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20.연중 제20주일                                       이사56,1.6-7 로마11,13-15.29-32 마태15,21-28

 

 

평화의 길, 상생의 길, 지혜의 길

-주님이 답이다-

“주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라”

 

 

영롱하고 줄기차게 울어대는 풀벌레, 매미소리와 더불어 벌써 구수하게 익어가는 배열매들 향기가 가을이 깊어져 감을 알려 줍니다. 정말 요즘처럼 나라 걱정 많이 해보기는 처음입니다. 참 고약하게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같습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의 생각도 그러할 것입니다. 남북의 분열 못지 않게 남남분열도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통합의 길은 참 멀고도 멀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길 강력히 희망합니다. 우리 가톨릭교회가 그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성서를 보듯 신문을 보고, 신문을 보듯 성서를 보라는 개신교 신학자 칼바르트의 오래 전 언급을 잊지 못합니다. 성서를 읽듯 그런 깊은 안목의 눈으로 새롭게 신문을 읽으며 시대의 징표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어제 양 일간지 1면 톱기사와 사진이 참 불길하다 싶었습니다. 

 

“초밀착 한-미-일, 준동맹 한-미-일”

 

이라는 제하에 삼국정상 사진이 나란히 나와 있었습니다. 동맹이라 하지만 흡사 강대국 두 정상에 꼼짝없이 포위된, 미-일의 덫에 걸린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동안 어렵사리 북방외교에 힘쓴 결과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는 물론 남북의 관계도 “이젠 전쟁은 없겠구나” 싶었는데 신냉전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 위기감까지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살길은 미-일-중-러 사대 강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부단히, 꾸준히 추구해야 되는데 그반대로 역행, 퇴행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보다는 현재의 분단과 대결구도를 원하는 4강대국입니다. 국제관계의 잣대는 국익이지 결코 정의, 평화가 아니라는 냉엄한 현실을 결코 잊어선 안됩니다. 이런 와중에서 고군분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남북이 이런 엄중한 상황을 깨달아 평화의 길, 상생의 길, 지혜의 길을 추구해야 하는데 참 암담한 생각이 들었지만 결코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한민족의 저력과 지혜를, 무엇보다 애국가 가사 1절처럼 하느님의 보우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가처럼 생각되는 애국가 1절 오랫만에 한 번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1년반 전쟁동안 양쪽 군인의 사상자가 무려 50만이라 하는데 민간인까지 하면 그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전쟁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전쟁의 결과가 너무 참혹하여 상처와 손실의 회복, 복구가 참 요원하다 싶었습니다. 전세계가 기후재난에 힘을 합쳐도 역부족인데 설상가상 이런 어리석은 전쟁이라니요! 참으로 국가지도자의 첫째 의무가 나라의 안위요 전쟁방지입니다. 그런가 하면 평화의 긍정적 표지도 발견하고 안도했습니다. 칠흑같은 절망의 어둠속에 새어 나오는 희망의 빛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전쟁은 없겠구나!” 말마디와 더불어 안도감까지 들었습니다. 바로 어제 가톨릭평화신문 한면의 기사 때문입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물길 열릴 것”이란 제하에 태극기를 든 청년들의 밝은 모습의 사진이었습니다.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동아시아 지역평화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란 내용도 반갑고, “아, 하느님은 이렇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일하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즘 인터넷이든 신문이듯 자주 들여다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빛을, 희망을, 길을 찾는 심정입니다. 말그대로 빛을, 희망을, 길을 잃은 시대같습니다.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보는 눈을, 안목(眼目)을 잃은 듯 도대체 올바른 보는 눈, “관(觀)”을 보기 힘듭니다. 올바른 국제관, 역사관, 사회관, 시국관, 교육관, 결혼관등 보는 눈이 없습니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것도 보는 눈을 길러주는 것과 참사람이 되는 것인데 교육현실은 이와는 너무 멉니다.

