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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2.연중 제7주간 수요일                                                           야고4,13-17 마르9,38-40

 

 

 

하느님 중심의,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

-관용과 겸손-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사제서품이후 35년 동안 거의 날마다 강론 쓰는 일이 습관이 되니 요즘은 많이 자유롭고 싶어 일기 쓰듯 강론을 씁니다. 어제 받은 메시지도 충격입니다. 연이어 부음을 듣습니다. 

 

“김길수 사도요한 교수님 알고 계세요? 어제 새벽 주무시는 듯 본향으로 떠나셨어요. 교회의 한 어른, 한 별이 지구를 떠나신 듯...허전함을 남기고 떠나셨어요. 내일 10시 무태성당서 장례미사, 기도해주세요.”

 

38년전 대구가대 대학원에 편입할 때 대구가대의 교무과장으로 재직하던 교수님은 참 반듯하고 친절하고 설명도 명쾌했던 신사다운 분으로, 또 교회의 큰 일꾼으로 기억합니다. 늘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성 베네딕도의 말씀을 다시 되새깁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 많이 너그럽고 겸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신선합니다.

“친구는 또 하나의 나와 같다. 

 서로 기댈 수 있는 이와 함께라면 더 멀리 갈수 있다.”<다산>

너그럽고 겸손한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고 이런 이들이 이런 좋은 친구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좋은 도반 역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장인은 일에 나서기 전에 그 연장을 잘 손질한다. 어떤 나라에 살든지 현명한 사람을 섬기고 어진 사람과 벗해야 한다.”<논어>

현명하고 어진 사람 역시 너그럽고 겸손한 사람이겠습니다. 참으로 이상적인 인간상이 관용과 겸손의 사람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갈 때 날로 너그러워지고 겸손한 사람일 것입니다. 예전 짧은 자작시 불암산도 생각납니다.

 

“아!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

 

때로 크고 깊게 와닿는 침묵중의 불암산입니다. 큰 산은 관대함을, 깊은 산은 겸손함을 상징합니다. 좋은 산은 높은 산이 아니라 깊은 산이라 합니다. 역시 좋은 사람은 높은 사람이 아니라 깊은 겸손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크고 깊은 좋은 산처럼 관대하고 겸손한 사람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예수님입니다. 

 

또 하나 제가 좋아하는 한자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정수유성, 심수무성靜水流深, 深水無聲)

이 또한 너그럽고 겸손한 사람의 인품을 상징한다 싶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요 무지한 사람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관대한 마음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이 빛납니다. 불어로 ‘나와는 다른 타자의 다름과 차이를 받아들이는 너그럽고 겸손한 관용의 정신’을 ‘똘레랑스(tolerance)’라 부르며 가톨릭교회의 영성과도 일매상통합니다. 요한의 물음과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둘의 극명한 차이를 발견합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요한을 대표한 제자들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폐쇄적인 완전히 닫혀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즘 양극화의 시대, 정서적 양극화, 이념의 양극화, 빈부의 양극화등 분열의 시대가 흡사 심리적 내전상태를 방불케 합니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 현상입니다. 과연 역사는 진보하는지 묻게 됩니다. 참으로 대화와 통합의 정신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제자들의 닫힌 마음을 활짝 열어줍니다. 바로 이게 스승의 역할입니다. 편협한 자기 시야에 갇혀있던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께 크게 배웠을 것입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이런 넉넉하고 너그러운 관용의 정신이 바로 겸손이자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건들이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것도 관용의 정신이며, 성 베네딕도의 말씀대로 ‘형제들의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견디는’ 것 역시 공존의 평화 공동체를 위한 관용의 자세입니다. 기도와 침묵, 인내를 요하는 관용의 정신입니다.

 

이래서 제가 늘 강조하는 두개의 문의 비유입니다. 믿는 이들은 물론 교회나 수도원은 활짝 열린 두문을, 즉 앞문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뒷문의 사막의 하느님께 활짝 열려 있는 두문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수도원의 자랑은 1987년 설립이후 37년 동안 수도원 정문도, 성전문도 늘 열려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세상에 이런 늘 열려있는 수도원이나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관용의 정신을 가리킨다면 제1독서 야고보서는 겸손을 가리킵니다. 한마디로 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획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Man proposes but God disposes).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나 죽음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깨달음이 저절로 침묵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겸손하게 합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악한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요, 참으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무지와 교만에 대한 답은 겸손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겸손은 그대로 지혜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겸손한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도 널려 있습니다. 가장 쉬운 일이 남판단하는 것이요 제일 어려운 일이 자기를 아는 일이라 합니다. 

 

이런 겸손과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하루 거품이나 환상, 허영이나 교만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겸손과 지혜, 사랑과 평화, 기쁨과 행복을 삽니다. 말그대로 하느님께 희망을 두되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이상적 현실주의자로 삽니다. 오늘이 내일입니다. 오늘 잘 살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됩니다. 

 

그러니 과거의 어둠이나 상처에 아파하며 사는 것은, 내일을 앞당겨 걱정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요. 오늘 못살면 내일도 못삽니다. 살아야 할 날은 오늘이지 내일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 선물에 감사하면서 오늘 지금 여기 꽃자리에서 천국의 행복을 사는 것입니다. 다음 고백 그대로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늘나라 천국이옵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루하루 날마다 관대하고 겸손한 주님을 닮은 참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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