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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8. 연중 제27주일                                                                              이사5,1-7 필리4,6-9 마태21,33-43



사람이 문제다

-하느님 포도밭의 소작인들-



사람이 문제입니다. 내가 문제입니다. 내가 몸담아 살고 있는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포도밭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나라 포도밭의 주인은 하느님이고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포도밭 소작인들입니다. 결코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소작인들이 아니라 잠정적인 소작인들입니다. 과연 착하고 충실한 소작인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인지요?


우리의 사명은 단 하나 내 몸담아 살고 있는 오늘 지금 여기 하느님의 포도밭을 잘 가꾸는 것입니다. 매 가을마다 풍요한 열매들을 내는 여기 수도원의 배밭처럼 우리 하느님의 포도밭 하느님의 나라를 잘 가꾸어 정의와 공정의 풍요로운 열매들을 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의 ‘포도밭의 노래’가 참 의미심장합니다. 우리 삶의 포도밭을 가리키는 노래같습니다. 하느님의 슬픔이, 실망이 가득 담긴 탄식조의 노래같습니다. 얼마나 공을 들인 하느님의 사랑하는 포도밭인지요! 들어보세요.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포도 확도 만들었네. 그러고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들포도를 맺었다네.”


하느님으로 상징되는 포도밭 주인은 너무 답답한 마음에 우리 모두에게 하소연하듯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이, 유다 사람들이 가리키는 바 하느님의 포도밭 소작인들인 우리들입니다.


“자 이제, 예루살렘 주민들어, 유다 사람들아, 나와 내 포도밭 사이에 시비를 가려다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


그대로 소작인들이자 주님 포도밭의 포도나무들인 우리들을 두고 하는 말씀같습니다. 내 삶의 포도를, 좋은 포도가 아닌 들포도는 아닌지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포도밭 노래의 숨겨진 의미가 완전히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심중을 고스란히 반영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요, 유다 사람들은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나무라네.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


결코 낭만적 포도밭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포도밭을 제대로 가꾸지 못한 우리 모두에 대한 주님의 탄식과 슬픔이 가득담긴 말씀입니다. 오늘의 사회현실에도 고스란히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몸담고 있는 교회의 포도밭 현실도 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좋은 포도 열매는 바로 공정과 정의입니다. 그런데 공정과 정의의 현실이 아닌 들포도 같은 피 흘림과 울부짖음이 가득한 현실이라면 하느님의 아픔은 너무나 클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는 역사는 반복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현실이 오늘 마태복음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아니 오늘날도 여전히 반복되고 재현되는 불의와 불공정의 역사입니다. 과연 인간의 진보가, 역사의 진보가 가능한지 때로 회의하게 됩니다. 편리하고 빠른 첨단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내면과 심성은 날로 황폐화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하느님 사랑이 증발됨에서 기인합니다. 믿음만이 아니라 희망도 사랑도 증발되는 현실입니다. 남는 것은 소작인들인 우리의 탐욕뿐입니다. 하느님을 잊은 업보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의, 신망애信望愛의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이런 하느님 샘으로부터 끊임없이 샘솟는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악한 소작인들은 자기의 신원을 잊어버렸습니다. 포도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요 자기들은 단지 소작인들이라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하여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보내는 족족 매질하고 죽이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와 탐욕만 남은 참 잔인한 사람들입니다. 마침내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까지 죽인 악한 소작인들입니다. 이런 박해의 역사는 오늘도 알게 모르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정과 정의는 사라지고 세계 곳곳에서의 피흘림과 울부짖음이 참으로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느님을 알고 비로소 무지와 탐욕으로부터 해방입니다. 무지와 탐욕, 교만에 대한 답은 하느님 사랑 하나뿐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바로 복음의 소작인들은 이런 하느님을 몰랐기에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無知가 바로 죄罪이자 악惡이자 병病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길은 사랑 하나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힘을 다해 마음을 다해 정신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하느님 포도밭부터 공정과 정의의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회개입니다. 회개의 열매는 공정과 정의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결국은 하느님의 승리입니다. 하느님께는 좌절이나 절망이 없습니다. 악한 소작인들은 정리되고 새 사람들이 하느님의 포도밭 소작인들이 됩니다. 악한 소작인들은 전혀 하느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 자기들의 악행으로 자초한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포도원 소작인들의 우화에서 악한 소작인들이 가리키는 바, 바로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었음이 드러납니다(마태21,25). 이들이 대한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우리에겐 경각심을 갖게하는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도 됩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마태21,42-43).


시편을 인용하여 파스카의 예수님을 찬양하는 초대교회신자들입니다. 집짓는 이들이 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 파스카의 예수님 위에 지어진 교회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 교회의 새 일꾼들인 소작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사랑으로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 역시 복음의 악한 소작인들이 될 수 있고 또 교회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어떻게 하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착하고 성실한 하느님의 포도밭, 하느님 나라의 소작인 일꾼으로 살 수 있을 까요?  바로 바오로가 제 2독서에서 답을 줍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끝으로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4,6-9).


바로 이렇게 살 때 하느님의 놀랍고 풍요로운 사랑의 선물입니다. 저절로 하느님의 찬미와 감사, 기쁨과 평화, 온유와 겸손, 공정과 정의의 일꾼이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착하고 충실한 당신 포도밭의 소작인들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당신을 바라는 이에게, 당신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은 좋으신 분!”(애가3,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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