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30.연중 제13주일(교황주일)                                           1열왕19,16ㄴ-19-21 갈라5,1.13-18 루카9,51-62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생각해야 합니다. 참아야 합니다. 늘 생생한 비전을, 꿈을 지녀야 합니다. 비전을, 꿈을 지녀야 바른 생각이요 잘 참을 수 있습니다. 생각하고 참으면 기회는 옵니다. 일일이 반응하며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호흡을 길게 하며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밤 2시 일어나 인터넷 뉴스를 일별하는 순간 반가운 머릿기사 였습니다. 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에 하느님 주신 선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끝까지 이런저런 굴욕적인 상황을 잘 참아낸 인내의 결과였습니다. 주님 함께 계시기에 비로소 온갖 수모와 굴욕을 끝까지 참아내는 겸손의 수련이 가능합니다.

 

어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방문했고 오늘 판문점에서 세기적인 남북미 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꼭 남북미 회담이 성사되어 한반도의 평화에 획기적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언제나 현실성을 띠는 질문입니다. 생각없이 살지 말고 멈추어 왜 사는지 삶의 의미를 찾으며, 물으며 살라는 말입니다. 얼마전 잠시 시간을 내어 기생충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었습니다. 작중 인물들 모두에 대해 제 입에서 탄식처럼 흘러나온 말은 단 하나였습니다.

 

“영성이 없다!”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영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마디가 많이 회자되는 세상입니다. 작중 인물들 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영성이, 영혼이 없습니다. 악마는 도저히 알아챌 수 없이 이런 무사유의 사람들에 기생합니다. 마침 어제 어느 철학 교수의 공감이 가는 신문기사를 봤습니다.

 

“아렌트 관점에서 영화 ‘기생충’속 인물은 모두 ‘무사유’의 인간”

무사유의 인간에 기생하는 악입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왜 사는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바른 삶은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멈추어 묻고 찾으면서 존엄한 인간 품위의 회복입니다. 구체적으로 비전을, 꿈을 지니는 것입니다. 비전중의 비전, 꿈중의 꿈인 하느님을, 하느님의 나라를 찾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궁극의 자유와 행복도 그분과의 만남에 있습니다.

 

오늘은 교황주일입니다.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한 어느 신학교수의 특별 기고 글도 유익했습니다. 네 측면에 걸쳐 소개된 내용입니다.

 

1.복음화의 사명을 수행하는 선교사

2.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지향하는 개혁가

3.신앙과 삶의 구체적 현장을 중요시 하고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사목자

4.영혼과 마음을 울리는 설교자

 

바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참 좋은 지침을, 삶의 모범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성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삶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겠는지요? 그 답을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 “찾으라!”

한 두 번이 아니라 매일 평생 꾸준히, 끊임없이 비전을, 꿈을 찾는 것입니다. 두 말 할 것 없이 우리의 영원하신 참 비전이자 꿈, 희망이신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찾는 것입니다. 성서의 사람들, 모두가 주님을 찾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밤낮 주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당신을 찾는 사람들을 찾아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결코 우연은 없습니다. 제1독서의 엘리사도 주님을 찾았기에 주님은 엘리야 예언자들 통해 그를 찾아 오셨고 부르자 모든 것을 버리고 지체없이 엘리야를 따릅니다. 복음의 세 구도자들 역시 주님을 찾았기에 주님을 만났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버려라!”

끊임없이 안팎으로 버리는 것입니다. 비우는 것입니다. 내려 놓는 것입니다. 모으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요 쌓는 것이 아니라 내려 놓는 것입니다. 버리고 비우고 내려 놓고 떠나 영원한 비전이자 희망이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복음의 세 구도자들 주님을 찾았기에 주님을 만났고 역시 모든 것을 버려야 당신을 따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 사람 각자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 풍부한 묵상감입니다.

 

“여우들고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 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말씀의 문자 그대로가 아닌, 말씀에 담긴 주님의 단호한 삶의 자세를 배우는 것입니다. 일체의 집착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이탈의 무욕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억지로가 아닌 영원한 참 비전이자 꿈인 하느님을, 하느님의 나라를 발견할 때 저절로의 자발적 이탈입니다. 

 

이런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간절히, 항구히 찾는 자들에겐 악마의 유혹도 무력합니다. 무집착의 버림도 저절로 뒤따르고 분별의 지혜도 나옵니다.

 

셋째, “자유로워라!”

