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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8.월요일 주님 세례 축일                                                                이사42,1-4.6-7 마르1,7-11

 

 

비움의 여정

-주님을 따름과 닮음-

 

 

“그리스도 왕이 이 지상에 나타나실 때

 요르단강의 물이 성화되었도다.

 우리 주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을 성화시키셨으니

 우리는 구원의 샘에서 물을 마셔야 하는도다.”

 

제가 늘 감탄하며 많은 영감을 받는 것은 가톨릭교회 전례의 아름다움에서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 아침성무일도시 두번째 후렴 역시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요! 사제의 부족한 강론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깊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전례임에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어제의 주님 공현 대축일에 이어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이고 내일부터는 평범한 일상의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오늘은 두서없이 이런저런 단상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음악은 잘 모르지만 요즘 임윤찬 피아니스트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대가의 풍모가 보이는 아주 젊은 분입니다. 영혼과 사랑이 담긴 동영상 쇼팡의 녹턴이 너무 아름다워 어제는 들으며 위로와 치유의 거룩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배경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과 너무 잘 어울린 곡이었습니다. 또 20세기 가장 존경받는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리흐테르’의 <회고담과 음악수첩>을 틈틈이 읽으며 그의 대가다운 고귀한 인품을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사제서품후 35년 동안 아마도 가장 많이 꿨던 꿈은 “하느님 꿈”일 것입니다. 바로 강론 꿈입니다. 꿈속에서 강론을 완성하고 너무 좋아해서 꿈이 깬후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의 별을 본후 허전한 맘을 추스르며 강론을 쓴적이 헤아릴수 없이 많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이를 복된 ‘하느님 꿈’이라 일컫고 싶습니다. 참 많이도 꿈중에 썼던 강론들입니다.

 

저는 여전히 일어나면 작년 8.15일부터 시작된 만세육창-“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 만세-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후 강론쓰기로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아주 상쾌합니다. 얼마전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만세삼창을 들었습니다. 2024.1.1.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자 제57차 세계 평화의 날 미사시 강론 맨 끝부분 말마디가 저에게는 교황님의 성모님 만세삼창으로 들렸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함께 세 번 외치도록 초대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

(Holy Mother of God! Holy Mother of God! Holy Mother of God!)”

 

주님 공현 대축일은 인류의 빛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날로 우리는 세 신비를 기리는 데 바로 어제 저녁 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후렴이 이를 잘 요약했고 곡도 가사도 참 아름답고 흥겨웠습니다.

 

“오늘 별이 박사들을 구유에로 인도하였고, 오늘 혼인잔치에서 물이 술로 변하였으며, 오늘 그리스도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도다. 알렐루야!”

 

바로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주님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와 더불어 그분의 삶을, 그리고 우리의 세례와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 미사시 화답송 후렴 역시 어제 대축일 미사 화답송 후렴처럼 아름답고 흥겨워 하루 기도노래로 바치려합니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주시리라-”

 

주님 세례 축일을 맞이하여 스치듯 떠오른 말마디-“비움의 여정; 주님을 따름과 닮음”-를 강론 제목으로 택했습니다. 말구유에 탄생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시종여일 비움의 여정을 사셨던 주님의 거룩한 생애였고 하느님은 충만한 생명의 부활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처럼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비움의 여정을 사셨던 주님을 따라 닮아가는 삶을 살라는 모범입니다. 이와 더불어 떠오른 두편의 비움을 갈망하는 자작시입니다. 욕심도 이보다 더 큰 욕심은 없을 것이나 거룩한 욕심이라 생각하며 자위(自慰)합니다.

 

“커져서 텅빈 공(空)이 되고

 작아져 무(無)가 되어 살수는 없을까

 물러나 하늘 배경이 되고

 내려와 땅 마당이 되어 살 수는 없을까

 온전한 사랑이 되어

 예수님처럼!

 참 아름답고 향기로운

 무아(無我)의 삶이겠다

 진아(眞我)의 삶이겠다

 하느님같은 사랑이겠다”-1999.12.

 

무려 25년전 시이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새로우니 진리는 영원한 현재임을 깨닫습니다. 또 하나 다음해 주님 부활 축일 다음 파공날 다 외출한후 주방 앞에 환하게 핀 민들레꽃의 위로도 잊지 못합니다. 한달간 저를 위로하고 치유했던 “민들레꽃”이란 시입니다.

 

“민들레꽃

 외롭지 않다

 

 아무리

 작고 낮아도

 

 샛노란 마음

 활짝 열어

 

 온통

 하늘을 담고(닮고) 있다”-2000.4.24.

 

비움의 충만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주님을 따라 닮아갈수록 비움의 충만의 역설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비움은 그대로 겸손과 순종으로 직결되어 표현됩니다. 말 구유 안에 뉘어 계셨던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우리와 똑같이 세례를 받으니 정말 파격적이요 비움과 겸손의 절정입니다. 하느님의 겸손한 사랑의 표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내려오시니 하느님의 기꺼운 화답입니다. 하늘로부터 들려온 예수님의 신원은 우리의 고귀한 신원도 확인시켜 줍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본격적으로 주님을 따르고 닮아가는 비움의 여정에 들어선 우리 하나하나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합니다. 주님 마음에 드는 자녀답게 존엄한 품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는 예수님과 우리를 통해 실현되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주님을 따라 살아가며 닮아가야할 내용입니다. 다음 주님의 종은 예수님이자 여러분 하나하나에 해당된다고 믿으시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우리 믿는 이들은 한몸의 운명공동체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이어지는 예수님은 물론 우리들의 신원이자 사명입니다. “그”를 “너”로 바꿔 읽어 봅니다.

 

“내가 너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세상에 공정을 펴리라. 너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너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너는 지치거나 기가 꺾이는 일 없이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아, 이것이 예수님과 함께 실현시켜 가야할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닮은 온통 깨어 있는 겸손하고 온유하고 부드럽고 고요하고 섬세한 모습입니다. 관상가과 신비가의 영성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결코 이기적 폐쇠적 자기 안에 갇힌 수인(囚人)이 아니라 주위에 활짝 환히 열려 있는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이웃을 위한 복음 선포의 사명이 이를 분명히 합니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준다. 내가 너를 빚어 모두의 계약이 되고, 빛이 되게 하였으니, 1.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2.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3.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내기 위함이다.”

 

무지의 감옥, 무지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무지에 눈먼 중생들에게, 빛을, 길을, 희망을 잃은 중생들에게 우리 모두 주님의 빛이, 주님의 길이, 주님의 희망이, 주님의 해방자가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고 닮아가는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에 우리 모두에게 부여되는 거룩한 사명이자 과제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평생성사인 성체성사의 은총이 세례성사를 완성시켜 주며 우리 모두 날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게 해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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