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5.6.10.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2코린3,4-11 마태5,17-19


                                                                                                         율법의 완성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없이 율법의 완성은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율법을 지켜도 여전히 지켜야 할 율법은 남아있고 마음의 평화도 없습니다. 결코 율법주의는 하느님이 원하는 바도 아니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율법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율법의 완성입니까?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사랑뿐이 답이 없습니다. 사랑과 율법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표현이 율법입니다. 그러니 사랑으로 행할 때는 율법에 거스르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은 분별의 잣대입니다. 예전에 써놓은 짧은 자작 애송시가 생각납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 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


나무는 부단한 율법준수를 통해 완성을 지향하는 자의 모습을 상징하는 반면 호수는 하늘 사랑을, 사랑의 하느님을 마음에 담은 '사랑의 사람'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나무가 되어 살 것이 아니라 사랑의 호수가 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런 호수같은 사랑의 사람을 통해 비로소 율법의 완성입니다.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보다는 사랑 실천에 집중해야 합니다. 율법준수에 집착할 때는 자유롭지 못하고 사랑에 힘쓸 때는 자유롭습니다. 사랑이 진정 자유롭게 합니다. 비단 율법만이 아닙니다. 수도자의 모든 수행도 사랑의 표현이요 궁극엔 자유를 목표로 합니다. 


어제의 경우가 지금도 마음에 걸립니다. 아침 식사후 집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을 때 몹시 힘들어 보이는 한 자매가 문 앞에 서서 고백성사를 보고 싶다 했습니다. 

"3시경 기도 후에 오십시오. 그때 고백성사 드리겠습니다.“

기도후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상 기다릴 여유가 없어 떠난 듯 했습니다. 참 마음이 걸렸습니다. 힘들게 오신 분이 분명한데, 이런 예외적인 경우는 기도를 못하더라도 사랑의 분별로 우선 불쌍해 보이는 자매부터 성사를 드렸어야 하는 건데 많이 후회되었습니다. 


성령은 사랑입니다. 분별의 사랑도 성령의 선물입니다. 사랑의 성령에 따라 살 때 저절로 율법의 완성입니다. 1독서의 새 계약의 일꾼은 비단 바오로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위한 율법이지 율법을 위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빠진 문자 그대로의 율법주의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의 사랑은 사람을 살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모두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새 계약의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들,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분별로 율법의 완성에 이르게 하는 사랑의 성령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어 사랑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03 약속과 실현 -영원한 구원의 희망이신 주님-2017.12.9. 대림 제1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7.12.09 118
1802 약의 사람들 -‘걸림돌’이 아닌 ‘바위’같은 사람들-2022.8.4.목요일 성 요한 마리 비안네 사제(1786-1859)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08.04 213
1801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참 아름다운 빛의 사람들, 빛의 증언자들-2016.12.16. 대림 제3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6.12.16 172
1800 어둠을 밝히는 빛 -무지의 어둠, 주님의 빛-2017.4.7. 사순 제5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7.04.07 135
1799 어떻게 살 것인가? -‘씨뿌리는 활동가, ’좋은 땅’의 관상가로-2018.1.24. 수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1567-1622)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8.01.24 135
1798 어떻게 살 것인가? -기도와 섬김-2019.3.20.사순 제5주간 수요일 3 프란치스코 2019.03.20 145
1797 어떻게 살 것인가? -깨어 준비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삶-2023.11.2.목요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프란치스코 2023.11.02 160
1796 어떻게 살 것인가? -문제와 답도 내안에 있다-2019.1.30. 연중 제3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1.30 157
1795 어떻게 살 것인가? -물음, 돌아봄, 찾음, 비움-2018.3.25. 주님 수난 성지 주일 1 프란치스코 2018.03.25 212
1794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랑하라, 화내지 마라, 자비로워라-2020.9.13.연중 제24주일 1 프란치스코 2020.09.13 138
1793 어떻게 살 것인가? -예닮의 여정- “주님을 믿어라, 주님을 사랑하라”2024.4.11.목요일 성 스타니슬라오 주교 순교자(1030-1079)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4.04.11 116
1792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님 수난기로부터 배우는 가르침-2022.4.10.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프란치스코 2022.04.10 246
1791 어떻게 살아야 하나? -“슬기롭게”-2022.11.2.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프란치스코 2022.11.02 286
1790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랑이 답이다-2022.10.31.연중 제31주간 월요일 PACOMIO 2022.10.31 237
1789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신뢰, 꿈, 시야, 한결같음-2021.3.5.사순 제2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1.03.05 156
1788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자나깨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2019.6.4. 부활 제7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6.04 168
1787 어떻게 살아야 하나? -주님의 제자이자 복음 선포의 사도로-2023.10.18.수요일 성 루카 복음 사가 축일 프란치스코 2023.10.18 165
1786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진리의 연인, 진리의 증인, 진리의 협력자-2022.11.12.토요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1580-1623)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11.12 182
1785 어떻게 살아야 하나? -회개, 만남, 사랑, 증인-2021.4.18.부활 제3주일 1 프란치스코 2021.04.18 102
1784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예수님처럼 -주님의 섬김의 종답게, 순종의 대사제답게, 진리의 왕답게-2024.3.29.주님 수난 성금요일 프란치스코 2024.03.29 152
Board Pagination Prev 1 ...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 172 Next
/ 172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