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6.12.20. 대림 제4주간 화요일                                                                         이사7,10-14 루카1,26-38 



전환점 turning point

-세계 역사 안에서의-



오늘 복음은 참 아슬아슬하면서도 아름답고 깊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방문하십니다. 주님의 천사를 심부름꾼으로 보내셨지만 하느님은 참으로 조마조마하셨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하느님께서 친히 세계 역사 안에 개입하시려는 순간입니다. 말 그대로 세계 역사 안에서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입니다. 참 오묘하고 신비로운 것이 하느님께서 나자렛 고을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나자렛은 지구의 중심은 물론 팔레스틴의 중심도 아닙니다. 예수의 미래 제자가 될 이는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수 있는가?’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우리 세계 안에 들어오시기 위해 택하신 곳은 바로 여기 나자렛이었습니다. 로마도 알렉산드리아도 아니었고 당대 세계 안에서 권력과 문화와 학문의 다른 위대한 중심지들도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사람입니다. 


마리아를 찾아 나자렛까지 찾아 오신 겸손하시고 눈밝으신 주님이십니다. ‘나자렛’이 상징하는바 바로 보잘 것 없는 ‘내 삶의 자리’이고 ‘마리아’가 상징하는바 순결과 순종의 사람인 ‘나’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장소에 상관없이 이런 이를 찾아 오십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마리아를 향한 인사말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아, 얼마나 은혜로운 인사말인지요. 제가 고백성사 보속의 처방전으로 가장 많이 써드리는 성구중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은 바로 하느님이 우리 삶의 역사에 들어오셔서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시다.’라는 눈물나도록 고마운 복음입니다. 


주님이 함께 계실 때 저절로 두려움은 사라지고 기쁨과 평화가 자리잡기 마련입니다. 관상가인 마리아는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였다 합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성서독서시 묵상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제1독서의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예언 말씀이 이미 실현되었음을 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요, 탄생하실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또 하나의 임마누엘임을 깨닫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님과 하나되어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이란 이름 안에 하느님과 인간이 얼마나 깊이 하나로 결속되어 있는지 깨닫습니다. 계속되는 마리아를 향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바로 임마누엘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을 예고 받는 마리아입니다. 마침내 마리아의 최종의 응답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일방적인 하느님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자발적 동의가 없으면 하느님도 속수무책입니다. 바야흐로 하느님은 마리아의 자발적 응답을 통해 우리 삶의 자리로 들어오심으로 세계 역사 안에서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전환점이 마련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마리아가 얼마나 고마웠을런지요. 참으로 조마조마한 순간 마리아의 자발적 순종의 응답으로 세계 역사 안에 위대한 전환점이 이뤄진 것입니다. 


마리아는 평생을 이 응답에 충실했습니다. 이미 불가佛家의 성철 큰 스님의 종신불퇴(終身不退;몸이 다할 때 까지 물러나짐 않음) 좌우명대로 평생을 사셨습니다. 당신 아드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온갖 시련과 고난중에도 결코 물러나지 않으시고, 아드님과 함께 하시며 ‘예Yes의 삶’을 사셨습니다. 아마 이의 절정이 피에타상의 성모님 모습일 것입니다. 


마리아를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신 주님의 안목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의 종이 되어 마리아와 같은 자발적 순종의 응답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요약과도 같은 아름다운 본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존엄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천사의 아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성령의 빛으로 주님의 성전이 되셨으니, 저희도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57 자유의 여정 -경천애인敬天愛人-2017.8.14. 월요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1894-1941)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7.08.14 112
1256 자유의 여정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2017.4.5. 사순 제5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17.04.05 162
1255 자유의 여정 -파스카 삶의 여정-2016.5.5. 부활 제6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16.05.05 173
1254 자유의 여정旅程 -주님과 함께-2015.8.31.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5.08.31 273
1253 자유인 -영에서 태어난 이들-2017.4.24. 부활 제2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7.04.24 154
1252 자유인 -영혼의 닻-2017.1.17. 화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7.01.17 140
1251 자유인 -평화의 일꾼-2017.1.26. 목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7.01.26 97
1250 자유인-2015.7.19.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프란치스코 2015.07.19 358
1249 자존감, 정체성, 분별력-2015.8.25.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15.08.25 231
1248 자주 주님과 함께 머무릅시다 -침묵과 고독-2018.1.10. 연중 제1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18.01.10 194
1247 작아지기(비움)의 여정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2020.1.11.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1.11 164
1246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개, 기쁨, 겸손, 감사-2015.12.13. 대림 제3주일 프란치스코 2015.12.13 311
1245 전례와 삶 -무지에 대한 답은 전례 은총뿐이다-2021.7.30.연중 제17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1.07.30 113
1244 전례와 삶 -전례 예찬-2015.7.31. 금요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1491-1556) 프란치스코 2015.07.31 309
» 전환점 turning point-세계 역사 안에서의-2016.12.20. 대림 제4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16.12.20 131
1242 절망은 없다 -끊임없는 회개와 수행의 노력이 답이다-2018.7.27.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18.07.27 106
1241 절망은 없다 -묵묵한, 충실한, 한결같은 찬미와 감사의 삶-2020.1.29.연중 제3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1.29 130
1240 절망은 없다 -한결같은 ‘하느님 중심’의 삶-2023.9.23.토요일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1887-1968)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3.09.23 216
1239 절망은 없다 -하느님이 희망이다-2017.2.11. 연중 제5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7.02.11 129
1238 정주 삶의 축복 -제자리에서 제분수에 맞는 삶-2023.8.23.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23.08.23 236
Board Pagination Prev 1 ...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 171 Next
/ 171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