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1.6.7.연중 제10주간 월요일                                                                 2코린1,1-7 마태5,1-12

 

 

 

참행복

-성인聖人이 되는 것-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

 

주옥같은 화답송 시편 34장 일부를 다시 나눴습니다.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갑니다. 성인은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밖에도 있습니다. 참으로 깨어 사는 사랑의 내적 혁명가가 진짜 성인입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바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두가 행복한 것입니다. 어떻게 참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마음만 먹으면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이 우리 모두에게 바라는 소원은 모두가 성인이 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구원의 꽃자리’ 시에서처럼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각자 고유의 제자리에서 자기 고유의 색깔, 모습, 크기, 향기를 지니고 꽃처럼 살아가는 평범한 성인입니다.  

 

-“볼품없이 초라한 버려진 땅

자리 탓하지 않는다

그 어디든 뿌리 내리면 거기가 자리다

 

하늘만 내려다 보시면, 볼 수 있으면 행복이다

누가 알아 주든 말든, 보아 주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때되면 꽃처럼 활짝 피어나 주변을 환히 밝힌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구원의 꽃자리 천국이다”-

 

몇 번 인용했던 최근의 제 심경을 고백한 자작 애송시입니다. 이런 구원의 꽃자리를 사는 이들이 바로 비상한 깊이의 평범한 성인입니다. 주변에서 이런 영적도반처럼 느껴지는 평범한 성인들을 만날 때 참 반갑고 기쁩니다. 지난 토요판 한겨레 신문은 무려 3면에 걸쳐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참 독특한 성인같은 분(강수돌)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인터뷰 내용을 소개합니다.

 

-움직이더라도 지금보다 ‘주변周邊’으로 가겠군요? 하하.

“그렇죠. 서울 내지 ‘중심中心’을 향하는 삶은 그 속에서 또 고지를 점령하려 하는데 그런 고지는 1%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내지 기득권이죠.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변방을 향하고 주변을 향하는 삶이 자기 개성과 색깔을 잘 드러내죠. 고 신영복 선생도 얘기했듯이 중심을 향하면 모두가 획일화되잖아요. 반대로 방향을 바꿔 주변을 향해 보세요. 그러면 각자 자기만의 삶이 열리고, 누구나 일류 인생을 살 수 있죠.”

 

-비주류, 소수자의 삶을 즐기기인가요?

“자기 삶을 즐기는 건 맞는데 스스로 소수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주변인이 되어서 좋다가 아니라 주변이어서 좋고, 중심이 아니어서 좋다는 거죠. 그냥 나를 찾아가는 삶을 살아갈 뿐이죠.”

 

바로 구원의 꽃자리 제자리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평범하나 실상은 비범한 성인입니다. 중심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고 내 몸담고 살아가는 오늘 지금 여기가 역설적으로 변방이자 중심입니다. 구원의 꽃자리를 사는 성인은 교회밖에도 교회 안에도 곳곳에 있습니다. 수술후 극심한 고통중인 자매의 글도 감동이었습니다.

 

“정형외과 수술중 가장 고통스럽고 아픈 수술이랍니다. 저도 상상외로 너무 아파서 체면 불구하고 엉엉 울었습니다. 아들도 따라 울고요. 눈에 보이는 살색은 완전히 잿빛으로 변해 있구요.---신부님 강론을 나누는 건 제게 은총이고 신부님 말씀처럼 치유의 순간입니다. 주님께서 낮과 밤을 지어내셨으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좋은 빛과 향기나는 말씀에 힘을 얻고 조금이라도 치유에 변화가 있을테니 감사 찬미 영광을 올립니다. 신부님, 절대로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셔야해요. 편히 주무세요.”

 

말 그대로 지극한 인내의 믿음으로 제자리를 견뎌내는, 버텨내는 성녀聖女같은 영적도반 자매에게 주님 쾌유의 은총을 청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참행복을 통해 누구나 성인이 되는 길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거는 기대가 참 대단합니다. 

 

산상 설교중 오늘 참행복선언은 종파를 초월하여 참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 누구나 극찬하는 무한한 영감과 감동을 선사하는 내용입니다. 끝없이 하늘로, 성인의 삶에로 활짝 열려 있는 초대장과도 같습니다. 평생 성인의 여정에 평생 과제로 삼아 추구할 가치가 충분한 내용입니다. 참으로 언제 어디서나 구원의 꽃자리를 살게 하는 무한한 위로와 격려, 용기와 희망을 주는 복음중의 복음입니다. 참 대단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대로 참행복을 사셨던 예수님 삶의 반영이자 요약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성인이 되어 참행복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세상 행복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동물적 차원에서 하느님 차원으로 인간을 업그레이드 시켜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존엄한 품위의 성인답게 살 수 있는 최고의 처방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하느님을 닮는 첩경의 지름길입니다.

