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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지혜13,1-9 루카17,26-37


                                                                      귀가歸家 준비


“어, 집에 돌아갈 일만 남았네! 어떻게 잘 돌아가나? 참 중요한 과제구나.”


얼마전 소스라치게 깨달음처럼 나온 말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귀가 준비’입니다. 11월 죽은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죽음을 생각하는 위령성월에도 적절한 주제입니다. 벌써 같은 주제로 세 번째 하는 강론입니다. 저는 죽음을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란 표현을 좋아합니다. 무無에로의 환원이 아닌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인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 삶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쏜살같이,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입니다. 제가 전번 인보성체수도회에 피정지도 왔을 때가 봄꽃들과 신록 찬란한 부활시기 4월이었는데 벌써 단풍들 서서히 떨어져 나가는 11월 만추의 늦가을입니다. 삶도 이와 같습니다. 인생사계로 나눠 봄철의 나이인가 했는데 곧 흘러 여름이요 가을, 급기야 인생겨울 그리고 죽음입니다. 


하여 저는 피정자들에게 인생을 일일일생, 하루로 압축할 때 오전, 오후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또 인생사계, 일년 사계절로 압축할 때 내 인생 어느 계절에 와 있는지 점검해 보기를 권하곤 합니다. 우연의 일치라기 보다는 자연스런 섭리처럼 40대에서 60대, 인생가을에 속한 분들이 많이 피정집을 찾곤 합니다.


귀가준비인 죽음준비보다 더 중요한 준비는 없습니다. 만추의 계절, 위령성월인 11월은 귀가준비 묵상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비단 11월뿐 아니라 귀가준비는 일찍부터 하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하여 사막의 교부들은 물론 성 베네딕도도 수도자들에게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죽음을 날마나 눈앞에 환히 두고 깨어 하루하루 귀가준비에 충실할 때 비로소 환상에서 벗어나 투명한 본질적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래야 불치의 무지無知란 마음의 병도 치유받습니다. 육신의 병보다 치명적인 마음의 병이 무지란 병입니다. 무지에 줄줄이 이어지는 완고함, 눈멈, 오염, 무분별이란 마음의 병들입니다. 탐욕과 교만역시 무지란 병의 다른 이름입니다. 마음의 병의 근원은 바로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의 병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모르고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병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 서두 말씀에서 무지의 정체가 잘 드러납니다.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본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바로 이것이 마음의 병, 무지의 정체입니다. 진정 마음의 눈이 열린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디서나 하느님을 봅니다. 황홀찬란한 단풍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어디에서나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며 충만한 축제인생을 삽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감성에 지성을 지녔어도 하느님께 대한 무지로 영성이 빈약한 이들은 희망과 기쁨이 없이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갑니다. 


희망과 기쁨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하느님은 궁극의 희망이자 기쁨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희망도, 기쁨도, 삶의 의미도 없습니다. 될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욕망에 따른 삶이 뒤따릅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괴물이 되고 폐인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모르고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병으로 인해 욕망따라 괴물이 되어, 폐인이 되어 살아가는지요. 바로 오늘 복음의 노아때의 사람들이나 롯 때의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등 온통 눈에 보이는 욕망의 현실만 있지 위로의 하늘이, 하느님이, 영원이, 기도가 통째로 빠져 있습니다. 무지의 병은 이처럼 치명적입니다. 그대로 오늘날 물질주의에 중독되어 욕망따라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경고 말씀같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인간 본질은, 인성은 변화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첨단 문명의 시대라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지와 탐욕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죽음을 까맣게 잊고 욕망에 중독되어 살다가, 전혀 귀가준비 없이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때 얼마나 난감하고 황당하고 절망스럽겠는지요. 오늘 복음의 마지막 주님의 비유 말씀도 의미심장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외적으로는 똑같은 환경이었지만 내적 삶의 자세는 판이했습니다. 하느님의 데려간 자는 필시 깨어 귀가준비에 충실했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매일미사 보다 더 좋은 귀가준비도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무지의 병을 치유해 주시고,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귀가준비에 충실하며,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행복하게 살게 하십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시편19,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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