 

나라가 있고 종교도 있습니다. 나라가 건재해야 천주교 신자생활도 건재할 수 있습니다. 나라잃은 종교생활 너무 비참할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목숨을 바친 순교요, 나라 사랑에 목숨을 바친 순국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나라 사랑에 힘써야 겠다는 생각에 어제부터 집무실 예수님 십자고상밑에 태극기를 붙여놨습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닙니다. 길을, 희망을, 빛을, 보는 눈을 잃어버릴 때,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병들도 많고 죄악도 많고 유혹도 많고 괴물도 많고 악령들도 활개치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 깊이에서는 길을, 희망을, 빛을 찾습니다. 제대로 보는 눈을 지니길 원합니다. 눈뜨고도 못보는 진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이,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길을, 희망을, 빛을 보게 하고, 우리 모두 보는 눈을 지니게 합니다. 평화의 길, 상생의 길, 지혜의 길을 보여줍니다. 바로 하느님이, 예수님이 궁극의 답입니다. 궁극의 길은, 희망은, 빛은, 눈은 주님 한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빛이, 주님이 길이, 주님이 희망이, 주님의 눈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세가지 방법을 소개해 드립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이교인 가나안 여자가 그 믿음의 모범입니다. 제대로 빛이자 길이자 희망이신 주님을 찾아낸 가나안 여자의 눈입니다. 평생 이런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헛되이 살다 아까운 인생 마치는 이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주님을 정조준한 가나안 여자의 믿음의 과녁은 정확했고 집요했습니다. 좌절이나 절망이 없는, 뒤로 물러날줄 모르는 불퇴전의 참으로 탄력좋은 믿음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현대판 마귀들린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으로 자비송을 바치며 미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미사에 참석하면, 자비송을 바치면 눈물이 난다는 분의 진솔한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가톨릭교회의 명품성을 보장하는 미사전례입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은 저 여자를 돌려 보내라고 아우성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냉정한 대답에도 가나안 여자는 개의치 않고 엎드려 절하며, 재차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기도합니다. 이런 간절하고 절박한 끊임없는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표현이 기도요, 이런 기도가 믿음을 견고히 합니다. 마지막 주님과 가나안 여자의 대결입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참으로 자존심 상하게 하는 모욕적인 주님의 말씀에 가나안 여자의 믿음은 굴할줄 모르니 과연 배수진을 친 불퇴전의 믿음의 전사답습니다.

“주님,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참으로 가나안 여자의 겸손한 믿음입니다. 이토록 주님께 대한 가나안 여자의 신뢰와 사랑은 깊었습니다. 빛이자 희망이자 길이신 주님을 끝까지 붙잡고 늘어진 가나안 여자가 우리에게는 빛나는 믿음의 표지, 희망의 표지, 사랑의 표지가 됩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그대로 가나안 여자의 큰 믿음에 감동하신 주님의 유쾌한 항복(降服) 선언입니다. 가나안 여자의 기도의 승리, 믿음의 승리를 뜻합니다. 가나한 여자는 믿음의 싸움에서 주님을 이겼고, 자신을 이겼고, 은근히 포기하기를 바랬을 악마의 유혹을 이겼으니 삼중(三重)의 승리를 뜻합니다. 그대로 가나안 여자를 통해 제1독서 이사야 예언, “이방인들에게 내린 축복”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그대로 우리에게도 성취되어 주님의 거룩한 산, 불암산 기슰 이 거룩한 “기도의 집” 요셉 수도원 성전에서 미사전례를 바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이런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둔 이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런 희망이 백절불굴의 믿음을,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믿음을 지니게 합니다. 이런면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를 희망의 주님께 인도하는 희망의 표지가 됩니다.

 

주님을 믿으십시오. 가나안 여자가 바로 빛나는 믿음의 표지요 모범입니다. 주님을 희망하십시오. 이사야 예언자가 바로 빛나는 희망의 표지요 모법입니다. 다음은 사랑하십시오. 제2독서 바오로가 그 사랑의 표지요 모범입니다. 바오로의 영적 시야와 지평이 참 웅대합니다. 타민족들의 구원에 이어 재차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합니다. 결국은 모두의 구원입니다. 결론같은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이, 자비가 빛납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입니다. 마음 너머에는 신비가 있고 신비 너머에는 자비가, 하느님의 자비가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 없는 이어지는 바오로의 하느님 찬미가를 소개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신비에 압도된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하느님이, 하느님을 환히 드러내는 예수님의 궁극의 답입니다. 그러니 이런 주님을 언제나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닮아가면서 우리 역시 주님의 빛, 주님의 길, 주님의 희망, 주님의 눈이 될 것이며 저절로 영육의 건강에 한반도의 평화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게 합니다. 결론하여 “절망은 없다!”입니다. 하느님 사전에 유일하게 없는 단어 하나가 “절망”입니다. 절망이 대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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