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7 09:21

러닝머쉰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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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지 못한 인간의 삶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런닝 머쉰 위에 선 것과 같다. 육체라는 옷을 입고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 달려야만 하는 인생이다. 움직이는 레일 위에서 멈추면 죽는다고 배운다. 그래서 멈춘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죽어야만 멈춘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육신을 섬긴다. 그럼에도 죽음은 반드시 온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사람이 하는 모든 일들이 육체를 위한 것이고 그래서 공허감에 시달린다. 육체의 기능을 연장시키고 향상시켜서 장수하게 하는 것에 촛점이 맞추어져서 세상은 돌아간다. 눈에 보이는 세상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오래 살아보고자 시달린다. 그래서 죽음은 대단한 공포이고 불행중에 불행이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죽기까지의 고통이 두렵다고 착각하는 이들도 있다. 육체의 통증을 두렵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죽음을 직면하면 육체의 통증은 잊는다. 죽음에대한 공포가 더 크기 때문이다. 갈 길을 모르면서도 어둠속에서 발을 떼야하는 공포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의 상태는 비할 곳이 없다. 적어도 갈 길을 알고 떠나면 복이다. 몸이 없이 혼으로 세상을 떠도는 죽음이 아니도록 갈 길을 깨달아라. 세상을 눈여겨 보아라. 육신을 최고로 섬기는가하면 육신을 학대하고 죽이기도 한다. 자기 딸을 안심할 수 있는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고 외국으로 유학보내고 이민보내는 아빠이면서 동시에 성적 충동으로 누군가의 귀한 딸을 성폭행하기도한다. 성 범죄를 해결해보겠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또한 성적 쾌락을 장사하는 주인공들이다. 성적 쾌락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죽기전까지 누려도 되는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교육하고 광고한 덕분에 성문화는 보편화되었고 성범죄는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미치고 가정은 중심을 잃었다. 부모자식간도 믿을 수 없어지고 대낮에도 긴장하고 서로를 경계해야하는 현실이다. 생명의 귀함을 이야기하며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분노에 못이기면 쉽게 ㅡ 죽여라. 사형시켜라.ㅡ 라고 외쳐댄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질서를 잡아보겠다고 법들이 만들어지지만 그 법은 질서를 잡는 일도 없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또다른 문제를 낳아왔다. 사람들은 결국 수 많은 법들 속에서 아우성이다. ㅡ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외친다.ㅡ 그래서 세상은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험악해지는 중이다. 모든 문제의 답은 단순하다. 그것을 보지 못할뿐이다. 세상의 법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면 희망이다. 세상의 법들이 계속 늘어나는 중이라면 끝까지 가서야 결과를 볼 것이다. 법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성취하고나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취되어 사라지는 법은 없고 시시각각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법들만 많다면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만들어진 법이 목적을 이룰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하고 새로운 법들을 만들어 쉽게 해결해보고자하는 병에 걸린것이다. 법 중독증이다. 무법천지는 건강한 세상으로 가는 모습이다. 법 천지가 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알아차리는 이들이 없다. 수 많은 세상 법들 속에 갇혀서 죽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일탈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간다. 법이 만들어지자 마자 돌아서서 법을 피하는 법을 만들어 내느라고 끙끙거린다. 법을 만들어내는 이들에게 월급을 주고 법을 피하는 법을 만들어 장사하는 이들을 먹여살린다. 법 중독이다. 세상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 세상 모습에도 진리가 숨어 있다. 아무 의심없이 세뇌된대로 반복해서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가아를 목격해야 한다. ㅡ 나는 누구인가?ㅡ ㅡ 세상은 무엇인가?ㅡ 자기 존재에 대해 궁굼해질 때까지 계속되어질 전쟁이다. 정치인들이 문제라고 세상이 문제라고 떠들석할 때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가거나 Tv 앞에 앉아 분노하겠지만 너는 고요히 너의 내면으로 들어가라. 그것이 지름길이다. 네가 너의 삶의 주인공으로 서는 것이 더 쉽다. 네가 시위대에 합류하지 않을지라도 대다수는 늘 거리에서 외치고 Tv 앞에서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런 자리는 군중들의 몫이고 지금까지 비어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니 안심해라. 이렇게 모여든 군중들을 바라보며 마귀는 흐뭇해한다. 마귀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관심갖지 못하도록 늘상 밖에서 소란을 일으켜왔다. 홀로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이 홀로 고요히 머물게되면 무슨 일이 생길지를 마귀는 잘 알고 있어서 두려워 한다. 네가 세상의 소란스러움을 떠나 홀로 고요히 머물 줄을 알게 되면 결국 너는 세상에 대한 모순이 보이고 진리에 눈을 뜨게 된다. 너는 너를 찾고자 나를 만나라. 내가 진리를 깨닫도록 도울 것이다. 깨어남은 개별적이다. 고요하게 개별적으로 이루어진다. 세상은 깨어남을 원하지 않고 그래서 진리를 가린다. 이 세상은 욕망에서 태어난 세상이고 그래서 욕망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욕망을 부추긴다. 그래서 부모도 자식의 욕망을 키워주느라고 수고한다. 교육자들은 학생들의 순수함을 부수고 세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교육의 내용이다. 자기본질로 돌아감은 이 욕망에 대한 죽음을 의미한다. 죽기 전에 죽어야 한다. 육체가 죽기전에 욕망의 죽음을 맞아야 하는 것이 과제다. 그리되면 육체와 상관없이 하늘나라의 행복이다. 영원한 행복이다. 길을 찾는 이들에게는 길이 보이고 열린다. 그 길은 결코 어렵지 않다. 대단히 단순한 길이다. 다만 세상은 속인다. 그 길은 불가능하다고. 아무나 가능한 길이 아니라고. 그냥 세상을 즐기라고. 살던대로 살라고.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이다. 선택대로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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