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8. 목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1225-1274) 기념일

                                                                                                      사무하7,18-19.24-28 마르4,21-25


                                                                      비움의 여정旅程

                                                        -여백餘白의 미美, 여백의 자유自由-


성인의 축일 미사를 지낼 때 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성인이 나보다 더 많이 살았나 혹은 적게 살았나 성인의 산 햇수를 견줘보며 ‘아버지의 집’으로의 내 귀가歸家시간을 헤아려 보곤 합니다. ‘천사적 박사(Angelic Doctor)’라 일컫는 ‘관상의 대가’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는 만 49년을 사셨고, 저는 성인보다 무려 18년을 더 살고 있으니 더욱 분발하게 됩니다.


비움의 여정은 자유의 여정입니다. 비움과 자유는 함께 갑니다. 말그대로 여백의 미, 여백의 자유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수도자들이 겨울을 좋아하는 까닭입니다. 군더더기없이, 환상없이 본질만 투명히 드러나는 겨울 풍경의 공간이, 여백이 참 마음을 편안하고 넉넉하게 합니다.


오랜만에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수녀원에 오는 도중 계속 창밖을 내다 봤습니다. ‘공간이 없네’ 저절로 흘러나온 말이었습니다. 온통 아파트와 갖가지 건물, 자동차, 사람들로 가득하여 '빈 곳'이 없었습니다. 계속 ‘채우기’만 할뿐 ‘비우기’를 잊은 현대인들입니다. 


공간을 찾는 사람입니다. 결국 싸움도 공간 확보를 위한 싸움입니다. 공간이 상징하는바 생명이요 자유입니다. 비상한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의 공간을 지켜주는 평범한 사랑입니다. 하여 삶에 지친 이들이 살기위해 끊임없이 하느님 공간을 찾아 수도원에 옵니다. 


외적공간이 상징하는바 내적공간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비움으로 내적공간을 확충함이 회개요 겸손이요 지혜입니다. 예수님이 외딴곳에서 자주 기도하신 것은 채워진 내적공간을 비워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수도자는 생래적으로 고독과 침묵을 사랑합니다. 이제 고독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 된 시대입니다. 진정한 고독은 연대連帶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고독과 침묵의 깊이에서, 내적공간의 여백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텅 빈 허무가 아닌 텅 빈 충만의 하느님을 만납니다. 비울수록 투명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제 좌우명과도 같은 자작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중 넷째 연이 생각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내면의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누리며 사는 자기 비움의 수행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래야 비로소 이웃에 활짝 열린 사랑의 개방입니다. 비움을 통해 주님을 만남으로 마음의 순수와 사랑, 지혜와 겸손입니다. 비로소 오늘 복음 말씀처럼 등경위 등불처럼 존재자체로 빛을 발해 주위를 밝히게 됩니다. 삶 자체가 주님의 빛을 발하니 저절로 복음 선포입니다. 


이런 ‘존재의 빛’앞에 숨겨진 것은 저절로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영성생활에 그대로 입증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입니다. 비울수록 채워지는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입니다. 하여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 마져 빼앗깁니다. 진정 ‘비움의 여정’에 항구한 이들이 내적부요의 행복한 자들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앞에 머무는 것이 자기비움의 참 좋은 수행입니다. 바로 오늘 1독서 사무엘기 하권의 다윗이 그 좋은 모범입니다. 나탄이 다윗에게 말씀을 전한 뒤, 다윗 임금은 즉시 주님 앞에 나아가 앉아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자기비움의 기도의 수행입니다. 다윗의 텅 빈 비움에서 터져나오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통절히 깨달은 다윗의 진정성 가득한 가난과 겸손의 기도가 감동적입니다.


“이제 당신 종에게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바로 매일 미사나 성무일도시 주님 앞에서 내 기도로 바쳐도 좋은 기도문입니다.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을 통해 자기를 비워 내적공간을 넓혀 갈 때 지혜와 겸손, 기쁨과 평화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비워주시고 내적공간을 선사하시어 여백의 아름다움, 여백의 자유, 여백의 기쁨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을 밝히는 빛이 옵니다.”(시편119,10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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