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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15.토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묵시11,19ㄱ;12,1-6ㄱㄷ.10ㄱㄴㄷ 1코린15,20-27ㄱ 루카1,39-56

 

 

 

영적 승리와 축복의 원천

-찬미, 겸손, 우정-

 

 

 

요즘은 뉴스 보기가 두렵습니다. 대부분 국민들이 어두운 분위기에서 힘겹게 지내고 있습니다. 전례 없던 코로나19 펜데믹 감염병과 홍수피해로 참으로 심신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화되었으니 노래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니 보통 재앙이 아닙니다. 

 

이런 와중에 맞이하는 성모승천 대축일이 참 고맙습니다. 희망과 기쁨의 태양이 세상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느낌입니다. 우리 믿는 모두의 영원한 삶의 모범인 성모 마리아입니다. 말그대로 성모님의 영적 승리의 삶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구약의 에녹, 모세, 엘리야에 이어 신약의 예수님에 이은 성모님의 승천입니다. 믿는 이들의 영적 승리의 삶을 상징하는 성모님의 승천입니다. 바로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표지가 성모님의 승천이요 오늘 지금 여기서 우리 모두 승천의 삶을, 영적 승리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분발케 합니다. 영적 승리의 삶은 그대로 하느님의 승리를 뜻합니다.

 

성모승천 대축일 새벽 성무일도시 초대송 후렴과 찬미가로 하루를 시작한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참 아름다운 전례가 우리 영혼에 활력을 줍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 하늘에 오르셨으니 어서와 우리 주께 조배드리세”-초대송 후렴

 

-“태양의 빛입으신 동정녀시여 열두별 머리위에 꾸미신이여

저달을 발판삼아 우뚝 서시니 환하게 빛나도다 당신의 광휘

 

죽음과 지옥권세 쳐부순이여 우리를 마음여겨 보살피시니

주님의 곁에 앉은 당신우러러 모두가 여왕으로 찬양드리네”-

 

바로 제1독서 묵시록을 근거한, 성모님의 영적 승리의 삶을 경축하는 찬미가입니다. 2절까지만 소개했지만 5절까지 내용이 참 깊고 풍부합니다. 방금 미사중 흥겹게 부른, “왕후가 당신 우편에 서 있나이다.” 화답송 후렴도 우리를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느낌입니다. 

 

이번 8월16일자 카톨릭 평화신문은 온통 지난 8월2일 선종한후 8월8일 죽림동 주교좌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봉헌한 제6대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님 기사로 가득했습니다. 그대로 영적 승리의 삶을 신자들에게 선물로 남기고 떠나신 향기로운 주교님입니다. 마지막 유언인 시편과 남기신 말씀도 아름답고 감동스럽습니다.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시편116,12-13)-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반세기 이상을 부당한 사제로 살도록 허락하신 과분한 은총을 입은 주님의 종,  죄인 장익 십자가의 요한 저는 그저 더없이 고맙고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아, 어떻게 성모님처럼, 장익 주교님처럼 영적 승리의 삶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을런지요. 어떻게 하면 희망과 기쁨으로 빛나는 영적 승천의 삶을 살 수 있을런지요.

 

첫째, 찬미입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삶은 찬미의 삶입니다. 찬미의 삶이 영적 승리의 삶의 기초입니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요즘 골똘히 묵상하는 주제입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숨쉰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존재감 없는 삶도 많습니다. 

 

바로 하느님 찬미가 진짜 살아있음에 대한 생생한 증거입니다. 사랑의 찬미가 삶의 의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하느님 찬미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찬미의 승리,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입니다. 하느님 찬미의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우리의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내는 찬미의 빛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성모님의 영적 승리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찬미가입니다. 2천년 동안 가톨릭 교회가 저녁 성무일도때 마다 성모님과 함께 영적 승리의 삶을 간원하며 부른 찬미가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나이다.”로 시작하여,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로 끝나는 마니피캇 찬미가는 말그대로 찬미의 절정입니다. 샘솟는 희망과 기쁨으로 영적 승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찬미의 은총입니다.

 

둘째, 겸손입니다.

바로 겸손이 영적 승리의 삶의 빛나는 표지입니다. 온유와 겸손으로 요약되는 예수 성심이 바로 영적 승리의 삶을 입증합니다. 죽어서가 아닌 이미 살아서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하는 겸손입니다. 회개의 열매가 겸손입니다. 끈임없는 회개와 함께 깊어가는 겸손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 겸손과 더불어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합니다. 다음 행복기도 내용 그대로입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온유와 겸손,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성모님에게 겸손의 절정은 태중의 예수님과 함께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입니다. 겸손 자체가 이미 축복입니다. 성모님의 겸손한 방문에 감격한 엘리사벳이요 성모님의 겸손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엘리사벳입니다.

 

셋째, 우정입니다.

홀로의 여정이 아니라 홀로와 더불어의 여정중의 영적 승리의 삶입니다. 영적 승리의 삶에 결정적인 요소가 도반과의 영적 우정입니다. 성모님께서 수태예고후 즉시 찾은 것이 영적 도반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성모님을 격려합니다. 성모님의 내면의 어둠을 환히 밝힌 엘리사벳의 고백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평생 영적 승리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영원히 잊지 못할 엘리사벳 도반의 위로와 격려였을 것입니다. 도대체 영적 도반 엘리사벳이 없었다면 어디서 이런 은혜로운 축복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런지요. 참으로 두 분 어머니의 우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깊은지 깨닫게 됩니다.

 

두분의 영적 우정에 필히 전제되는 바, 영원한 평생 도반이신 주님과의 우정입니다. 참으로 두 분이 주님과 우정이 깊은 주님의 종, 성령의 사람이었기에 이런 서로간의 우정도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서로간의 우정의 성장과 성숙과 함께 가는 것이 영원한 도반 주님과의 우정임을 깨닫습니다. 영적승리의 삶에 결정적 요소가 수직적 차원의 주님과의 우정, 수평적 차원의 인간 도반과의 우정입니다.

 

부전자전이란 말도 있지만 영적 삶에서 모전자전이 더 어울립니다. 성모 마리아 어머니에 예수님이요, 엘리사벳 어머니에 세례자 요한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성모 승천 대축일, 꼭 우리 어머니들 축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알게 모르게 영적 승리의 삶을 사셨던 어머니들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영적 승리의 삶의 빛나는 표지는 성모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제2독서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 승리의 삶에게 큰 격려와 힘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찬미와 겸손, 우정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함으로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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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0.08.15 08:38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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