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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3. 대림 제4주간 수요일                                                 말라3,1-4.23-24 루카1,57-66


                                                                     터무니 있는 삶

                                                           -제자리에서 제몫을 다하는 삶-


오늘 강론 주제는 ‘터무니 있는 삶’입니다. 도처에 널려있는 터무니 없는 삶입니다. 터무니 없다는 말의 뜻은 도저히 이치에 합당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터무니 있는 삶은 각자의 제자리에서 제몫을 다할 때의 조화롭고 균형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을 말합니다. 각자 제자리에서 제몫을 다할 때는 자신에게나 이웃에게나 ‘선물’이 되지만 제자리를 떠나 떠돌때는 자기에게나 이웃에게나 ‘짐’이 됩니다. 얼마전 읽은 터무니와 관련된 컬럼을 소개합니다.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보시라. 그 지도 속 우리의 땅은 산과 계곡이 분명하며 물길과 양지바른 터들이 아름다운 무늬처럼 새겨져 있는 곳이다. 이 터에 새겨진 무늬가 바로 터무니이니 이 단어는 우리의 존재와 이유가 모두 터에 있다고 믿은 우리 선조들의 관념어였다.

그러나 지난 시대 우리는 서양화가 근대화인 줄 착각하며 서양식 도시를 흉내 내고자 서양에서 폐기된 마스터플랜을 가져와 우리 땅에 앉혔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 땅에 평지는 귀한 경작지이므로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신도시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실현하기 위해서 산이 있으면 깎고 계곡은 메워야 하며 물길은 돌려야 했다. 


엄청난 토목공사를 일으키며 신기루 같은 신도시가 이곳 저곳에 나타났다. 모두가 터에 새겨진 무늬를 깡그리 지운 결과여서 이른바 터무니없는 도시였다. 특히 아파트가 그러했다. 지형을 바꾸면서 지은 집들이니 터무니없는 집이며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은 그래서 터무니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게 말장난일 뿐일까.-


‘정주하지 못할 때는 존재하지 못한다’라는 하이데거 철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구체적 터무니 있는 땅에서의 정주의 삶이, 우리 분도 수도자의 정주서원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습니다. 예전 농경시대에는 참 아기자기한 조화의 터무니 있는 땅에서의 정주의 삶이 었는데 요즘은 많은 이들이 터무니 없는 땅에 터무니 없는 삶이라는 존재상실의 삶을 살아갑니다.


지형상의 터무니는 잃었어도 삶의 터무니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젠가 인용했던 괴테의 말이 생각납니다.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 참으로 공감하는 말입니다. 한계를 벗어남이 자유인 듯 하지만 결국은 자기존재의 상실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하여 주어진 또는 선택한 한계안에서 한계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수행의 요체입니다. 우리 삶의 일과표가 하루 삶의 한계를 말해주며 이런 한계들은 삶의 터무니를 이룹니다. 바로 삶의 터무니 안에서의 제자리의 한계에 충실함이 바로 지혜로운 정주의 삶입니다.


이런 터무니-한계-제자리의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세례자 요한에게서 말라키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바로 말라기 예언에 근거하여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 예언자의 귀환으로 확신했습니다. 구약을 신약의 빛에서, 그리스도화하여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영적 삶의 터무니를 깨달아 살았던 초대교회 신자들이었습니다. 요즘 말씀에 등장하는 모든 거룩한 조연들의 주님을 중심으로 한 터무니가 참 조화롭고 아름답습니다. 모두 각자의 제자리에서 제 몫에 충실합니다. 요한의 작명 과정도 신비롭습니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터무니에 맞는 이름이 요한임을 계시받은 엘리사벳의 강력한 항의에 즉시 하느님 섭리의 터무니를 깨달은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에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씁니다. 순간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삶의 터무니가 회복되자 놀라운 기적의 발생입니다. 이 소문을 들은 이들은 이 사건을 마음에 새기며 말합니다.


-“이 아이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What then will this child be? -


말마디를 바꾸어 오늘의 나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나는 대체 무엇이 되도록 불림 받았나? “What then am I called to be?”-


전체와 조화된 터무니 있는 제자리에서 제몫에 충실한 정주의 삶인가 묻는 것입니다. 즈카르야와 그의 아들 세례자 요한은 각자 제자리에서 제몫에 충실함으로 주님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터무니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삶의 터무니를 회복해 주고 각자 제자리에서 제몫의 삶을 충실히 살게 해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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