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5.8.12.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신명34,1-12 마태18,15-20


                                                                                     소통의 대가大家


오늘은 ‘소통의 대가’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신명기의 주인공 모세가, 복음의 주인공 예수님이 바로 소통의 대가입니다. 요즘 널리 회자되고 있는 말마디가 소통입니다. 10년전만 해도 소통이란 말은 거의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오늘날이 불통의 시대라는 반증입니다. 디지털 문명의, 온갖 소통 매체가 범람하는 시대인데 역설적으로 불통의 시대입니다. 


소통에는 두 차원이 있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하느님과의 수직적 소통의 기도에 사람들간의 수평적 소통의 대화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리와 흡사합니다. 위로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의 수직적 차원의 소통에 아래로 땅에 있는 사람들간의 수평적 차원의 소통의 십자가 형상,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소통의 대가 예수님이십니다.


신명기의 모세, 정말 소통의 대가였습니다. 하느님과 끊임없이 기도로 소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역시 끊임없이 대화로 소통했던 모세였습니다. 사실 수평적 인간들의 소통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 깊은 소통도, 신뢰의 관계도 불가능합니다. 새삼 하느님과의 소통인 기도와 형제들과의 소통은 함께 감을 깨닫습니다.


오늘 모세의 죽음으로 신명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구원 역사의 무대에서 모세는 퇴장하고 여호수아가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도, 사람도 끊임없이 사라져 가지만 하느님만은 영원하십니다. 마지막 모세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 참 냉정합니다. 공과 사가 분명한 주님이십니다.


“저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의 후손에게 저 땅을 주겠다,’고 맹세한 땅이다. 이렇게 내 눈으로 저 땅을 바라보게는 해주지만, 네가 그곳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


잔인할(?) 정도로 무정한 하느님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반면 얼마나 모세를 신뢰했는지 감지됩니다. 소통의 핵심은 신뢰입니다. 하느님과 모세간의 깊은 신뢰의 소통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심중을 너무나 잘 안 모세였기에 말씀에 순종이요 깨끗한 죽음입니다. 하느님은 물론 자타가 인정한 하느님과 모세의 소통의 신뢰 관계는 다음 대목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이다.’


과연 주님과 신뢰의 소통 관계는 날로 깊어지는 지요. 형제들과의 소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님과의 소통입니다. 모세를 능가하여 주님과 깊은 소통의 신뢰관계에 있던 예수님이기에 다음과 같은 깨달음의 충고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지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주님의 깨달음은 기도의 열매임이 분명합니다. 하늘의 하느님과 땅의 사람들은 기도로 하나로 연결됩니다. 주님과 소통인 기도의 힘이 땅에서 형제들과 맺힌 것을 풀게하고, 함께 마음을 모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게 합니다. 이처럼 주님과의 소통이 형제들간 소통의 원천이 됨을 봅니다. 진인사대천명이요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주님과 소통인 기도의 힘이 이처럼 땅에서 형제들간의 소통에 최선을 다하게 합니다.


하늘의 하느님을, 기도를 잊고 살면서 형제들과 소통을 잘 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절대로 피상적 소통의 관계일뿐 더 이상 깊은 신뢰의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하느님과 끊임없는 기도의 소통과 더불어 함께 가는 형제들과 깊어지는 신뢰의 소통입니다. 십자가의 원리는 그대로 소통의 원리입니다. 이런 소통의 원리에 충실할 때 비로소 소통의 완성입니다. 매일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과의 소통과 더불어 형제들간의 소통을 원활케 하심으로 우리 역시 점차 주님을 닮아 ‘소통의 대가’가 되게 하십니다.


“제 영혼에 생명을 주신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시편66.9ㄱ).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93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입니다 -과거를 묻지 않는 하느님-2018.2.23. 사순 제1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18.02.23 158
1892 마음의 눈 -사랑, 봄, 앎-2018.4.30. 부활 제5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8.04.30 158
1891 자유의 여정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2019.4.10.사순 제5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4.10 158
1890 예수님 닮기 -사랑, 섬김, 환대, 행복-2019.5.16.부활 제4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5.16 158
1889 평생과제 -둥근 사랑, 둥근 마음, 둥근 삶-2019.6.18.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6.18 158
1888 언제 어디서나 일하시는 하느님 -하늘 나라의 실현-2019.7.10.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7.10 158
1887 누가 밀이고 누가 가라지인가? -지혜, 겸손, 자비, 인내-2019.7.27.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7.27 158
1886 참 행복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2019.9.11.연중 제23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9.11 158
1885 주님의 종, 마리아 성모님 -신자들의 모범-2019.12.20.대림 제3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19.12.20 158
1884 주님의 연인戀人이자 친구親舊인 우리들 -예닮의 여정-2020.1.2.목요일 성 대 바실리오(330-379)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329/30-389/90)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1.02 158
1883 판단의 잣대는 ‘주님의 뜻’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2020.1.20.연중 제2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1.20 158
1882 하느님과 관상적 일치의 삶 -침묵, 들음, 순종-2020.7.27.연중 제17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7.27 158
1881 미래는, 희망은, 길은, 문은, 보물은 어디에? -주님이, 내가 미래요 희망이요 길이요 문이요 보물이다-2020.8.27.목요일 성녀 모니카(332-387)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0.08.27 158
1880 하느님 자랑 -진인사대천명의 믿음-2021.10.14.연중 제28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21.10.14 158
1879 삶의 지혜 -태풍颱風을 미풍微風으로-2021.11.25.연중 제34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21.11.25 158
1878 희망의 여정 -우리는 모두 희망의 순례자입니다-2021.12.1.대림 제1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21.12.01 158
1877 아나빔(anawim)의 영성 -노래와 삶-2021.12.14.화요일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1542-1591)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1.12.14 158
1876 환대의 사랑 -정주, 환대, 경청, 우정, 치유-2022.2.10.성녀 스콜라 스티카 동정(480-547) 축일 프란치스코 2022.02.10 158
1875 주님 부활 증인의 삶 -체험, 선포, 공부-2022.4.18.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2.04.18 158
1874 착한 목자 예수님 닮기 -경애敬愛, 경청敬聽, 추종追從, 선교宣敎-2022.5.8.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프란치스코 2022.05.08 158
Board Pagination Prev 1 ...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 171 Next
/ 171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