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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12. 연중 제11주일 

                                                                               사무엘하12,7ㄱㄷ-10,13 갈라2,16.19-21 루카7,36-8,3


                                                                              예수성심聖心의 사랑


6월 예수성심성월이 고맙습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어제의 복음 중 다음 말씀도 그대로 예수성심의 표현입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의 동사입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7-8).


예수님은 평생 이렇게 사셨고, 사도들도 이렇게 예수성심의 사랑을 실천하라 파견하십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했다 해도 양상만 다를뿐 인간 비극과 불행은 계속됩니다. 인간의 탐욕과 무지라는 병도 여전합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 하지만 온갖 질환으로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인 세상입니다. 고령화에 출산율 저하로 사회는 점차 노쇠해가고 있으며 도대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어제도 한 밤 중 야간 경비 일을 하는 형제로부터 전화가 있었으나 받지 못했고, 정신 질환으로 고통 중인 자매로부터 기도를 부탁하는 메시지도 받았습니다. 불암산 기슭에 있지만 ‘세상의 섬’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 되어 버린 수도원입니다. 참으로 마음이 답답하고 아플 때가 많습니다. 


어제 교회 월간지에서 읽은 구절이 생생합니다. 미국의 존 F. 케네디가 대통령 선거 유세 중 했다는 다음 말마디가 바로 지금 여기 우리에게, 교회에 던지는 통렬한 메시지입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인간적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던 교종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인간의 고통에 정말 민감하게 깨어 있는 예수성심의 사랑은 우리 모두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죄녀를 용서를 통해서도 예수성심의 사랑은 잘 드러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성심의 하느님 사랑을 잘 실천할 수 있겠는가?’ 가 오늘 나눌 강론의 내용입니다.


첫째, 기억하십시오.

늘 하느님의 사랑, 예수성심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을 망각할 때 죄의 유혹에 빠지고 반복하여 죄를 짓게 됩니다. 영성생활은 기억의 투쟁입니다. 하여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말씀을 되새기며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오늘 사무엘 하권의 제1독서의 다윗이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나탄 예언자는 하느님의 사랑을 망각하여 대죄를 지은 다윗에게 나타나 조목조목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상기 시킵니다. 다윗이 깨어 이런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했더라면 결코 유혹에 빠져 우리야를 죽게하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차지하는 대죄를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단 영성생활뿐 아니라 역사 현장에서도 기억은 필수입니다. 미국에서 열린 ‘현대 전쟁의 기원’이라는 세미나에 참석했던 어느 학자의 전달입니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세계적인 석학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합니다. ‘인간은 바보’이며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입니다. 


망각은 인간을 끊임없이 위험 앞에 노출시킵니다. 전쟁의 피해에 대한 망각이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올 것이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망각은 더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 것입니다. 말그대로 기억의 투쟁이, 기억의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에겐 예수성심의 사랑을 늘 기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끊임없이 내 삶을 렉시오 디비나하면서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의 선물을 상기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억이 우리를 행복하게, 낙관적이 되게 합니다. 저절로 하느님은 친히 우리의 구원의 출구, 희망의 출구가 되어 주십니다.


둘째, 회개하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에 닿을 때 촉발되는 회개의 은총입니다. 회개할 때 자신을 알고 하느님을 압니다. 무지로 부터의 해방입니다. 나탄을 통한 하느님의 사랑에 닿는 순간 다윗의 지체없는 회개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바로 이점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내 잘못이다(I was wrong)’의 명수였다 합니다.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서 ‘감사하다.’는 말보다는 ‘미안하다. 잘못했다.’ 인정이 우선입니다. 다음 무언 중의 죄녀의 모습은 그대로 예수성심의 사랑으로 촉발된 회개는 물론 주님께 대한 무한한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그림같이 아름답고 거룩한 장면입니다. 렘브란트가 이런 그림을 한 번 그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죄녀의 회개와 사랑에 감동, 감격하신 주님의 지체없는 용서의 선언에 이은 구원의 선언입니다.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셋째, 환대하십시오.

환대의 사랑입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은 환대의 사랑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바로 우리를 환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온통 하느님의 환대로 가득합니다. 


수도원 십자로의 양 팔을 벌리고 가슴 활짝 연 예수부활상 모습 역시 환대의 주님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를 환대하시고 우리 또한 주님을 환대하니 환대와 환대가 만나는 기쁨과 축복의 시간입니다. 


복음의 죄녀는 과연 환대의 모범입니다. 시몬의 환대 사랑의 부족을 일깨우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정작 회개해야 할 사람은 외관상 거룩한 바리사이 시몬입니다. 아무리 율법에 도통해도 환대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 주었다.”


정말 주님 환대 사랑의 절정입니다. 내 죄에 좌절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주님을 사랑을 다하여 환대하면 모든 죄는 씻어져 깨끗해집니다. 저절로 용서요 구원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고백을 통해 주님 환대 사랑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진정 주님을 환대하여 주님을 모시고 살 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것이고, 이런 주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됩니다. 주님을 환대할 때 주님 역시 우리를 환대하십니다. 


환대의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구원의 출구가 됩니다. 이런 주님의 환대는 이웃 환대에로 직결되기 마련입니다. 결국 이웃을 통해서 주님을 환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연중 제11주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예수성심의 하느님 사랑을 구체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1.기억하십시오. 늘 예수성심의 하느님 사랑을!

2.회개하십시오. 예수성심의 사랑을 체험하기 위해!

3.환대하십시오. 주님과 일치를 위해!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하여 당신을 환대하는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출구’, ‘희망의 출구’가 되어 주시고, 당신 ‘환대의 사람’으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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