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0. 연중 제2주간 금요일                                                                                    히브8,6-13 마르3,13-19



우리 믿는 이들은 누구인가?

-안으로는 주님의 제자弟子, 밖으로는 주님의 사도使徒-



어제의 일화를 잊지 못합니다. 영원한 현역의 삶을 지향하는 수도자이지만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조금씩 약해지는 심신을 느낍니다. 아침 일찍 예약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느라 약간 서둘렀습니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정장을 하고 가방 안에는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책들도 두둑하게 넣어갑니다. 만원 버스였습니다. 간신히 올라타 계산대에 교통카드를 댄다는 것이 주민등록증을 대었습니다. 반응이 없어 확인하고서야 알았습니다.


“여기 앉으세요?”

마침 한 친절한 자매가 즉시 자리를 양보했고, 대신 웃으며 제 교통카드를 계산기에 대주었습니다. 감사하면서도 ‘내가 벌써 이렇게 되었나?’ 자못 씁쓸한 느낌이었습니다. 고마움에 그 자매를 봤더니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고마워서 한번 봤습니다.”

고마움을 표했고, 그 자매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하고 인사한 후 전철역에서 내렸습니다. 순간 제 말투가 옛 어머니를 닮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노년에 전화드리면, 늘 “수철아, 전화해줘서 고맙다.”하고 전화를 끝맺곤 했습니다.


참 마음 따뜻한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더욱 은퇴가 없는 ‘영원한 현역現役’으로서의 수도자의 신분을 깨닫게 됩니다. 심신이 약해져가는 징후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더욱 깨어 노력할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안으로는 주님의 제자로서 밖으로는 주님의 사도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12사도를 선발하는 과정이 참 인상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다.”(마르3,13-15).


이 말씀 안에 우리 성소의 비밀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12사도의 성소과정이나 우리의 성소과정이나 원리는 똑같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당신 사도로 부르셨듯이 우리 역시 주님께서 원하시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소는 순전히 주님의 은총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라는 대목은 바로 안으로의 제자직을 가리킵니다. 밖으로의 사도직에 앞서 끊임없이 주님과 함께 하면서 겸손한 제자가 되어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로서의 외적 활동活動에 앞서 주님과 함께 하는 제자로서의 관상觀想이 필수적임을 봅니다. 말씀과 기도중에 주님과 깊이 내적으로 일치하는 제자직에 충실함으로 주님과의 사랑을 깊이하는 것입니다. 심신이 약해져갈수록 반대로 주님과의 내적관계는 깊어져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은 히브리서가 말하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의 새계약에 대한 주석입니다.


‘새계약은 외적이고 법적인 범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영혼 안에 새겨진다. 새계약은 사람들이 저마다 하느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새계약은 죄의 용서를 가져다 준다.’


바로 새계약의 중개자이신 예수님의 제자직에 충실할 때 하느님과 사랑의 관계 역시 깊어지면서 이뤄지는 은총의 현실이자, 이 거룩한 미사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사도직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다.’라는 대목은 그대로 사도직에 대한 묘사입니다. 밖으로는 예수님의 동반자가 되어 복음 선포의 사도적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는 누구나에게나 예외없이 적용되는 ‘안으로는 주님의 제자, 밖으로는 주님의 사도’라는 신원의식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께 불림받은 우리 모두의 자랑스런 신원이자 정체성입니다.


예수님께 불림 받은 열두 사도 공동체의 면면이 흥미롭기 짝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달라도 공통점은 주님이 원하시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새삼 함부로 타인의 성소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성소의 은총, 성소의 부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열두 사도 공동체처럼, 각자 불러 주신 주님의 성소에 충실하면서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때의 공동체는 얼마나 부요하고 풍요롭겠는지요. 수도공동생활을 하면서 체험하는 진리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당신이 원하시어 함께 하는 당신의 제자들임을 깊이 자각케 하시고, 이어 당신의 사도들로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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