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9.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묵시1,1-4.5ㄴ;2,1-5ㄱ 루카18,35-43

 

 

개안開眼의 여정

-날로 자유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

 

 

사람 누구나의 소망이 자유롭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과연 이런 삶에 이른자 몇이나 될까요? 개안의 여정을 통해 주님과의 일치와 우정이 깊어가면서 주님을 닮아갈  때 비로소 자유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제가 요즘 몇 년간 참 많이 강론 주제로 삼았던 것이 바로 무지입니다. 마음의 병중에 가장 치명적인 병이 무지의 병입니다. 하여 무지는 병이자 악이자 죄라고도 합니다. 모든 불행의 뿌리에는 무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무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눈이 멀었다', '눈이 가려졌다'는 뜻은 바로 무지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육안은 멀쩡해도 눈의 시력은 좋아도 영안이나 심안은 형편없이 약할 수 있습니다. 하여 눈뜬 장님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또 글을 모르는 경우 문맹이라 하고 색을 구분 못하는 경우 색맹이란 말을 쓰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이 참 심오합니다. 미니복음서라 할만큼 복음서의 압축같습니다.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맹인’이 상징하는 바 무지의 눈 먼 비참한 인간을 상징합니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몇이나 될런지요. 길에서 길이신 주님을 갈망하는 무지의 인간입니다. 눈 먼 무지중에도 좌절이나 절망함이 없이 길목에서 참 길이신 주님을 기다리며 찾았던 갈망의 사람이 바로 예리코의 눈 먼 걸인입니다.

 

예수님을 찾는 갈망의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갈망의 믿음 없어 절망으로 자포자기하여 찾지 않았더라면 예수님은 그냥 스쳐 지나가셨을 것입니다. 평생 눈 먼 무지의 사람으로 인생 마쳤을 것입니다. 평생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눈 먼 무지의 사람으로 살다가 인생 마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무하겠는지요. 사실 이런 경우 얼마나 많겠는지요.

 

하여 절망이 대죄임을 깨닫습니다. 눈 먼 걸인은 결코 절망하지 않았고 눈 먼 무지중에도 갈망의 믿음으로 영혼은 깨어 있어 주님을 기다렸고 찾았음이 분명합니다. 간절히, 절실히 기다릴 때, 찾을 때 주님을 만납니다. 오늘 눈 먼 걸인과 주님의 만남이 참으로 극적입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르짖는 눈 먼 걸인입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대로 미사시작되면서 우리가 바치는 자비송 기도입니다. 예수님 일행들은 잠자코 있으라 꾸짖었지만 그 누가 갈망의 외침을 막을 수 있겠는지요. 좌절할 줄 모르는 눈 먼 걸인의 믿음의 탄력이 놀랍습니다. 누르면 곧장 튀어나오는 용수철 같은 믿음의 탄력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복음의 눈 먼 걸인은 두 번 자비송을 바치지만 우리는 미사중 세 번을 바칩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응답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예수님은 복음의 가난한 눈 먼 걸인뿐 아니라 미사에 참석한 눈 먼 걸인들인 우리 모두를 향해 묻습니다. 이 물음보다 또 이 물음에 대한 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평생화두로 삼아야 할 물음이자 답입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물음도 단순명료했고 답도 또한 단순명료하기가 불교 선사들의 문답같습니다. 옛 사막 수도승을 찾았던 구도자와의 문답같습니다. 참으로 간절하면 군더더기 말은 생략되고 본질적인 내용만 남기 마련입니다. 사실 제대로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여 한자에도 견해見解, 견성見性, 관상觀想, 각자覺者 등 ‘볼 견見’자가 들어가는 말도 꽤 많습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하시니 그는 즉시 다시 보게 됩니다. 말 그대로 눈이 열리니 불교 용어로 개안開眼입니다. 한 두 번 개안이 아니라 평생 매일 끊임없이 주님을 만나 눈을 뜨는, 눈 밝아지는 개안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개안의 여정은 바로 주님과 만남의 여정, 믿음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위치도 의미심장합니다. 앞서 어떤 부자는 재물이 많아서 주님을 따르는데 실패했습니다. 부자는 탐욕이 눈이 멀었고 눈이 열릴 개안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어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예고를 들었던 제자들은 무지에 눈이 멀어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눈 먼 걸인은 주님을 만나는 데 성공했고 눈이 열렸습니다. 무지의 눈이 활짝 열렸습니다. 눈 먼 걸인은 눈이 열리자 하느님을 찬양하며 주님을 따라 여정에 오릅니다. 찬미와 감사로 주님을 따르는 삶, 이보다 아름다운 삶도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 눈이 열리니 주님은 그대로 그의 운명이자 사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개안의 여정, 믿음의 여정에 오른 눈 뜬 사람입니다. 주님을 보라 있는 눈이요 주님을 따르라 있는 다리임을 깨닫습니다. 다음 행복기도내용은 그대로 오늘 복음의 눈 뜬 자의 행복의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주님/눈이 열리니/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여정 중에/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당신은/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저의 사랑/저의 기쁨/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감동이요/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시작하는/당신을 따르는/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날마다 평생 주님을 따르는 개안의 여정, 믿음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중에 깊어가는 주님과의 우정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주님을 가까이 닮아감으로 우리를 아름답게 하고, 주님을 알아감으로 무지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하니 주님은 바로 우리의 모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제1독서 요한 묵시록의 에페소 교회의 문제가 어디 있는지 확연히 드러납니다. 개안의 여정, 믿음의 여정에 소홀했던 바 초발심의 열정이, 사랑이 식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하여라.”

 

날로 밝아져야 할 사랑의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열정에 불을 붙여 초발심의 자세로 바로 열정의 사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육신은 노쇠해 가고 육안의 시력은 약해지더라도 사랑의 심안의 시력은 날로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개안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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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8.11.19 08:55
    주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가 세상속 어떤것에도 좌절이나 절망없이
    참 길이신 주님을 찾으라
    말씀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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