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4.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묵시1,1-4.5ㄴ;2,1-5ㄱ 루카18,35-43

 

 

개안開眼의 여정

-무지無知에 대한 답答은 주님과의 만남뿐이다-

 

 

오늘 복음은 읽을 때마다 새롭고 반갑습니다. 상징들로 가득한 소복음서라 칭하는 복음입니다. 강론 제목 역시 예전처럼 똑같이 ‘개안의 여정’입니다. 개안의 여정, 제가 참 좋아하는 말마디입니다. 산티아고 순례후 참 많은 강론 제목에 ‘여정’이란 말마디가 들어갑니다. 개안의 여정, 날로 눈이 열려가는, 눈이 밝아지는 영적 삶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여정이란 말마디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뿐입니다. 참나의 탐구와 주님의 탐구는 함께 갑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알아가면서 참나를 사랑하고 알게 되며 날로, 점차 주님을 닮아 겸손해지고 지혜로워지는 우리들입니다. 점차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지혜의 빛, 주님의 빛 가운데 살게 됩니다.

 

인영균 글레멘스 신부의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한 수도승 선교사의 순례 여정”이란 책을 순례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중 순례자들의 인사말입니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좋은 순례길 되세요.” 그러나 옛 순례자들은 이와는 다른 말로 서로 인사하고 격려했습니다. 한 순례자가 먼저 “울트레야!(Ultreia!)” 하고 인사하면, 다른 순례자는 “엣 수에야!(Et Sueia!) 대답합니다. 

 

‘울트레아!’ 는 ‘더 앞으로’, ‘엣 수에야!’는 ‘그리고 더 위로, 드높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책 말미에, ”부엔 카미노! 울트레야! 엣 수에야!” 인사말은 ‘좋은 순례길 되세요! 정진하라! 상승하라!”라는 순례 여정중 도반간의 참 좋고 적절한 인사말입니다. 개안의 여정을 통해 날로 정진과 더불어 상승하는 영적 존재인 우리들입니다. 

 

개안의 여정에 한결같은 사랑의 열정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런 사랑은 베네딕도 성규에서 말하는 좋은 열정의 사랑, “아몰amor”입니다. “카리타스caritas”와는 다른, 개인이 전존재를 잡고 있는 활력넘치는 사랑을 함축하는 열정적 사랑이 “아몰amor”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좋은 열정의 사랑이, 하느님을 위한 좋은 열정의 사랑이 “아몰amor”입니다.

 

개안의 순례 여정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열정적 사랑입니다. 아무리 세월 흘러 나이들어가도 이런 열정적 사랑의 ‘아몰amor’이 식어선 안됩니다. 제1독서 묵시록에서 에페소 교회에 경고하는 말씀도 바로 이런 좋은 열정의 사랑입니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 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에페소 교회는 물론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사랑의 열정에 다시 불붙혀 초발심의 자세로, 열정적 사랑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전 읽은 1950년생 정호승 프란치스코 시인의 인텨뷰 기사에도 공감했습니다.

 

“나이 70이 되니 화들짝 놀랐어요. 60에서 70이 된 10년 동안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구체적으로 매년 뭘 했는지 생각해 봐도 잡히는 게 없어요. 10년이 1년처럼, 1년이 한 달처럼 지났어요.”

 

이렇게 말하는 시인에게 기자는 “시의 웅덩이는 다시 차오르고 있나요?” 물었고 이에 대한 진솔한 대답이 시적詩的이자 절창絶唱입니다.

 

“밀물이 들어와 수평선이 되는 때는 지났어요. 저는 썰물이예요. 썰물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거죠. 샘은 물을 퍼내면 다시 고이잖아요. 한때는 저도 샘물이 고이듯이 샘을 퍼내면 다시 물이 고였는데 지금은 퍼내면 언제 물이 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가슴 속에 시의 샘물이 있으면 빨리 쓰려 해요.”

 

사랑의 열정이 메말라가는 것, 역시 자연스런 노화 현상일지 모르겠지만, 영원한 현역의 수도자들은 여전히 맑게 샘솟는 열정의 옹달샘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바로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가 바로 마르지 않는 열정의 옹달샘이 되는 것입니다. 25년전 풋열심이 왕성하던 49세에 쓴 ‘옹달샘’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누가 뭐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불암산의 옹달샘으로 머무르리라

 

 확장도 개발도 홍보도

 그 무슨 인위의 장식도 없이

 자연 그대로의 옹달샘으로 머무르리라

 

 주님안에 숨어사는

 옹달샘으로 머무르리라

 목마른 이들에게 샘솟은 물이 되리라”-1997.4.3

 

바로 오늘 복음의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눈먼 무지의 걸인은 한결같은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이, 열망이, 사랑의 열정이 깨어있게 하고 기도하게 합니다. 오매불망 진리이신 주님을 찾는 열정에 깨어 있었기에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라는 말을 듣자 그는 전광석화 신속히 반응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플어 주십시오.”

부르짖습니다. 주변의 꾸짖음과 만류에도 체면불구하고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자비송 기도를 바치듯 그렇게 부르짖습니다. 

 

그대로 걸인의 주님 향한 열정적 사랑의 표현입니다. 자비송으로 미사를 시작한 우리들, 그대로 눈먼 걸인을 닮았습니다. 걸음을 멈추신 예수님은 가까이 다가온 눈먼 걸인 구도자에게 묻습니다. 마치 선문답禪門答처럼 간단명료합니다. 삶이 간절하고 절실하면 말도 짧고 단순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눈먼 걸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평생 화두와 같은 근본적 물음입니다. 눈먼 걸인의 대답이 만고불변의 명답입니다. 이것 하나뿐입니다.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지혜의 빛, 주님의 빛속에서 살게 해달라는 간청입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단 하나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뿐입니다. 주님의 지체없는 응답 역시 짧고 단순합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는 즉시 믿음의 눈이 열려 다시 보게 되었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군중 역시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감동적이 장면인지요!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 무지의 눈이 열린 걸인이요, 이제 길이자 진리이신 주님을 따라 개안의 여정에 오른 눈뜬 제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만나라 있는 “눈”이요, 주님을 따르라 있는 “발”임을 깨닫습니다. 한 두 번의 개안이, 한 두 번의 따름이 아니라 날마다, 평생 개안의 여정, 따름의 여정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대로 미사를 압축하고 있는 참 아름답고 은혜로운 복음입니다. 

 

육안은 날로 어두워져도 영안은 날로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한결같은 열정의 사랑을 선물하시어 개안의 여정에 항구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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