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5.화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515-1582) 기념일

로마1,16-25 루카11,37-41

 

 

하느님

-자연과 인간의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答-

 

 

오늘 강론 제목은 하느님입니다. 더 분명히 하면 ‘하느님-자연과 인간의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와 연결되어 문득 떠오른 얼마전 써놓은 시를 나눕니다.

 

-“하늘은 푸르고/흰구름 두둥실/참 좋은 가을날

“붕어빵 4개 천원!”/투박한 글씨/붕어빵 보다 더 곱고 예쁜

생활미 넘치는/빛나는 가난/빵 구워 파는 자매

하느님도 빙그레 웃으신다

지났다/다시 가서/천원짜리 붕어빵 4개 사다”-

 

하느님을 제목으로 한 것은 세 번째 20년전 순교복자수녀회 피정강의 때 주제였고 8년전 청담동 성당 대림 강의 때도 주저함없이 하느님을 강의 제목으로 택했습니다.

 

하느님, 자연, 인간 셋은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하느님을, 자연을 떠난 업보의 결과입니다. 하느님 없이 자연과 인간에 대해 아무리 논의해도 답은 나올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항구히 사랑했던 성인들은 참으로 죽는 그날까지 치열히 살았고 인간과 자연을 사랑했습니다. 

 

문득 얼마전 참으로 자유로워 보였던 자매의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저는 기대가 없습니다.”, 참으로 기대하는 것이 없기에 자유롭고 두려움과 걱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여유가 있어 보이는 데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지니지 않고 필요한 때는 도서관을 이용한다 했습니다. 많은 시간 주로 이콘 만드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사랑에 집중하기에 이런 초연한 이탈의 자유일 것입니다.

 

어제 어느 자매로부터 낡고 낡은 책 한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법정 스님의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무소유’란 작은 책자였습니다. 예전 김수환 추기경님의 무소유의 삶을 살더라도 이 무소유 책자 만은 지니고 싶다는 유머도 생각났습니다. 반가웠고 오래 보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오래 되어 낡아도 고전은 영원합니다. 새삼 고전같은 삶을 살았던 분들이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성인들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으로 고전같은 성인들입니다. 우리 역시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고전같은 성인들처럼 품위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자유로워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밝아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지혜로워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자비로워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사람도 피조물인 자연도 사랑합니다. 바로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자연에 대한 답도 하느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지난 주일 바티칸에서 헨리 뉴만 추기경을 비롯하여 세분 수녀의 시성식이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강론 끝에 뉴만 추기경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거룩함을 살아가는 신자들의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거룩한 신자는 깊고, 고요하고, 숨겨진 평화를 지닌다. 그는 쾌활하고, 편안하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예의바르고, 솔직하고, 자신감에 넘쳐 있지 않다. 그는 첫눈에 쉽게 '보통 사람(an ordinary man)으로 느낄 정도로 그 행동거지가 유별나거나 눈에 띄는 일이 거의 없다.” 성인의 글을 인용한 후 교황님은 “우리도 그처럼 어둠 속에 ‘친절한 빛들’(kindly lights)이 되도록 하느님께 청합시다.”로 강론을 끝맺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이런 안과 밖이 같은 평범하면서도 초연함의 은총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 역시 하느님은 물론 인간과 자연을 사랑한 분이심이 분명합니다. 사도의 복음안에는 이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생각합니다. 사도의 소원은 아드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복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믿는 것이 바로 복음이며 이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이런 하느님 힘의 은총이 집착함이 없는 초연한 사랑을 가능하게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를 잘 밝혀주고 있습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불멸하시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인간과 날짐승과 네발짐승과 길짐승같은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버리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무지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음을 천명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찬양과 감사를 드릴 때 하느님을 알게 되고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여 알아가게 됨으로 비로소 무지로부터 해방되니 바로 이것이 바로 복음이며 우리의 필생의 과제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매일 평생 끊임없이 시편과 미사 공동전례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우리들입니다. 

 

참으로 치열히 살았던 성인들이며 인간과 자연을 사랑했던 성인들입니다. 이런 성인은 저절로 다음 화답송 후렴을 노래할 것입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네”. 프란치스코 성인은 물론이고 성인의 경지에 있던 예수회 회원, 떼이야르 샤르댕 역시 자연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환경이 하느님을 체험하는 ‘신적환경(divine milieu)’이며 이를 ‘현순간의 성사(The sacrament of the present moment)라 명명합니다. 매일의 모든 순간이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의 표지라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는 떼이아르 샤르댕의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만67세를 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시에나의 카타리나,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더불어 교회의 동정학자에 속합니다. 이상적이기보다는 매우 땅에 가까웠던 현실적인 성녀였습니다. 일과 조직에 대한 큰 능력과 더불어 상식, 현명,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결합시킴으로 성녀가 직면한 온갖 장애물을 극복했습니다. 이런 삶을 위해 성녀는 지성과 좋은 판단력을 강조했습니다. “하느님은 둔한 수녀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길!” 유머 비슷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성인들이나 복음의 예수님과 비교했을 때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은 얼마나 꽉 막힌 무지의 사람들인지요. 본말전도의 아주 부수적인 외적인 것들에 집착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적 말씀은 이들은 물론 우리 모두의 회개를 통한 마음의 순수를 촉구합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비단 자선뿐 아니라 활짝 개방해 가진 것을 나눔으로 투명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내적 정신과 동기입니다. 참으로 내적동기가 옳고 순수하다면 모든 것은 저절로 잘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속이 깨끗하면 저절로 겉도 깨끗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더도 덜도 아닌 나일 뿐입니다. 참으로 내적으로 깨끗할 때 의연할 수 있고 품위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안의 탐욕과 사악을 말끔히 정리해 주시어 우리 모두 의연하고 품위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끝으로 박노해 시인의 ‘동그란 길로 가다’란 시를 나눕니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수는 없다/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머물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최악의 시간은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나쁜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어떤 경우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아멘.

 

 

  • ?
    고안젤로 2019.10.15 08:59
    사랑하는 주님, 주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느껴지는 주님사랑을
    저희가 세상속에서도
    주님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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