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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30.토요일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                                                                1요한2,12-17 루카2,36-40



그리스도인과 세상

-세상을 사랑하지 마라-



요즘 계속되는 새벽기도 초대송 후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나셨으니 어서 와 조배드리세."

'우리를 위하여'란 말마디가 핵심입니다. 우리의 빛, 우리의 희망, 우리의 생명, 즉 우리의 모두로 탄생하신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오늘 제1독서 요한1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자녀 여러분’이라는 첫 말마디는 바로 신자 전체인 우리를 가리킵니다. 오늘 말씀의 요지는 '빛속에서 걸어가는, 살아가는' 신자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이탈하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이미 실제로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곧 우리들은 이미 죄를 용서 받았고 성부와 성자를 알고 있으며 벌써 악마를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하여 요한은 끊임없이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확신시키며, 세상을 사랑하지말라는 훈계로 끝맺습니다.


여기서 세상은 부정적 측면으로서의 세상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이 아닙니다. 부정적 측면으로서의 세상은 바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 악한 세력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구원받은 신자들은 이런 세상을 사랑하여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다음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아버지께 대한 사랑과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사랑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진정 아버지를 사랑할 때 세상적인 것들에 집착하지도 않고 유혹에 빠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세상적인 것들의 유혹에 빠져 이들에 집착할 때 하느님의 자리는 이들 안에 없습니다. 


아버지에서 온 것인가, 혹은 세상에서 온 것인가의 분별이 절대적입니다. 이런 분별의 지혜는 아버지를 사랑할 때 선사됩니다. 요한은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이 세가지 경향이 바로 세상적인 것들입니다. 모두 무절제한 욕망을 가리킵니다. 육의 욕망은 성적탐닉뿐 아니라 무절제란 육체적 희열을 추구하는 것이고, 눈의 욕망은 타인들이 지닌 것에 대한 모든 탐욕과 질투를 포함합니다.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타인들의 필요에 관심이 없는 모든 형태의 자기중심적 교만과 과시를 뜻합니다. 


이들 세상적인 사람들의 쾌락과 무절제한 탐욕, 부와 권력에 대한 무분별한 추구는 하느님 나라의 비전과는 전적으로 모순됩니다. 그대로 자본주의사회 사람들의 병폐에 대한 지적같습니다. 오늘 요한 1서의 결론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지나가는 세상에, 지나가는 욕망에 마음 두지 말고 영원하신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세상 것들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바로 세상적인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만이 지나가는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참으로 자유로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혼란과 무질서는 하느님을 떠난 업보임을 깨닫습니다. 어느 동방정교회 신학자의 통찰을 소개합니다.


“하층계급들에게 신사도를 요구하기는 힘듭니다. 기사정신은 물질적 자본을 갖춘 사람들의 정신적 성숙, 마음 훈련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것은 종교입니다. 종교적 훈육의 사회적 역할이 바로 사적 욕망의 억제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뚤어지고 어긋나기 십상인 심성을 겸허함과 겸손함으로 다스리고 다독이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근간이 에고를 극복하는데 있습니다. 더 큰 세계, 우주와의 공속감을 배양하는 것, 바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이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어지는 그의 문명사회에 대한 통찰에도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습니다.


“문명사회는 혁명가들의 시각처럼 지배와 피지배의 단순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공생관계 속의 차등으로 작동합니다. 그 차등이 얼마나 합당하고 합리적이냐의 여부를 따질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생생한 현실을 부정하면 문명이 파괴됩니다. 그래서 순수한 민주주의가 순수한 폭정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위아래와 높낮이가 사라지면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는 야만상태로 떨어집니다.---절대적인 자유와 평등은 환상입니다. 공존공생을 위한 상대적 자유, 상대적 평등이 현실입니다. 자유는 절제되어야 하고, 평등은 조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명이 지속됩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것은 문명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강약과 대소가 없을 수 없습니다. 문명이란 그 대소와 강약과 상하를 조화시키는 세련되고 우아한 기술입니다. 대소와 강약과 상하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혁명은 기만입니다. 우리는 문명을 사수해야지 혁명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 중심의 깊은 삶에서 나온 분별의 통찰임이 분명합니다.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초연할 때 이런 사랑 가득한 공존공생에 대한 통찰의 지혜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자연친화적 문명사회를 건설하는 일이 절실한 때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영적 성숙의 모범이 바로 오늘 복음의 한나 여예언자입니다. 한나의 초탈한 삶의 비결이 다음 대목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이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역시 하느님 사랑과 세상적인 것들로부터의 이탈에 끊임없는 기도가 답임을 깨닫습니다. 영적 삶도 보고 배웁니다. 시메온과 한나를 만난 예수님 부모는 이들 두 예언자에게 큰 감화를 받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고향 나자렛에 돌아간 예수님의 부모이며, 이 신심깊은 부모를 보고 배운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복음 마지막 구절이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하였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하느님은 예수 아기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이렇게 자라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영육을 튼튼케 하시고 지혜로운 삶을, 당신의 총애를 받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요한1,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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