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 선교의 영웅같은 본보기가 사도 바오로입니다. 수제자 베드로에 이어 애제자 요한, 여기에 바오로 사도가 합류함으로 비로소 온전한 가톨릭 교회 공동체가 형성된 느낌입니다. 로마에서 군사 한 사람의 감시하에 구금상태에서도 참으로 자유로워 보이는 바오로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이렇게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비록 육신은 사슬에 묶여 있을지라도 하느님의 말씀은, 사도의 자유로운 영혼은 결코 묶어 놓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거룩하게 하는, 치유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바오로의 다음 고백이 이를 입증합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있지 않습니다.”(2티모2,9)

 

저 또한 여기 수도원에서의 정주의 삶을 통한 체험이기도 합니다. 진리 말씀을 통한 주님과 우정의 사랑과 더불어 날로 넓어지는 내적 이해 지평地平과 시야視野가 내적자유의 비결입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의 해피엔딩의 삶을 소개함으로 끝납니다.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 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세상의 중심지인 로마에서 구금 상태의 한없이 불편했을 상황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한없는 내적 자유를 누리며 복음 선포의 삶에 전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에서 시작된 복음 선포의 불길은 산불처럼 번져 마침내 유럽 전체가 복음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복음화를 필요로 하는 노쇠老衰한 유럽이, 세상이된 작금의 현실입니다.

 

주님은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과 우정의 사랑을 날로 깊게 해 주시어, 수제자 베드로 사도처럼, 애제자 요한 사도처럼, 선교의 영웅 바오로 사도처럼 참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사랑 우리 위에 꿋꿋하셔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셔라.”(시편117,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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