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0. 대림 제2주간 월요일                                                                   이사35,1-10 루카5,17-26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

-무지와 영육의 병에 최고의 치유자-

 

 

오늘 복음은 동료들 믿음 덕분에 예수님을 만남으로 치유받는 중풍병자의 일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동료들을 볼 때 중풍병자 역시 믿음의 사람임을 은연중 알게 됩니다. 의미심장한 것은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는 예수님’에 관한 복음중 마지막 구절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누구나 기억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세상에 정도나 양상의 차이일뿐 장애인이나 병자, 그리고 죄인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모두 병자이자 죄인입니다. 하느님의 관심사도 회개한 죄인이지 무죄한 의인이 아니요, 진짜 성인도 회개한 죄인이지 무죄한 의인은 아닐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마련입니다. 참으로 심신이, 영육이 온전히 건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정도나 양상의 차이일 뿐 모두가 장애인이나 병자이거나 잠재적 장애인이나 병자라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하던 사람들도 세월 흘러 나이들어가면서 의지력이나 정신력에 상관없이 장애인이나 병자가 되는 노인들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러나 육신의 장애나 병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병이 영혼의 병, 마음의 병, 정신의 병입니다. 우선적으로 건강해야 할 영혼이요 정신이요 마음입니다. 하여 믿음, 희망, 사랑의 신망애信望愛 향주삼덕에, 진선미眞善美 즉 참됨, 착함, 아름다움의 덕을 그리도 강조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신망애의 사람, 진선미의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정작 두렵고 무서운 영혼의 병이 무지의 병입니다. 무지에서 기인하는 탐욕, 화냄, 어리석음, 교만, 절망, 나태함등 영혼의 병의 징후는 끝이없습니다. 영혼이 이런 무지의 병으로 편안하지 못할 때 마음과 하나된 몸도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병의 영어 어원이 이를 입증합니다. 편치 않음, 불쾌를 뜻하는 ‘dis-ease’ 단어가 동시에 질병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불편이나 불쾌함은 몸의 질병이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와 병이 또한 알게 모르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육신의 건강에 앞서 영혼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영혼이 절망과 허무, 나태로 무너지면 육신 또한 속절없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하여 영혼의, 정신의, 마음의 건강에 ‘하느님 중심의 행복한 삶’이 그리도 결정적입니다. 하느님은 희망과 기쁨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요즘 면담고백성사 때 보속으로 꼭 읽히는 ‘행복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의 답을 제1독서가 주고 있습니다. 요즘 대림시기 제1독서는 이사야서의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내용들의 연속입니다. 우리 영혼과 마음에 활력을 주는 보약같은 말씀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강론을 잘할 수 있을까 예언자이자 신비가요 시인인 이사야가 참 부럽습니다.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만남이 우리를 희망차고 기쁘게 살게 합니다. 이래야 비로소 영혼의 건강에 이어지는 육신의 건강입니다. 

 

그러니 희망과 기쁨보다 영육의 치유와 건강에 좋은 것은 없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얼마나 희망과 기쁨으로 약동하는 지요. 바로 대림시기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 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그 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이사야의 이런 하느님 꿈이, 희망이, 기쁨이 우리를 치유합니다. 주님을 참으로 만날 때 온갖 장애와 병의 치유입니다. 육신에 앞서 영혼의 치유입니다. 언젠가의 그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꿈꾸던 희망의 주님을 만날 때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영혼이요 치유되는 영육의 장애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또 오늘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을 통해 그대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희망과 기쁨은 한 셋트입니다. 희망에서 샘솟는 기쁨입니다. 기쁨만 아니라 우리의 믿음도 이런 하느님 희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물론 중풍병자 동료들의 믿음 역시 잘 들여다 보면 이런 하느님께 대한 희망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봅니다. 희망이 없으면 애당초 믿음도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동료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니 하느님 희망에 이어 믿음에 영혼의 치유입니다. 육신의 치유에 앞서 그들의 믿음을 통해 죄를 용서함으로 우선 영혼을 치유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죄의 용서를 통한 영혼의 치유에 희망과 믿음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영혼의 치유에 곧장 이어지는 육신의 치유 선언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주님을 만남으로 영육이 치유되어 말 그대로 부활의 삶을 살게 된 장애인 중풍병자입니다.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같습니다. 치유받은 중풍병자는 기쁨에 벅차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고, 이에 크게 놀란 모든 사람들 역시 터져 나오는 기쁨에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하느님 찬양공동체’의 모습같습니다. 영육의 결정적 치유를 마감하는 하느님 찬양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희망-믿음-영육의 치유-기쁨-찬양’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평소 건강할 때 하느님을 희망하고 믿으며 찬양과 감사의 기쁨을 사는 것이 유비무환의 첩경의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무지의 병, 영육의 장애의 치유에 하느님 찬양과 감사의 기도가 제일입니다. 이래서 평생 끊임없이 항구히 충실히 바쳐야 할 찬양과 감사의 공동전례기도인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입니다.

 

특히 강조할 바 형제공동체의 믿음, 교회의 믿음입니다. 복음의 중풍병자는 믿음 좋은 형제 공동체 덕분에 주님을 만났고 치유받았습니다. 개인의 믿음은 약하지만 교회공동체의 믿음은 강합니다. 개인의 온전한 치유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가능함을 깨닫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상처도 받지만 공동체 안에서 치유도 받습니다. 

 

참 좋은 ‘치유의 공간’, ‘치유의 자리’가 정주의 수도원이요, 전례가 거행되는 이 거룩한 성전입니다. 하여 고향집을 찾듯이 끊임없이 치유의 공간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자주 감동, 감사하는 것은 미사전례중 ‘주님의 기도’ 다음 평화예식중 다음 기도문 대목입니다.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소서.”

 

무지의 병이나 영육의 장애와 병의 치유에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와 하나 되어 주심으로 우리의 무지와 영육의 병을 치유해 주시고 온전한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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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8.12.10 07:15
    주님, 오늘 말씀으로
    저희가 생활속 무지에서 깨어나
    주님을 향한 믿음과 희망에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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