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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3.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욥9,1-12. 14-16 루카9,57-62

 

 

삶의 중심

-하느님, 하느님의 나라, 예수님-

 

 

새벽에 일어나 집무실에 나와 십자고상 앞에서 잠시 머무는 순간 떠오른 시편 구절,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현대인의 영적 질병은 ‘멈춰 머무르지 못하는 것’과 ‘침묵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모두 천박淺薄한 삶에서 오는 내적 불안의 표지입니다. 삶의 중심이 확고하지 못함의 반영입니다.

 

그러니 잠시 접어두고 머물러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습관을 지니시기 바랍니다. 성당, 십자가, 성모상, 요셉상, 성가정상, 이콘등 모두가 잠시 머물러 기도 시간을 지니라는 하느님의 초대장입니다. 수도원 십자로 중앙에 위치해 있는 ‘예수 부활상’ 역시 잠시 멈춰 기도하라는 거룩한 표지입니다.

 

기도는 이처럼 일상에서 생활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의 중심도 뚜렷해져 내적평화와 안정,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혼란한 삶도 단순하고 질서 잡혀질 수 있습니다. 가벼운 세상에서 깊이있는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갈망하는 바 자유입니다. 자유로워야 행복합니다. 자유와 행복은 함께 갑니다. 과연 자유롭다 여기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역시 삶의 중심이 확고할수록 삶은 단순해지고 내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분명 반갑고 고마운 일인데 때로 짜증스럽게 생각될 때의 선물이 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등 흔히 있는 선물들입니다. 때로는 이런 선물들이 짐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옷장에 보면, 입지 않는 옷들이, 신장을 보면 신지 않는 신들이, 책장을 보면 읽지 않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모두가 공해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살아갈수록 몸도 소유도 비워져 가벼워졌으면 좋겠는 데 날로 채워져 무거워지는 현실입니다. 

 

바로 사소해 보이는 이런 것들이 삶을 무겁게,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삶이 비워져 가벼워질수록 삶의 중심도 선명해 질 것입니다. 피정을 다녀간 수녀님이 남긴 글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요셉수도원의 모든 수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편안하게 쉬면서 충전의 시간을 갖고, 소임지로 돌아가 다시 충실하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감사의 마음 담아 수녀드림”

 

하느님의 영광의 상징하는 바 삶의 중심입니다. 삶의 중심을 새롭게 확인한 수녀님입니다. 오늘 강론의 제목은 ‘삶의 중심-하느님, 하늘나라, 예수님-’입니다. 믿는 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제목입니다. 하느님, 하늘나라, 예수님은 모두 하나의 실재, 중심을 가리킵니다. 

 

과연 여러분의 삶의 중심은 확고하고 분명합니까? 사제서품 받은 후 거의 30년동안 수도사제로 강론중 가장 많이 사용했던 주제가 삶의 중심, 하느님 중심의 삶일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 상경기로 십자가의 길이라는 절박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 장소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첫 번째 등장한 이가 예수님을 따르겠다 했을 때,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집착없는 자유로운 처신을 가리킵니다. 하느님을 중심한 삶이기에 구름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복음 선포에 전념했던 참으로 자유로우셨던 예수님의 삶이셨습니다. 

 

머무는 곳 모두가 예수님의 집이셨습니다. 참으로 장소로부터 자유로우셨던 예수님이셨고 바로 하느님 중심에 정주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런 이들에게는 머무는 곳 어디나 고향이요 집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랐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면서 우리의 예수님 따르는 자세를 점검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둘째, 사람들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두 번째 등장한 이가 “나를 따라라.” 주님의 명령에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해달라는 청했을 때, 예수님은 “죽은 이들은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문자 그대로 실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일이, 하느님의 나라를 전하는 일이 얼마나 절대적이고 우선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엄중한 일인지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은 물론 믿는 모든 이들의 삶의 중심이 됩니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입니다. 사람들로부터의 자유 역시 분별의 지혜를 요구합니다. 당장 아버지의 죽음이었다면 예수님은 장례를 허락했을 것입니다. 좌우간 ‘하느님의 나라’라는 삶의 중심이 확고할 때 사람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둘째 등장한 이가 예수님을 따랐는지가 아닌 우리 삶의 자세의 점검에 있습니다.

 

셋째. 과거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세 번째 등장한 이가 주님을 따르겠으니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해달라 청했을 때, 예수님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라고 답변합니다. 그의 반응이 궁금합니다만 역시 문제는 우리의 처신을 생각하게 합니다.

 

과거는 지났고 우리의 영역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를 목표로 한 이상 하느님 나라를 향해 힘차게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역시 문자 그대로 적용할 일은 아니고 하느님 나라가 얼마나 엄중한 삶의 중심이자 목표인지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실 경주하는 이가 자주 뒤를 돌아다보면 제대로 뛸 수 없습니다. 삶의 중심인 하느님 나라를 향한 과거로부터의 부단한 탈출이 참으로 오늘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과거에 사로 잡혀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들 가는 지요.

 

오늘 제1독서 욥기는 욥의 둘째 담론입니다. 친구인 발닷의 담론에 대한 답변입니다. 욥의 담론의 주제는 ‘하느님의 독단獨斷’입니다. 하느님의 권능을, 하느님이 삶의 모두임을 인정하는 욥의 담론으로 가득한 내용들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 하겠는가?”에 이어지는 욥의 고백은 얼마나 그가 하느님 중심의 삶에 철저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욥의 삶의 중심이자 모두였음을 깨닫습니다. 

 

흡사 수도원 배밭 배꼭지에 달려있는 무수한 배들을 연상케 하는 욥입니다. 저는 이를 믿음의 배꼭지라 칭합니다. 그 무거운 배가 작은 꼭지 하나로 배나무에 달려 있는 것처럼 삶의 중심인 하느님께 믿음으로 달려있기에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극한의 고통의 상황 중에 하느님까지 없다면 욥은 삶의 허무를 견뎌내지 못하고 벌써 삶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고통에 대해 물을 수 있는 믿음의 대상, 삶의 중심인 하느님이 계시다는 자체가, 우선 고통중에도 ‘하느님’이라 부를 이름이 있고 하느님이란 존재가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요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 주시고, 참으로 온갖 불필요한 집착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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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젤로 2018.10.03 07:45
    항구한 믿음으로 항상 주님 중심의 삶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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