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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3.연중 제33주간 금요일                                                                           묵시10,8-11 루카19,45-48

 

 

성전 정화

-말씀의 은총-

 

 

오늘 말씀도 참 심오합니다. 묵상중 떠오른 것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몸이 성전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몸으로 모인 우리 역시 거룩한 성전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괴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3,16-17).

 

함부로, 되는대로, 생각없이, 막살면 하느님이 파괴하기 전에 스스로 파괴되는 각자의 성전입니다. 사람이 참 보물입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 물론 궁극의 희망은 하느님이라 고백하지만 사람이 희망입니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건물이, 돈이, 환경이 먼저가, 희망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요 사람이 희망입니다.

 

구체적으로 수도원을 예로 듭니다. 아무리 수도원 자연환경이 좋고, 건물이 좋고, 돈이 많고, 역사가 오래되었어도 그 안에 수도자가 없으면 다 쓸모없어집니다. 저절로 망합니다. 수도자는 거금을 주고도 스카웃 해올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물건 만들어 내듯 단기간에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사람 하나 키워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투입되는지요. 그러나 오늘날 인스탄트 시대, 얼마나 많은 아까운 사람들이 1회용 소모품처럼, 쓰레기처럼 취급되는지요!

 

그러니 말그대로 수도자는 하느님이 보내 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어찌 수도자뿐이겠습니까? 믿는 이들 모두가 하느님의 귀한 선물들입니다. 그러니 각자 스스로 하느님의 선물이자 하느님의 성전인 자기를 늘 잘 돌보고 가꾸는 수행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언젠가 수도형제에게 한자로 써준 사자성구 ‘자중자애自重自愛’란 글귀도 생각납니다. 바로 ‘말이나 행동, 몸가짐 따위를 삼가 신중히 하는 것’을, 또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을 뜻합니다. 어제 받은 어느 분의 카톡 메시지도 생각납니다.

 

“소설小雪입니다. 날씨가 추워져갑니다. 옷따뜻하게 입으시고 건강에 신경쓰세요. 신부님의 몸은 신부님 한사람 것이 아니잖아요. 하느님 대리인으로 신자들의 영혼의 건강을 책임지고 계시니까요. 열심히 기도드릴께요. 영육간에 건강하세요.”

 

카톡 메시지 받고 어제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임을 알았습니다. 어찌 저뿐이겠습니까? 내 몸이기전에 하느님의 것이자 공동체의 것이기도 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한몸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정화에 우선적인 것이 각자 성전의 끊임없는 정화입니다. 내적정화가, 내적쇄신이, 내적혁명이 우선입니다. 하여 끊임없는 회개를, 끊임없는 정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회개의 여정, 정화의 여정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수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든 개인이든 외부의 영향으로, 돈이 없어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와 분열로 망합니다. 언젠가 수도자 모임에서 수도생활에서 세가지 문제가 언급되었습니다. 1.수행정신의 이완, 2.성소자 감소, 3.재정 문제입니다. 셋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됨을 깨닫습니다. 수도자가 수도자답게 제대로 충실히 살 때 수도성소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재정문제도 잘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로 된 우선순위일 것입니다.

 

공동체든 개인이든 안에서부터 부패, 분열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습니다. 하여 언제나 수도원의 개혁은 원천으로 돌아감으로 시작됐습니다. 부유함에서 가난으로, 세속화에서 고독으로, 여기서 가난과 고독이 상징하는 바 사막입니다. 사막의 고독과 가난에서 시작된 개혁입니다. 사막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저절로 이탈의 자유요 그 자리가 바로 세상 안의 사막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보면 확연히 이해됩니다. 예수님은 참 성전이요 우리 각자 역시 성전입니다. 참 성전인 예수님을 평생 보고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평생공부가 예수님 공부요 말씀공부입니다. 내적 성전 정화에 말씀의 은총은 절대적입니다. 참으로 내가 말씀의 은총으로 정화될 때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성전도 저절로 정화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주님은 기도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질타하신후 본질적 사명에 몰두하십니다. 참으로 인상적인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합니다. 말씀자체이신 주님은 진짜 성전인 각자를 말씀으로 정화시키시고 보양시키십니다. 말씀이신 주님을 통해 말씀을 보고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배워 실천해야 하며, ‘날마다’ 일용할 양식인 주님의 성체를 모셔야 하고,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이래야 항구한 성전정화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지만 그 방도를 찾지 못합니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참 아름답고 귀한 장면입니다. 주님의 말씀이야말로 영혼의 식이자 약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영혼의 식이자 약인 주님을 모시고자 이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말씀을 통한 끊임없는 내적 성전 정화가 우선입니다. 이래야 정화된 순수한 마음에서 분별의 지혜도 나오고 열정의 용기와 항쟁도 나옵니다. 제1독서의 요한 역시 말씀의 사람, 말씀의 예언자임을 봅니다. 

 

“이것을 삼켜라. 이것이 네 배를 쓰리게 하겠지만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말씀의 두루마리를 받아 삼킨후 예언자로 파견되는 요한입니다. 우리 또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말씀을 받아 삼키고 주님의 예언자로 파견됩니다. 말씀이야 말로 영혼의 식이자 약입니다. 말씀은 꿀같이 달았어도 일상의 삶에서는 이런저런 쓰라린 아픔들도 많이 겪겠지만 결국은 말씀의 은총이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정화하고 건강하게 할것입니다. 다음 화답송 시편도 우리를 고무시킵니다.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당신 말씀 제 혀에 얼마나 달콤한지! 그 말씀 제 입에 꿀보다 다옵니다. 당신 말씀은 제 마음의 기쁨, 영원히 저의 재산이옵니다.”

 

바로 이런 말씀이신 주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내외적 성정전화에 이 거룩한 미사 수행 은총을 능가할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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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8.11.23 07:46
    주님, 저희 각자 스스로는 주님이 저희에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자 하느님의 성전임을 깨달아 늘 잘 돌보고 가꾸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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