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7.11.25.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1마카6,1-13 루카20,27-40



영원한 삶

-지금 여기서부터-



후회할 것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한 삶을 살면 됩니다. 바로 주님 부활체험이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한 삶을 살게 합니다. 이런 영원한 삶의 체험없이 맞이하는 죽음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아주 예전에 읽은 일화가 생각납니다. 죽어 수의를 곱게 차려 입힌 친구의 시신을 접한 분의 탄식입니다.


“옷은 잘 차려 입었는데 갈 곳이 없구나!”


아마 세상 재미에 빠져 살다가 준비 없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친구에 대한 안타까운 탄식이겠습니다. 세례받으니 부를 '하느님' 이름 있어 좋다는 어느 분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죽음을 앞두고 이름 부르며 기도할 대상이 없을 때 얼마나 암담하겠는지요. ‘갈 곳이 없다!’ 바로 죽음을 앞둔 이들이 당황해 하는 것은 이런 절망감의 반영입니다. 이렇게 희망없이 맞이하는 죽음도 참 많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 상권에서 죽음을 맞이한 안티오코스 임금의 심정이 그러할 것입니다.


“내 눈에서는 잠이 멀어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무너져 내렸다네.---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생각나네.---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제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


부귀영화를 맘껏 누리다가 이렇게 맞이하는 죽음이라면 얼마나 허망하겠는지요. 참 외롭고 쓸쓸해 보입니다. 누구나 맞이하는 철회할 수 없는 죽음입니다. 과연 말 그대로 주님께 희망을 두고 활짝 열린 마음으로 기쁘게 죽음을 맞이할 자, 얼마나 되겠는지요. 얼마전 단풍 찬란하던 가을 날의 순간적 체험도 잊지 못합니다. 저에겐 하나의 계시와도 같았습니다.


주일 미사 집전중 출입구 살짝 열린 문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원의 단풍빛 황홀하던 순간적 모습입니다. 흡사 ‘현실의 창’이 순간 열리면서 쏟아져 내린 영원의 빛처럼 느껴졌습니다. ‘아, 하늘나라의 영원한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깨달음도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순간 하늘나라 체험을 한 듯 기쁨 가득한 마음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부활후 내세 삶의 비밀을 환히 알려주십니다. 하여 주님은 부활논쟁을 말끔히 매듭짓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 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주님 부활체험의 사람들은 죽어서가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서 부활의 영원한 삶을 앞당겨 삽니다. 이미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대로 세례성사,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정말 이런 부활체험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살 때 천사들과 같아져서 참으로 자유로운 삶일 것입니다. 이미 지금 여기서 삶과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을 살고 있기에 죽음의 두려움도 없어 평화로운 선종의 죽음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입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사람 눈에 죽음이지 하느님 눈에는 모두가 당신 안에 살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입니다. 살아있을 때 주님을 만나 주님 안에서 영원한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답게 영원한 부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시편34,9).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51 어떻게 죽어야 하나? -귀가준비-2018.10.2.연중 제26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0.02 140
1750 어떻게 죽어야 합니까? -마지막 유언-2017.4.14. 주님 수난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1 프란치스코 2017.04.14 175
1749 어떻게 참으로 살 수 있을까요? -꿈, 찬양, 기억, 사랑-2022.9.10.토요일 한가위 프란치스코 2022.09.10 217
1748 어떻게 하늘 나라를 지킬 것인가? -주님과 함께-2017.12.14. 목요일 성 요한 사제 학자(1542-1591)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7.12.14 165
1747 어떻게 해야 영생을 받을 수 있나? -사랑 실천이 답이다-2019.7.14.연중 제15주일 1 프란치스코 2019.07.14 140
1746 어떻게 해야 영적전쟁에 승리할 수 있습니까? -비전, 비움, 탄력, 연대- 이사56,1.6-7 로마11,13-15.29-32 마태15,21-28 1 프란치스코 2017.08.20 145
1745 어린이 같은 사람이 됩시다 -경외fear와 섬김serve- 여호24,14-29 마태19,13-15 1 프란치스코 2019.08.17 160
1744 어린이 예찬 -하늘 나라의 삶-2023.8.19.연중 제19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3.08.19 264
1743 어린이를 사랑하라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의 어린이’입니다“-2022.8.13.연중 제13주간 프란치스코 2022.08.13 288
1742 어린이처럼-2015.10.1. 목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873-1897) 축일 프란치스코 2015.10.01 739
1741 어머니를 그리며 -어머니 예찬-2019.8.15.목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1 프란치스코 2019.08.15 221
1740 어제나 내일이 아닌 오늘! -오늘,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2019.11.20.연중 제33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9.11.20 162
1739 언제 어디서나 일하시는 하느님 -하늘 나라의 실현-2019.7.10.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7.10 158
1738 여러분은 무슨 맛으로 살아 가십니까? -하느님 맛, 또는 돈 맛-2019.4.17.성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4.17 121
1737 여여如如한 삶 -수행자의 삶-2017.9.23. 토요일 피에트첼치나의 성 비오 (1887-1968)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7.09.23 165
1736 여전如前한 삶 -영원한 현역現役, 영원한 학생學生-2016.5.15. 월요일 성 빠코미오 아빠스(287-347)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7.05.15 107
1735 역사는 반복되는가 -날마다 주님 ‘파스카의 꽃’으로 삽시다-2023.12.28.목요일 죄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프란치스코 2023.12.28 132
1734 역사는 현재現在다 -하느님은 조화調和이시다-2018.3.27. 성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8.03.27 134
1733 연대의 힘-2015.8.29. 토요일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5.08.29 303
1732 연민(compassion)의 사람-2015.10.30.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5.10.30 178
Board Pagination Prev 1 ...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 172 Next
/ 172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