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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7. 연중 제5주일                                                         이사6,1-2ㄱ.3-8 1코린15,1-11 루카5,1-11


                                                             누가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인가?


“오늘 주님의 뜻으로 세상에 태어나심을 축하드립니다.”


오늘 새벽 친지로부터 카톡 축하 메시지 읽고 제 생일을 알았습니다. 당신의 제자와 사도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이 참 흥겹고 고무적입니다.


“천사들 앞에서 당신께 노래를, 당신께 노래를 하오리다.”(시편138,1ㄷ)


천사들 앞에서 주님께 찬미 노래 부르며 이 거룩한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단순명료합니다. ‘누가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인가?’입니다. 바로 우리가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인가 그 까닭을 살펴 보겠습니다. 우선 쉽고 평범한 예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다음달 3월 19일, 우리 수도원의 주보성인이신 성 요셉 대축일날엔 요셉수도원이 자치수도원이 된 이후 최초로 한 분 형제의 종신서원식이 있게 됩니다. 문석준 도미니코 수사입니다. 며칠전 도미니코 수사가 저에게 서원상본을 선물했습니다. 상본 성구도, 상본 그림도 강렬했고 인상적이었습니다.


“깨어 있어라”(마르13.37).


얼마나 간명하고 강렬한 성구인지요. 영성생활의 출발점이자 궁극목표입니다. 깨어 있을 때 기도하게 되고 마음의 순수에 주님을 만납니다. 우리 영성생활의 모든 수행도 깨어있음을 지향합니다. 상본 뒷면의 그림은 수도원 성전 뒷면의 부엉이 눈의 그림이었습니다. 


역시 깨어있음을 상징하는 부엉이의 눈은 그대로 하느님의 눈을, 우리 수도승의 눈을 , 수도승의 삶을 상징합니다. 얼마나 수도승다운 상본의 성구요 그림인지요. 긍정과 격려의 칭찬으로 강론을 시작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다음은 어제 월피정 복음 렉시오 디비나 나눔시 마음에 와 닿았던 평범한 서두 구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루카5,1).


그대로 눈에 보이는 듯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지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평범하나 참으로 강렬한,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이 군중은 그야말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깨어 하느님의 말씀으로 듣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과연 우리는 전례독서시 얼마나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고 깨어 듣고 있는지요. 재미있는 것이 어제 C해 연중 제5주일의 저녁 성무일도 후렴과 오늘 아침일도 성무일도 후렴이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두고 모든 것을 버린 다음 예수를 따라 나섰다.’(루카5,11).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지요.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가 되기 위해 모두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선 참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이요 빛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우리가 침묵중에 깨어 있는 것도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함입니다. 깨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가 되기 위한 기본 전제 조건임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인지 세 측면에 걸쳐 나눕니다.


첫째, 주님의 은총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입니다.

부르심과 응답이 한쌍을 이룹니다. 하느님은 당신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오늘 두 독서의 주인공인 이사야와 바오로, 복음의 주인공인 베드로입니다. 


예나 이제나 영원히 살아 현존하시는 하느님은 오늘도 당신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사야가 바오로가 베드로가 체험한 주님을 왜 우리인들 체험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니 깨어 갈망의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하느님은 거룩한 환시와 말씀을 통해 이사야를 부르십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우리 미사전례때의 ‘거룩하시다’가 아닙니까. 바로 이때 우리 역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어 계속되는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과 주님의 말씀이 충격적 감동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코린토 교회 신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함으로 구원받았음을 확인시킵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부르심과 제자들의 응답 역시 아름답습니다. 주님은 “깊은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말씀하셨고, 이 말씀에 순종으로 응답한 시몬 베드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주님이 빠진 허무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대목입니다. 밤새도록, 아니 평생 애썼는데 길어올린 것은 공허한 인생이라면 얼마나 마음 허전하겠는지요. 시몬 베드로가 주님 말씀에 순종으로 응답하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의미충만한 삶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삶의 깊은데로 갔어야 하는 건데 얕은데에서만 살았으니 영적수확 없는 허무한 삶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어디가 삶의 깊은데입니까?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삶의 깊은데입니다. 깨어있으면 모두가 깊은데이지만 깨어있지 않으면 모두가 삶의 얕은데입니다.


둘째, 주님과 은총의 만남과 더불어 참 나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주님과의 만남과 자기와의 만남이, 자기 발견이 한쌍을 이룹니다. 주님이 없으며 나도 없습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날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되고 존재감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나를 알 수도 없고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뿌리없이 떠도는 유령같은, 귀신같은 삶입니다. 


도대체 주님이 없으면 진정 살아있음을 체험할 수도 실감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이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사야가 이사야일 수 있음은, 바오로가 바오로 일 수 있음은, 베드로가 베드로일 수 있음은 주님을 만나 참 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세분의 주님과 만남을 통한 자기발견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이사야; “큰 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뵙다니!”


바오로;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베드로;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환히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거울없이 우리 얼굴을 알 수 없듯이 주님 없이는 내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죄인으로 서 자기의 민낯을 발견한 제자들이자 사도들, 그리고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자기발견의 겸손임을 깨닫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위의 세분처럼 우리 역시 참 나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타는 숯 대신에 거룩한 성체를 모실 때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그대로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성체聖體를 받아 모심으로 영육靈肉이 정화淨化되고 성화聖化되어 주님을 닮아감으로 ‘참 나(眞我)’가 되어가는 우리들입니다.


셋째,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선 사람입니다.

버림과 따름이 한쌍을 이룹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름으로 주님의 제자이자 사도가 되는 장도壯途에 오른 것입니다. 문자그대로 모두를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무집착의 정신으로 주님을 따라 소유가 아닌 존재를 참 나를 살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안팎으로 자기를 비우라는 것입니다. 


막연히 버리고 떠나기가 아닌 구체적으로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입니다. 주님을 추종하기 위해, 따르기 위한 버림입니다. 이래야 삶은 짐이 아닌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제자직과 사도직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한번으로 끝나는 버림과 따름이 아니라,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물처럼 매일, 평생 버리고 떠날 때 맑고 향기로운 주님의 제자와 사도로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이사야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사야와 함께 대답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주님은 또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시몬 베드로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시며 당신의 사도로 파견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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