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0.연중 제33주간 금요일                                                     묵시10,8-11 루카19,45-48

 

 

 

성전 정화

-삶의 중심, 기도와 말씀의 집, 사랑과 평화의 집-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한식구, 한가족, 한가정입니다. 온 인류가 하느님의 한가족입니다. 얼마전 반포된 교황님의 새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역시 교회는 물론 온 인류를 대상으로 합니다. 바로 이게 자랑스런 자모이신 우리 가톨릭 교회입니다. 지연, 학연, 혈연보다 더 깊고 짙은 하느님과의 인연, 신연神緣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통해 새롭게 깨닫는 진리입니다.

 

지난 수요일 일반 알현 시간에 교황님은 교회를 사랑할 것을 특히 강조하셨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고향이자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의 영혼 깊이 각인된 삶의 중심과도 같은 고향이요 어머니입니다. 고향집의 어머니를 찾듯이 끊임없이 수도원 성전을 찾는 하느님의 가족들인 형제자매들입니다. 얼마전 퇴임한 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의 어머니의 향기란 진솔한 글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추석 연휴중 아무도 없는 숲길을 혼자서 걷다가 어찌된 일인지 울음이 터져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가을밤(찔레꽃)’이란 노래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보고 싶어져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참 울다 가만 생각하니 75살이나 먹고 백발이 성성한 사람이 어머니 생각을 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좀 우스꽝스러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스며 나왔다. 아마 누가 보았더라면 혼자서 울다가 웃다가 하는 이상한 노인네를 보았다고 했을 것이다.‘(생활성서 12월호)

 

저역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그립고 눈물이 납니다. 영원한 순수의 고향과도 같은 어머니입니다. 자녀들이 가장 먼저 교회를 체험하는 것도 신심 깊은 어머니를 통해서 일것입니다. 교회 현실만 봐도 부성애보다는 모성애가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하는지 목격합니다. 그대로 어머니인 교회의 모성애를 반영하는 자매들입니다. 수도원에 봉헌금을, 선물을, 미사예물을 가져오는 것도 거의 대부분 형제들이 아니라 자매들입니다.

 

고향집의 어머니를 찾듯이 성전을 찾는 믿는 이들입니다. 산티아고 순례시 어느 곳이든 성전에 들어갔을 때 고향집에 온 듯 편안했던 느낌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선 날마다 알베르게 숙소에 도착하면 미사 봉헌할 자리를 물색했고, 새벽 일어나자 마자 강론을 쓰고 함께 미사 봉헌후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미사가 봉헌되는 곳, 바로 거기가 주님이 현존하는 교회요 성전임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의 성전은 가시적 삶의 중심이자 기도의 집, 말씀의 집도 되고, 사랑의 집, 평화의 집도 됩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구체적 답도 교회의 거룩한 성전뿐임을 깨닫습니다. 매일, 평생, 끊임없이 거행되는 성전에서의 공동전례기도 은총의 빛이 허무와 무지의 어둠을 말끔히 몰아냅니다. 진짜 에버랜드는 ‘늘 와도 늘 새롭고 그리운’ 하느님 성전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수도원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런 세상을 성화해야할 세상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성전이, 성직자 수도자들이 세상에 오염되어 순수를 잃고 속화된다면 정말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 기인한 예수님의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의노義怒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교회의 성전을, 교회의 전례典禮를 사랑합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사랑이 사라지면 악마들이 들끓듯, 기도가 사라지면 성전은 속화되어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할 수 있음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온 백성은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적대자들도 속수무책이었다 합니다.

 

새삼 교회의 성전은 기도의 집인 동시에 말씀의 집임을 깨닫습니다. 도대체 이광야 세상, 이런 기도의 맛, 말씀의 맛 아니면 무슨 맛으로 살아갈 수 있을런지요. 특히 날로 깊어져야할 맛은, 세상맛이 아닌 기도맛 말씀맛인 하느님맛뿐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요 빛이요 영입니다. 말씀과 만나야 영혼도 삽니다. 영혼건강에 저절로 육신건강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공급되는 신망애와 진선미의 은총이 영혼을 튼튼하게, 아름답게, 거룩하게, 행복하게 하며, 품위있고 향기로운 삶이 되게 합니다. 영혼의 영양실조, 영혼의 골다공증은 순전히 말씀 결핍으로 자초한 영혼의 병입니다. 바로 오늘 화답송 시편 119장은 그대로 말씀 찬가같습니다. 176절까지 계속되는 가장 긴 시편에 속할 것이며 오늘 화답송은 그 일부에 속합니다.

 

“72.당신 입에서 나오는 가르침,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103.당신 말씀 제 혀에 얼마나 달콤한지!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 다옵니다.”

 

오늘 제1독서 요한 묵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천사로부터 말씀의 두루마리를 받아 삼킵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영혼의 식食이자 약藥임을 깨닫습니다. 

 

“이것을 받아 삼켜라. 이것이 네 배를 쓰리게 하겠지만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인생에서 겪는 온갖 고초의 쓴맛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것도 말씀의 단맛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오고 고생 끝에 행복이 온다는 믿음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느님 말씀의 힘입니다. 입에는 꿀같이 달고 배를 쓰리게 하는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성체’와 더불어 영혼의 평생 최고의 보약임을 깨닫습니다. 말씀의 두루마리를 삼킨후 다시 예언직을 수행하게 된 사도 요한처럼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음 선포의 예언직 사명입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 성전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인 성전이요 우리 하나하나 역시 주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성전 정화는 한 두 번이 아니라 평생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보이는 성전 건물은 물론,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성전과 더불어 우리 하나하나의 성전을 정화하시고 성화해 주십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주님의 성전聖殿’으로 ‘주님의 성인聖人’으로 새롭게 변모시켜주는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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