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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3.2.사순 제2주간 토요일                                             미카7,14-15.18-20 루카15,1-3.11ㄴ-32

 

 

너무나 자비하신 아버지 하느님

-"나는 누구인가?"-

 

 

"주님은 어지시다 찬양들 하라.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시편136,1)

 

아침 성무일도 독서기도시 시편136장 26절까지 계속되는 후렴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말마디가 오늘 복음과 일치합니다. 요즘은 홈페이를 열어 뉴스 확인하기가 겁납니다. 어디나 어둡고 불길한 뉴스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더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는 느낌도 듭니다. 다만 교황님 홈페이지는 가장 먼저 열어보는 살아 있는 영성의 보물 창고입니다. 늘 어둔 세상에 길을 열어주는 희망과 지혜의 빛 가득한 뉴스와 기사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한눈에 들어오는 여러 말마디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진 그리고 그리스도를 선포하라 불림받은 사람들”

“오늘날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은 믿고 선포해야 할 진리가 되었다.”

“‘성 이념(Gender ideology)’은 우리 시대의 가장 추한 위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자와 여자 모든 차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없애는 것은 인간성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대신 ‘남자와 여자는 풍요로운 ‘긴장’가운데 존재한다(Man and woman exist in a fruitful ‘tension’).” 성 이념에 종지부를 찍는 얼마나 지혜로운 통찰인지요! 

 

오늘의 다산 어록과 맹자의 사단설도 새롭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사랑은 고차원의 덕목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일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다산

“가엾이 여기는 마음,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이런 사랑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맹자

 

다산어록 3월의 모토인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의 뜻도 깊고 멋집니다.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에 같이한다”뜻으로, “물들이고 싶거든 먼저 물들어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늘 들어도 늘 새로운 복음중의 복음, ‘순복음(pure Gospel)’이라 칭하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보다는 ‘너무나 자비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비유’라함이 적절할 것입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이처럼 감동적인 예화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묻고 싶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같은 복음이라 이 복음을 대하면 늘 넘치는 감동과 더불어 저절로 “나는 누구인가?” 묻게 되며 오늘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가득 들었습니다. 떠오르는 루가복음의 결론같은 가르침을 확인하게 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루가6,36)

 

우리의 평생과제가 부여되니 바로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이고 교회는 어머니이며 우리는 형제”라고 아우구스티노는 갈파했습니다. 그러니 형제들인 우리가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일이겠습니다. 자비하신 아버지하면 정주와 환대의 요셉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이 생각납니다. 제 좋아하는 두편의 자작시입니다. 24년전 감동을 담은 “아버지 산처럼”이란 시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아버지 산 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 겸허해져 모자를 벗는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자비의 품으로

 산의 품으로 살 수는 없을까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늘 행복할 수는 없을까

 아버지 산처럼!”-2000.11.17.

 

늘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환대하는 아버지를 닮은 불암산같은 요셉 수도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의 짧은 시입니다.

 

“아, 크다, 깊다, 고요하다, 침묵의 저녁 불암산!”

 

한량없이 크고 깊고 고요한, 자비하신 아버지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이 시를 썼을 때의 감동도 생생합니다. 바로 오늘 루카복음의 자비하신 아버지는 이런 산같은 분입니다. 제1독서 미카 예언자가 고백하는 하느님도 이런 자비하신 아버지와 일치합니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바로 이런 자비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오늘 복음의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아버지입니다. 제 고백상담 집무실벽에 수십년 동안 걸려있는 바로 귀환한 작은 아들을 맞이하는 자비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렘브란트 그림입니다. 

 

자비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절정은 삶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가 거지가 되어 생환한 작은 아들의 환대에서 감동적으로 드러납니다. 일체의 책임 추궁은 말끔히 사라지고 잃었던 아들을 찾음에 너무나 기뻐 얼싸안고 환호하는 아버지의 입에서 은총의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종들을 향한 명령입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존재감 없는 거지같은 신분에서 왕자같은,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존엄한 품위의 신분을 회복한 작은 아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비하신 아버지께 돌아오지 않고 존엄한 품위를 상실한채 존재감 없이 무명의 거지처럼 세상 속에 살다가  불쌍하게 죽어가는 작은 아들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는 당신 외아드님을 통해 날마다 작은 아들같은 우리의 귀환을, 생환을 환영하시며 미사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작은 아들의 환대 잔치에 불타오르는 질투에 제정신을 잃고 분노하는 큰 아들 역시 소위 잘 산다 자부하는 우리의 위선을 폭로하면서 우리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자녀답게 산 큰 아들이 아니라 종처럼 살았던, 마음은 아버지에게서 멀리 떠나 있던 아버지와의 신뢰 관계가 참으로 빈약했던 큰 아들입니다. 수십년간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에 정주가 아닌 생각없이 타성적으로 안주하다보면 우리 또한 이런 큰 아들이 될 위험성도 다분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큰 아들의 속내가 환히 드러납니다. 너무 화가 나니 말에는 사실과 어긋난 과장과 왜곡도 심합니다. 아우가 아닌 저 아들이라 하며 아버지와 작은 아우를 하나로 몰아 붙입니다. 큰 아들의 태풍같은 분노를 미풍으로 바꿨을 다음 자비하신 아버지의 온유하고 진실한 말씀입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복음사가는 큰 아들의 반응은 물음표로 남기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며 반응을 묻습니다. 오늘 복음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큰 아들, 작은 아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참으로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은 자녀다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가장 효성스런 아들인 예수님 당신을 삶의 본보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 복음을 묵상할 때 마다 자비로운 아버지의 효성스런 아들로서 자신의 신원을 새롭게 확인했을 것입니다.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예수님을 닮아감으로 자비하신 아버지의 효성스런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생명있는 모든 것에게 먹을 것을 주시나니,

 당신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시편136,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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