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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25.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마르11,1-10 이사50,4-7 필리2,6-11 마르14,1-15,47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 돌아봄, 찾음, 비움-



삶과 죽음은 하나입니다. 죽음있어 삶은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어제 오늘의 말씀을 대충 묵상하며 떠오른 제목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죽음교육-’인데 새벽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물음, 돌아봄, 찾음, 비움-’이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새삼 삶과 죽음은 하나임을 깨닫습니다.


거의 한달전 칠순 축하차 받은 안개꽃과 후리지아 꽃다발이 바짝 마른채 그대로 꽃병에 꽂아져 있습니다. 완전히 말라 향기도 없습니다만 여전히 아름다워 그대로 놔두고 있습니다. 썩지 않고 그색깔, 그모습 바짝 마른 모습이 정갈해 좋습니다. 삶이 아름다우니 죽음도 아름답다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어제는 본관 숙소 문을 여는 순간 샛노란 작은 민들레꽃 한송이가 마음 활짝 열고 하늘을 담고 있었습니다. 신선한 감동이었습니다. 꼬박 일년을 기다렸다 엄동嚴冬의 겨울 지나 피어난 샛노란 민들레 꽃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어야지 마음 먹고 오후에 와보니 꽃은 지고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모든 것은 때가 있구나!’ 살았을 때 사랑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오래 살고 짧게 살고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를 살든 활짝 피어 하늘을 담고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히 했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활짝 마음을 열어, 하늘이신 하느님을 담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성지주일 말씀이 참 풍부합니다. 특히 긴 수난복음은 하느님의 거울처럼 우리를 비추어 줍니다.


첫째, 물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부단히 묻는 것입니다. 오늘 수난복음이 흡사 하느님의 거울같습니다. 하느님의 침묵이 인상적입니다. 침묵중에 모두를 보시는 ‘눈’이시며 모두를 들으시는 ‘귀’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흡사 하느님이 침묵중에 심판하시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스스로 자초하는 심판입니다. 참 다양한 인간상입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평화 자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시 환호하며 환영하던 군중들은 폭도로 변해 십자가에 못박으라 미친 듯 소리칩니다. 값비싼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여자가 있는 반면 배반자 유다도 있습니다. 


공포와 번민에 싸여 밤새 기도하는 예수님이 있는가 하면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와 잠에 떨어진 제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뺨을 때리는 시종들도 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로 내준 무책임한 빌라도, 가시관을 엮어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모욕하는 군사들도 있습니다.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도 합세하여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시몬이 있고 멀리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지켜본 의리있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한 백인대장도 있고 예수님의 시신을 곱게 모셔간 요셉도 있습니다. 


끝으로 그분을 어디에 모시는 지 지켜본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습니다. 자기를 잃어 제정신이 아니 악인들도 많고 예수님을 한결같이 돌 본 의인들도 곳곳에 있습니다. 과연 나는 수난복음의 현장 어디에 있는가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수난복음이 ‘나는 누구인가?’ 부단히 묻게 합니다.


둘째, 돌아봐야 합니다.

부단한 회개를 뜻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물음에 이은 회개입니다. 수난복음은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수난복음의 자기를 잃은 광기狂氣의 부정적 등장 인물들은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수난복음의 등장인물들 모두가 나의 가능성입니다. 부단히 회개하여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예수님을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 섬길 수 있습니다. 타고난 의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는 회개의 사람들이 의인입니다.


셋째,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부단히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침묵도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 주님의 종은 그대로 수난복음의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온통 문장의 주어는 하느님이십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열어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대로 예수님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하느님만을 찾을 때 이런 하느님 체험에 하느님 믿음입니다.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기에 참 평화와 안정이 있습니다. 수난현장에서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가 평소 하느님만을 찾아 기도했던 예수님 모습의 반영입니다. 부단히 하느님을 찾아 만날 때 내적 평화와 안정의 선물입니다.


넷째, 비워야 합니다.

부단히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삶은 섬김입니다. 부단한 순종과 섬김의 겸손한 삶을 통해 부단히 나를 비워가는 것입니다. 삶의 어려움 모두를 비움의 계기로 삼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버리라는 말씀은 바로 날마다 자기를 비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삶은 비움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움의 여정과 함께 가는 내적성장과 성숙입니다. 텅 빈 충만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전 삶이 비움의 여정이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거룩한 순종, 거룩한 비움의 결과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겸손한 비움의 축복입니다. 문제도 답도 내안에 있습니다. 부단히 나를 비워갈 때 주님을 닮은 참 나의 발견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물음으로 직결됩니다.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죽는 것입니다.


  1. 부단히 ‘나는 누구인가?’ 묻는 것입니다.
  2. 부단히 나를 돌아보는 회개입니다.
  3. 부단히 하느님을 찾는 기도입니다.
  4. 부단히 나를 비워가는 삶의 여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주님 수난 성지주일 미사를 통해 오시는 주님께서 우리 모두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 ?
    안젤로 2018.03.25 08:47
    모두가 겸손한 비움의 축복입니다. 문제도 답도 내안에 있습니다. 부단히 나를 비워갈 때 주님을 닮은 참 나의 발견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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