버리고 떠나 주님을 따를 때 비로소 자유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선사되는 자유입니다. 방종의 자유가 아니라 버리고 주님을 따를 때, 진리이신 주님께 순종할 때,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갈 때 자유입니다. 그대로 자유를 찾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단비같은 말씀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인도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육의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욕망을 비운 자리 바로 거기에 성령의 선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따라 살아갈 때 참으로 자유로운 삶입니다. 

 

넷째, “사랑하라!”

자유가 궁극의 목적이 아닙니다. 섬김의 사랑이 자유가 지향하는 궁극 목적입니다. 우리의 영성은 섬김과 종의 영성뿐입니다. 하여 우리 교황님은 세상의 황제와 다른 직분임을 알려 주는 참 좋은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sevus servotum Dei)입니다.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처음 사용해 오늘날에도 교황이 공문서에 사용하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섬김과 종의 영성에 대한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하나뿐이요 권위가 있다면 섬김의 권위 하나뿐이요 사랑이 있다면 섬김의 사랑 하나뿐입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주님이십니다. 그대로 주님의 마음을 대변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그 자유를 육을 위한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하신 계명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사랑의 섬김을 위한 자유입니다. 나누고 보살피고 주고 떠받쳐 주는 섬김의 사랑이 자유가 지향하는 목표이며 또 이렇게 살아야 참 자유의 실현에 참 행복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연중 제13주일 교황주일에 주님은 그 답을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모범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삶, 바로 이것이 우리 삶의 목표이자 의미입니다. 그러나 순서가 있습니다.

 

1,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찾을 때 만납니다.

2.버리는 것입니다. 부단히 안팎으로 버리고 비우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3,자유롭게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 버리고 따를 때 비로소 자유입니다.

4.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섬기는 사랑, 겸손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자유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바로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삶입니다.

 

주님은 친히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말씀의 생명과 성체의 사랑으로 우리를 섬기십니다. 우리 모두 각자 내 삶의 자리로 파견되어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삶을 실천할 때 비로소 성체성사의 완성입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9.06.30 09:26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주님을 찾아야만 주님 사랑을 통해 비우고 버리는 자유를 주십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59 사도들의 사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2017.7.22. 토요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1 프란치스코 2017.07.22 497
3358 깨어있는 삶-2015.9.29.화요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프란치스코 2015.09.29 497
3357 귀향(歸鄕:coming home)의 여정- 2015.2.9. 연중 제5주간 월요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 5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2.09 492
3356 삶의 좌표 -주님과 함께하는 삶-2015.4.29. 수요일(인보성체수도회 피정지도 9일째)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1347-1380)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5.04.29 489
3355 주님과의 만남-2015.8.24. 성 바로톨로메오 사도 축일. 요한묵시21,9ㄴ-14 요한1,45-51 프란치스코 2015.08.24 485
3354 참 행복, 영원한 행복 -주님과 늘 새로운 만남-2016.8.24. 수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프란치스코 2016.08.24 483
3353 믿음은 주님과의 관계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2016.4.22. 부활 제4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6.04.22 483
3352 믿음의 승리- 2015.2.12. 연중 제2주간 목요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8일째) 1 프란치스코 2015.02.12 482
3351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2015.3.25. 수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1 프란치스코 2015.03.25 480
3350 주님의 제자답게 사는 법-존재, 선물, 신神의 한 수手-2016.1.26. 화요일 성 티모데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6.01.26 479
3349 승천(昇天)의 삶-2015.5.17. 주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 프란치스코 2015.05.17 478
3348 믿음의 사람들-믿음 예찬-2015.1.31. 토요일(뉴튼수도원 82일째) 프란치스코 2015.01.31 478
3347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2015.12.6.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사회교리 주간) 프란치스코 2015.12.06 473
3346 하느님 영광의 신비-2015.3.31. 성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5.03.31 473
3345 하느님의 자녀답게 -겸손과 자비-2016.1.10. 주일 주님 세례 축일 프란치스코 2016.01.10 466
3344 사랑의 유배(流配)-2015.3.17.사순 제4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5.03.17 465
3343 믿음이 답答이다-믿음의 여정-2015.7.4.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5.07.04 463
3342 복음선포의 여정旅庭과 사명使命 -주님, 비전, 도반道伴-2018.10.18.목요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1 프란치스코 2018.10.18 461
3341 삶의 중심-외딴곳의 기도처(祈禱處)-2015.1.14. 연중 제1주간 수요일(뉴튼수도원 65일째) 프란치스코 2015.01.14 458
3340 예수님의 참가족-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2017.1.24. 화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1567-1622)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7.01.24 45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1 Next
/ 171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