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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9.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묵시11,4-12 루카20,27-40


벽壁이 변하여 문門으로

-찬미와 감사의 삶-


오늘 말씀 묵상 중 떠오른 어느 인문학자의 어제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아름답고도 심오한 구절입니다.


“글이란 당연히 의미를 충실히 실어 나르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즉 글은 햇살을 가장 잘 통과하게 하는 투명한 창문처럼 되어야 하며 중뿔나게 그 자체가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햇빛이 유리를 거쳐 통과하듯이, 말이 우리의 시선을 스쳐서 지나갈 때에 산문散文이 되는 것이다.”


창문같은 겸손한 글이 좋은 글입니다. 창문같은 겸손한 말이 좋은 말입니다. 여기서 문득 떠오른 강론 주제는 ‘벽壁이 변하며 문門으로’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이미 즐겨 택했던 강론 주제입니다. 


누구나 방이나 건물에 들어서면 저절로 눈길 가는 창문입니다. 사방이 벽이라면 참으로 답답할 것입니다. 확트인 전망의 창문을 보면 마음도 활짝 열린 창문이 되는 느낌일 것입니다. 아주 예전의 자작 애송시가 생각납니다.


“방에 있는/TV, 그림, 사진/대부분 군더더기/쓸데없는 짐

 이보다 더 좋은/임만드신/창문밖 하늘 풍경

 살아있는 그림/늘 봐도 새롭고 좋네

 좋은 창 지닌/방 하나만 있어도/부러울 것 없겠네”(2005년)


벽과 문의 상징이 참으로 심오합니다. 벽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벽같은 얼굴이, 마음이 있는가 하면 문같은 얼굴도, 마음도 있습니다. 똑같은 사물도 보는 이에 따라 벽이 되기도 하고 문이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침묵이 아닙니다. 활짝 열린 문같은 좋은 침묵이 있는가 하며, 꽉 닫힌 벽같은 나쁜 침묵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절망의 벽이라면 희망의 문입니다. 죽음의 벽이라면 생명의 문, 부활의 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문이다.’라 하셨습니다. 벽이 없으신 온통 문이신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언제나 들어갈 수 있는 활짝 열린 구원의 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닮아갈 때 우리 또한 벽이 변하여 문이 됩니다. 


그러니 ‘자유의 여정’은, ‘사람이 되어가는 여정’은 벽이 변하여 문으로 되어가는 여정이라 할만합니다. 이것이 진정 기적이요 은총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대하면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오늘 부활논쟁에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저에겐 참 답답한 벽같은 느낌이 듭니다. 참으로 답답한 불통의 경우,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오늘 복음의 사두가이들이 그러합니다. 


한 여자가 일곱 형제의 아내였다면 사후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는 물음도 참 벽같이 답답한 상상의 소산이요 불필요한 시간낭비입니다. 이런 이들과 논쟁한다면 벽속에서 헤매다 끝날 것입니다.


사두가이들이 벽이라면 예수님은 활짝 열린 문입니다. 흡사 오늘 복음 후반부 예수님의 말씀은 창문을 통해 어둔 방안을 환히 밝히는 햇빛같습니다. 아니 복음의 주님 말씀이나 행위 모두가 활짝 열린 하늘 문입니다. 주님 말씀의 은총으로 우리 마음의 벽이 문으로 변할 때 치유의 구원입니다. 사두가이들의 벽을 활짝 열어 젖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 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흡사 죽음의 벽이 생명의 문, 부활의 문으로 활짝 열린 느낌입니다. 이미 부활의 문을 통과하여 부활을 앞당겨 사는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입니다. 죽은 이들의 벽같은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문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할 때는 생명의 문이지만 주님을 떠날 때는 죽음의 벽입니다. 오늘 묵시록의 죽임당한 두 증인은 순교한 하느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혹자는 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네로황제로, 영적인 소돔 도성을 로마로, 두 증인을 베드로와 바오로에 견주기도 합니다. 좌우간 죽음의 벽으로 에워싸인, 완전히 악의 승리로 끝난듯한 절망적 상황입니다. 


마침내 사흘 반이 지난 다음 벽이 문으로 변하는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제발로 일어섭니다. ‘이리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하늘로 부터의 큰 목소리에 이어 그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대로 죽음의 벽이 생명의 하늘문으로 활짝 열린 승천 장면입니다. 


우리 영적 삶의 여정은 벽이 변하여 문이 되어 가는 여정입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넓어져 가는 마음의 문에 점차 줄어들어 가는 마음의 벽인지요. 반대로 마음의 문은 점점 작아지고 마음의 벽만 점점 커지고 있지는 않은지요. 자기 벽壁속에 갇힌 수인囚人같은 삶이 아니라, 활짝 열린 문門의 자유인自由人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마음 벽을 하늘 향해 활짝 열린 하늘 문으로 바꿔주십니다. 우리 모두 벽이 변하여 문이 되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끊임없이 온 마음을 다해 바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를 통해 벽이 변하여 문이 되는 기적입니다.


“나의 반석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하느님, 당신께 새로운 노래를 부르오리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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