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4.금요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1795-1839)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1마카4,36-37.52-59 루카19,45-48

 

성전정화

-성전정화의 일상화-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건물보다도 사람이 우선입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한 건물의 성전이라도 거기 좋은 신자가, 좋은 공동체가 없다면 참으로 허전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때론 박물관처럼 무덤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날로 텅비워져가는 성전이나 번창했다가 사라져 흔적만 남은 오래된 폐사지(廢寺址)를 찾을 때마다 절로 젖어드는 비애감입니다. 

 

정말 살아있는 성전인 거룩한 신자가, 거룩한 공동체가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참 좋고 거룩한 신자가 되기를, 또 좋고 거룩한 신자들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거룩한 욕심의 청정욕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살아있는 성전인 나부터, 공동체부터 날마다의 성전정화가 으뜸 수행입니다. 말그대로 성전정화의 일상화입니다.

 

어제 나눴던 “겨울 배나무 예찬” 고백시를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많이 보완된 완결된 고백 기도시 같은 글이요, 참 좋고 거룩한 살아 있는 성전의 사람을, 공동체를 상징하는 고백시요, 배밭 수도원이라 일컫는 요셉 수도원 소속의 수도자뿐 아니라 요셉수도원을 사랑하는, 넓은 의미에서 요셉 수도원의 한가족같은 모든 분들에게도 와닿는 고백시라 믿습니다.

 

-어쩜 저리도 담담할 수 있나

 초연할 수 있나

 초겨울 밤하늘 별들은 더욱 빛나고 

 땅에서는 하늘 냄새가 난다

 

 그 크고 탐스러운 배열매들 모두 선물로 내놓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봐주지 않아도

 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하기에

 묵묵히 침묵중에 말없이 책임을 다한 후

 

 날마다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무념(無念), 무심(無心), 무욕(無慾)의 겨울 텅빈 사랑의 배나무들

 텅빈 허무(虛無)가 아닌 텅빈 충만(充滿)의 사랑이구나

 참 평화롭다, 놀랍다, 감동스럽다, 부끄럽다

 

 겨울 배나무들아

 너야 말로 내 겸손의 스승, 평화의 스승이구나

 고요한 중에 들려오는 배나무들 고백은 바로 나의 고백이구나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루카17,10)

 

성전정화의 일상화로 날마다 이렇게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영성”을 살아가는 이들이 진짜 성인이요 살아 있는 참 좋고 거룩한 성전입니다. 참 좋고 거룩한 신자들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걸어다니는 성전입니다. 어제 저는 이런 분을 만났습니다. 루시아 자매인데 평상시에도 눈길이 갔던 분입니다. 그런데 어제 뜻밖에도 2주간에 걸쳐 기도하며 손수 손으로 뜬 겨울 쉐터를 저에게 선물했고 이 털쉐터를 입고 강론을 씁니다. 더불어 감동적인 실화도 전해주었습니다.

 

-제 친구가 몇 년전 여기 별내 신도시에 사는, 암투병중인 오빠를 찾아 간병하며 때로 요셉 수도원을 찾았답니다. 그때는 배꽃이 피기 1-2주전 정도는 될 것입니다. 친구는 병색이 짙은 오빠와 함께 수도원을 방문했고 마침 배밭에서 일하던 마르코 수사님이 배꽃봉오리들이 많이 달린 배가지 하나를 잘라 주며 당부했다 합니다. 

 

“이 배나무 가지를 병에 꽂아 놓으면 얼마후 꽃이 활짝 필 것입니다.”

 

과연 말그대로 얼마후 꽃병에 꽂은 배나무가지에서 흰 배꽃들이 활짝 피어나던 날, 친구분의 오빠는 참 편안하게 배꽃을 보며 세상을 떠났다 합니다. 아직 수사님에게는 알리지 못했지만 곧 전해드릴 것입니다.-

 

참 귀한 겨울 털쉐터 선물과 더불어 아름다운 실화를 선물해준 살아 있는 성전같은 아름다운 자매였습니다. 수도원에서 걸어다니며 일하던 살아 있는 성전인 수사님을 통해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난 병자인 오빠가 활짝 핀 흰 배꽃을 보며 선종했다니 그대로 부활로 직결된 죽음임을 봅니다. 

 

오늘 복음과 제1독서 주제도 성전정화입니다. 제1독서 마카베오기 상권에서 유다와 그 형제들이 우선 착수한 것은 공동체의 중심인 성전정화였습니다. 이민족들이 더럽혔던 제단을 다시 정화하여 봉헌한 것입니다. 온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자기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신 하늘을 찬양하였으며 무려 봉헌축제는 여드레 동안 계속됐다 합니다. 역시 축제의 이스라엘 백성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하루하루 날마다 성전정화가, 성전정화의 일상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기도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든 이들을 내쫓으시는 성전정화 활동후 본연의 "가르치는" 사명을 다하십니다. 루카복음 사가가 즐겨 쓰는 용어가 “날마다”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날마다 말씀 공부의 일상화를 통해 살아 있는 성전정화는 이루어집니다. 살아 있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회개와 정화로 깨끗해 지는 살아 있는 성전이 개인이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음 두 문장에서 “날마다”란 말이 나옵니다.

 

2)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

공동체 형제들 하나하나가 하루하루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책임의 십자가를, 제 운명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주님을 따라 갈 때 저절로 이뤄지는 성전정화입니다.

 

3)“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루카11,3)

새삼 가톨릭 교회의 평생 교육 시스템에 감동합니다. 날마다의 거룩한 성체성사 미사를 통해 우리는 일용할 양식의 결정체인 주님의 성체를 모십니다. 그러니 날마다의 주님의 미사 은총은 공동체 형제들 하나하나 살아 있는 성전정화에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미치는지요!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됩니다. 참으로 교회를 풍요롭게 하는, 교회의 보물이 성인들입니다. 순교 성인들은 물론 날마다 죽을 때까지 순교적 삶에 충실했던 성인들은 우리 삶의 좌표가 될 뿐 아니라 부단한 회개의 표징, 희망의 표징이 됩니다. 이분들의 생애와 삶이 우리에게는 늘 신선한 도전이자 자극이 되며 성전정화의 일상화에도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 

 

오늘은 베트남 순교 성인들 축일입니다. 우리보다 200년 정도 앞선 1533년 복음이 전래된 이후 거의 200년 동안 13만의 순교자들을 배출한 베트남 교회입니다.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를 비롯한 116명 순교성인들의 구성도 참 다양합니다. 96위의 베트남인들과, 11위의 스페인 출신 도미니코회 소속 선교사, 10위의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입니다. 신분별로 보면, 8위의 스페인과 프랑스 출신의 주교들, 50위의 사제들(스페인과 프랑스13, 베트남37), 59위 베트남 평신도 도합 117위 순교성인들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1988년 6월19일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안드레아 둥락 사제를 비롯한 116명의 동료순교자들을 시성했고, 이들의 축일은 11월24일 오늘로 기념하도록 보편 교회 전례력에 포함시켰습니다. 참으로 오늘 성 안드레아 둥락을 비롯한 116명의 동료 순교자들의 거룩하고 치열했던 신앙의 삶이 오늘 우리의 삶을 새롭게 정화함을 느낍니다. 

 

참으로 분투의 노력으로 “주님의 전사”답게 하루하루 날마다 순교적 삶에 최선을 다할 때 저절로 성전정화의 일상화도 이뤄질 것입니다. 주님은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의 성전인 공동체는 물론 우리 모두 하나하나를 정화해주시어 참으로 살아 있는 성전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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