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0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집회48,1-4.9-11 마태17,10-13



나의 멘토는 누구인가?

-네적시야內的視野의 심화深化와 확장擴張-



오늘 복음 앞에는 바로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변모사화(마태17,1-9)가 나옵니다. 변모사화중 예수님이 만난 분들은 모세와 엘리야였고 두분 다 죽지 않고 산 채로 승천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러니 두분은 천상적 존재들입니다. 하늘에서 영광을 누리는 분들로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예수님과 함께 나타나셔서 대화를 나누십니다. 잘 아시다시피 모세는 율법의 대표이고 엘리야는 예언자들의 대표입니다.


여기서 문득 떠오른 ‘아, 모세와 엘리야는 시공을 초월한 예수님의 영원한 멘토였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평상시에도 예수님은 두분을 깊이 존경하고 공부하며 많은 영향을 받으신 실질적 영적멘토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분을 멘토로 했지만 두분을 훨씬 능가한 예수님이셨습니다. 사실 산상수훈의 진복팔단은 십계명의 완결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분의 멘토 역시 다 승천하셨고 예수님 역시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이 상징하는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사탄은 ‘에고ego’의 중력에 의하여 추락했습니다. 천사가 하늘을 날 수 있음은 자기가 없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집착없는 초연한 삶이요 이의 자연스런 결과가 자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하느님 중심의 승천의 삶입니다. 사실 모세나 엘리야의 평소 삶 역시 온전한 하느님 중심의 승천의 삶이었습니다. 


이런 착상을 한 것은 얼마전 읽은 베네딕도 16세 전임 교황님의 고백을 통해서입니다. 교황님은 자신의 영원한 멘토로 두분을 꼽았으니 바로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보나벤투라입니다. 기도와 연구중에 이 두분을 영적멘토로 삼아 깊은 영적친교를 나누며 살아가신다는 참 신선한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교황님의 신학적 사상은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보나벤투라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합니다. 자신을 가리켜 ‘결연한 아우구스티노주의자’라 칭하기도 하셨으며, 어쩔수 없이 무인도에 가야 한다면 성경과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두 권의 첵을 가져갈 것이라 말씀하셨고, 대학교수 자격논문에서는 보나벤투라의 역사신학을 연구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보나벤투라를 영원한 멘토로 모신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을 통해 우리 역시 용기와 자극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멘토로 모셨고, 교황님을 아우구스티노와 보나벤투라를 영적 스승으로 모심으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시공을 초월한 광활한 영적지평과 초월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영적 스승은 누구이겠는지요? 영적 스승이 없다고 전혀 비관할 바 없습니다. 교회 역사상 영적 스승으로 삼을 성인들은 무수하기 때문입니다. 이래야 우리의 영적시야도 깊고 넓을 수 있습니다. 우리 요셉수도원의 수도형제들은 주님께로 이끌 영적멘토를 세분씩이나 모시고 있습니다. 성 요셉, 성 베네딕도, 그리고 각자의 수도명에 따른 성인입니다. 평소 이분들과 주님 안에서 관상기도를 통해 깊은 내적친교를 통해 배울 때 우리의 ‘하느님 중심’의 영성도 더욱 깊어지리라는 확신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변모사화를 통해 환히 계시된 예수님의 두분 영적멘토였고, 오늘 1독서는 엘리야의 예언자로서의 탁월했던 모습이 생생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집회서의 저자는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습니다.’ 묘사한후 계속 고백합니다.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마치 파스카의 예수님을 향한 고백처럼 들립니다. 예수님을 본 사람들과 사랑안에서 잠든 성인들은 행복하며, 우리 역시 반드시 부활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아니 이미 지금 부활의 삶을 앞당겨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의 변모를 체험한 제자들은 산에서 내려올 때 예수님께 묻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예수님께서 엘리야와 또 세례자 요한과 얼마나 깊은 영적교류를 나누셨는지 다음 대목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바로 예수님만이 세례자 요한을 통해 엘리야의 내림을 직감했음이 분명합니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마음의 눈이 열려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합니다. 주님은 엘리야의 내림인 세례자 요한을 통해 자신의 고난을 예감하십니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란 말마디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대림시기 교회는 물론 이 나라에 주시는 복음 같습니다. 대림시기의 우리는 모두 주님의 길을 닦는 또 하나의 세례자 요한이고 엘리야입니다. 대림시기 주님의 은총이 교회는 물론 나라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의 평화로운 촛불집회가 이의 전조前兆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혼자서는 못삽니다. 더불어 관계속의 인간입니다. 예수님처럼, 베네딕도 16세 교황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적멘토와의 내적관계를 깊이 함으로 우리의 영적시야를 심화, 확장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 안에서 우리의 영적멘토와의 친교를 깊이 나누는 복된 시간입니다.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시편80,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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