 

“행복하여라, 1.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2.슬퍼하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3.온유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4.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행복하여라, 5.자비로운 사람들! 행복하여라, 6.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7.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8.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이를 일컬어 진복팔단이라 합니다. 말그대로 언제나 생명의 빛을 발하는 ‘늘 옛스러우면서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복음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아니곤 누구에게 이런 복음 말씀을 들을 수 있겠는지요. 참행복의 원천인 하느님을 만나기에, 하늘 나라를 차지하기에 결국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짜 행복의 환상속에서 불행하게 지내는 지요! 주님은 마지막으로 갖가지 사유로 고통중이거나 시련중인 이들에게 축복을 선언하십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박해하며, 너희를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눈에 보이는 박해만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는 모든 의인들, 성인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모세의 ‘하지 마라’는 금령禁令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예수님의 참행복선언입니다. 모세의 십계명을 실천하면 발전도 없어 그냥 ‘좋은 신자’, ‘모범 신자’는 될 수 있겠지만 결코 성인은 될 수 없습니다. 하늘 나라로 활짝 열려있는 참 행복선언을 평생과제로 삼아 수행할 때 예수님을, 하느님을 닮아 각자 고유의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위로의 하느님, 위로의 예수님, 위로의 성령님입니다. 참 행복선언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용기와 희망, 기쁨을 주신 위로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 코린토 2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중에 무려 위로란 말마디가 10회 나옵니다. 말 그대로 위로의 하느님이요, ‘위로의 샘’에서 샘솟는 희망과 기쁨, 용기와 힘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 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얼마나 고무적인 위로의 하느님이십니까? 참으로 충고나 조언보다는 따뜻한 존중과 배려, 공감과 사랑, 위로와 격려를 목말라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위로의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어 참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21.06.07 07:2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 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꼭 기억하고 실천으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10 우리는 모두 주님의 소작인이다 -착한 소작인의 삶-2023.10.8.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프란치스코 2023.10.08 211
2409 빈자(貧者;아나뷤anawim)의 영성 -시의 힘, 노래의 힘-2022.12.22.목요일 12월22일 프란치스코 2022.12.22 211
2408 자유의 여정 -하느님 중심의 삶-2022.10.11.연중 제28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22.10.11 211
2407 하느님 중심의 삶 -관대, 평화, 겸손, 지혜-2022.2.23.수요일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155/156)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02.23 211
2406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2020.6.1.월요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6.01 211
2405 순례 여정중인 주님의 참 좋은 교회공동체 -형제애, 전우애, 학우애-2019.11.21.목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9.11.21 211
2404 아름답고 품위있는 삶 -감사, 깨어있음, 겸손-2019.2.5. 화요일 설 1 프란치스코 2019.02.05 211
2403 평생공부, 평생과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일-2018.2.24. 사순 제1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18.02.24 211
2402 예수님이 답이다 -영적전쟁의 승리-2017.3.5. 사순 제1주일 프란치스코 2017.03.05 211
2401 구원과 심판 -하느님께 희망을 둔 삶-2016.7.26.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6.07.26 211
2400 '참 나(眞我)’를 사는 일-평생과제-2015.9.13. 연중 제24주일 프란치스코 2015.09.13 211
2399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좌파나 우파가 아닌 예수님파로 삽시다”-2023.9.17.연중 제24주일 프란치스코 2023.09.17 210
2398 일치의 중심 -참 권위의 예수님을 닮읍시다-2023.9.9.연중 제22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3.09.09 210
2397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처럼!-2023.9.3.연중 제22주일 프란치스코 2023.09.03 210
2396 치유의 여정 -겸손과 순종, 만남과 치유, 감사와 찬양-2022.10.9.연중 제28주일 프란치스코 2022.10.09 210
2395 영원한 생명의 사랑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2022.7.10.연중 제15주일 프란치스코 2022.07.10 210
2394 축제 인생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2022.7.2.연중 제13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2.07.02 210
2393 나는 누구인가? -삶은 선물膳物이자 과제課題이다-2022.4.12.성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22.04.12 210
2392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삶 -사랑, 겸손, 자비-2019.9.1.연중 제22주일 1 프란치스코 2019.09.01 210
2391 회심回心의 은총 -복음 선포의 사명-2018.1.25. 목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1 프란치스코 2018.01.25 210
Board Pagination Prev 1 ... 47 48 49 50 51 52 53 54 55 56 ... 172 Next
/ 172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